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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실한 베짱이 May 16. 2020

아... 술 땡긴다.


회사 동료와 마시는 맥주


퇴근하기 1시간 전. 6시에 퇴근하기 위해 키보드를 치는 손을 빨라진다. 놓친 건 없는지 확인한다. 내일 해도 되는 일을 분류한다. 메신저가 온다. 오늘 끝나고 맥주 한 잔 어떠신지. 동기의 도발. 순순히 응한다.


오백 2개요! 찰랑찰랑한 거품이 넘칠 듯 말 듯 잔 위에서 넘실거리 린다. 거품을 머금은 맥주잔이 내 앞에 놓인다. 잔을 부딪히고 단숨에 목으로 넘긴다. 시원함이 입을 거쳐 목을 지난다. 목이 따갑고 코가 찡하다. 맥주의 청량감을 입 안에 머금고 맥주잔을 내려놓는다. 그리곤 이야... 캬...



안주는 치킨도 좋지만 상사 욕도 나쁘지 않다. 아니, 치킨은 다른 안주로 대체할 수 있지만 상사욕은 대체 불가다. 가끔 아는 사람이 있을까 주변을 둘러보기도 하지만 멈출 수 없다. 맥주를 한잔 들이켜고 상사를 한 번 씹는다. 업무지시가 명확하지 않고, 보고를 받을 때 표정이 마음에 들지 않으며, 얼굴만 봐도 불편한데 자꾸 편하게 하라고 강요하며, 의견을 말해도 수용하지 않고, 이미 결론을 정해놓고 회의를 하며, 되지도 않는 농담을 해서 날 괴롭히는 상사를 씹는다. 오백 한 잔을 더 시킨다.




딸과 단 둘이 마시는 청주


퇴근 후 집으로 들어온다. 오늘은 특별한 날이다. 딸아이(빤뽀)와 집 앞 단골 초밥집에 가기로 했다. 빤뽀는 초밥집을 좋아한다. 엄마가 못 먹게 하는 사이다를 마셔서 일까? 아빠와 단둘이 무언가를 하는 게 좋아서일까? 술집에 온다는 약간의 일탈(?) 느낌 때문일까? 아님 그냥 초밥을 좋아해서? 집에서 공부하는 거 보다는 더 나으니까? 어쨌든 좋단다.



빤뽀와 손을 잡고 횡단보도에 선다. 오랜만이지? 응. 빨리 가고 싶어! ㅋㅋ 눈을 맞추며 대화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초밥집에 도착했다. 오뚱 초밥 하나를 시키고, 백화수복 원컵, 사이다를 하나 시킨다. 백화수복과 사이다 캔이 공중에서 서로 부딪힌다. 청주 한 모금. 그리고 초밥 하나. 환상의 맛이다.


학교 선생님의 좋은 점, 별로인 점, 친구들과 쉬는 시간에 하는 놀이, 수업시간에 자신이 떠드는 이유, 엄마의 잔소리, 민주주의와 세금, 전두환, 박정희, 노무현, 문재인, 가장 좋아하는 사람, 가장 싫어하는 사람 등등 세상의 모든 주제에 대해 이야기한다. 심리테스트까지 마치고 나면 초밥은 어느새 없어져 있다. 빤뽀는 연어초밥을 하나 더 시키고, 난 달걀초밥을 하나 더 시킨다. 사이다와 백화수복도 하나 더!


사이다를 마시며 앞에서 재잘재잘 떠드는 빤뽀는 사랑스럽다. 나도 잘 모르는 민주주의와 세금에 대해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설명한다. 맞는지 틀린지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빤보는 내 말을 아주 주의 깊게 듣는다. 입은 앙 다물고 작은 눈이 조금 커진다. 그 눈은 내 입을 응시한다.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노무현은 좋은 사람이야 나쁜 사람이야? 술을 마시고 초밥을 집느라 잠시 이야기를 멈춘 나에게 언능 이어나가라고 채근한다. 사는 이유가 별거 있겠는가. 이게 바로 내가 사는 이유일 수도 있겠다.




친구들과 마시는 소주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났다. 곱이 가득 찬 곱창이 맛있게 구워진다. 기름진 냄새에 젓가락이 움찔움찔한다. 소주잔에 소주를 3분의 2 가량 채우고 잔을 부딪힌다. 부드럽게 넘어가는 소주에서 씁쓸함이 느껴진다. 씁쓸함을 잠시 음미하고 잘 익은 곱창을 입에 집어넣는다. 기름진 곱창과 튀어나오는 고소한 곱이 쓸함을 지운다.



각자 회사의 미친놈에 대해 이야기해 본다. 그리곤 다시 소주 한 잔을 털어 넣는다. 예전에 안주로 함께 먹던 부대찌게 이야기를 한다. 세 번째 소주 한 잔이 입 속으로 들어온다. 소주잔을 내려놓으니 모두 20년 전으로 돌아가 있다. 부대찌게 보다 3배 비싼 안주가 눈 앞에 놓여 있지만 친구들은 그대로다. 아니. 그대로 인 듯 보인다. 술 때문이겠지. 다시 소주 한 잔을 입에 털어 넣는다.




아... 술 마시고 싶다.


술을 많이 마시면 다음 날 머리가 아프다. 머리를 열고 뇌를 꺼내 솔로 박박 닦아 다시 넣고 싶기도 하다. 토하는 날이면 위를 꺼내 융털 사이사이를 깨끗이 세척하고 다시 집어넣고 싶기도 하다. 점심때가 지나면 서서히 통증이 잦아들곤 했지만 요새는 그렇지 않은 듯하다. 2~3일은 몸이 썩 좋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술이 생각난다. 첫 번째 잔을 털어 넣을 때 입 속에 감도는 청량감과 씁쓸함이 생각난다. 두 번째 잔을 들이켤 때 조금씩 솟아나기 시작하는 자신감이 생각난다. 세 번째 잔을 마실 때 삶의 무게가 가벼워 지는 알딸딸함이 생각난다.


코로나 19로 이런 술자리가 없어졌다. 코로나 19가 세상을 꽤 많이 바꾸어 놓겠지만 이 술자리만은 바뀌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 술 마시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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