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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실한 베짱이 May 30. 2020

아빠! 내 동생 장애인이잖아...

비장애인 형제가 가지는 어려운 감정들

빤뽀(첫째 딸) : 아빠! 나 오늘 장애인 인식 교육 들었어!

나 : 오... 정말? 어떤 내용이었는데...

빤뽀 : 음... 장애인도 그냥 내 친구래. 불쌍하고 무조건 도와줘야 하는 사람이 아니래. 찐이가 장애인이잖아. 그래서 더 열심히 들었지.

나 : 오! 그렇지. 우리 딸이 느낀 점이 많았나 보구나.

빤뽀 : 응! 다른 아이들도 열심히 들었겠지?

나 : 그랬으면 좋겠다 ㅎㅎ

빤뽀 : 예전에 우리 찐이 잘 데리고 놀던 남자애 있었자너

나 : 놀이터에서 찐이랑 잡기 놀이했던 그 형아?

빤뽀 : 응! 걔도 나처럼 장애인 인식 교육을 들었던거 아닐까?

나 : 오~~ 정말 그럴 수도 있겠는데!

빤뽀 : 그치 그치!


찐이가 태어나고 장애가 있음이 확실해 지면서 난 빤뽀에게 큰 기대와 걱정이 동시에 생겼다. 만화에서 보는 것 처럼 큰 아이가 넓은 마음으로 찐이를 보듬어 주기를 원했다. 동시에 다큐멘터리에서 보듯이 찐이로 인해 상처받고, 소외당하는 건 아닐까 걱정했다.



인생은 혹시 영화가 아닐까 기대해 봤지만 역시나 다큐멘터리였다.




비장애 형제가 느끼는 감정


(이빤뽀, 5살, 이제 아빠와 자려고 누웠음)

나 : 빤뽀야.

빤뽀 : 응 왜 아빠.

나 : 찐이가 많이 아픈 거 알고 있지?

(......)

나 : 난 우리 빤뽀가 찐이를 잘 돌봐 주었으면 좋겠어. 지금도 그렇고 커서도 큰 울타리가 되어서 동생을 지켜주는 멋진 누나가 되어 주는 게 아빠 소원이야.


내 인생에서 딱 한 장면을 지울 수 있다면 난 바로 이 장면을 지운다. 더 생각할 것도 없다. 40년 가까이 인생을 살면서 가장 후회하는 순간이다. 5살 아이에게 이렇게 잔인한 말을 했다는 사실을 난 아직도 믿을 수 없다.



난 비겁했다. 내가 짊어져야 하는 것을 5살 아이에게 고스란히 넘겨버렸다.


난 무식했다. 엄마와 아빠의 관심과 사랑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아이에게 난 너보다 찐이를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찐이를 돌봐주는 게 네 임무고 이를 수행하지 않으면 멋지지 않은 거라고 말했다. 아이에게 죄책감의 씨앗을 심어주었다.


찐이를 바라보는 눈빛과 첫째를 바라보는 눈빛은 아무래도 다르다. 찐이에게 머무는 눈빛에는 연민이 가득 담겨있다. 뭘해도 불쌍하고, 하나라도 더 해주고 싶다. 안아주고 뽀뽀해주고 싶은 충동이 가득하다.


첫째는 자연스럽게 양보를 강요당한다. 찐이는 누나의 인형을 갖고 싶다. 누나는 뺏기기 싫다. 누나의 인형이니 너에게 줄 수 없다고 말해보지만, 찐이는 소리를 지르고, 뛰기 시작한다. 내 머리를 잡아당기고 때린다. 어쩔 수 없이 누나가 인형을 양보한다. 그 모습이 짠하지만, 덕분에 상황이 마무리된다. 상황은 종료되었지만 큰아이의 마음은 전혀 정리되지 않았을 거다.


장애아이를 기르는 부모는 힘들다. 두 세 살 아이를 7년 키운다고 생각해 보라. 그리고 7년 후. 아이는 단지 제일 미운 시기인 네 다섯 살이 되어있다. 회사 동료가 내 아이의 나이를 물어보고, "이제 다 키웠네~, 편하겠어~"라고 말하면, 코에 오른손 스트레이트를 날리고 싶은 충동이 스멀스멀 기어 올라온다.



장애아이 하나를 키우는 데만 해도 모든 체력과 감정을 다 쏟아부어야 한다. 당연히 비장애 형제에게 할애하는 관심은 최소화 된다.


이러한 결핍으로 아이는 소외감, 질투심 심하게는 우울감을 느낀다. 자신이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는 대상이 장애를 가진 형제이기에 동시에 죄책감까지 느낀다. 자신 때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아픈 동생, 힘든 부모, 자신의 외로움, 엄마 아빠의 싸움 등 모든 것이 자신의 '탓'이라 생각한다.




인생은 역시 다큐멘터리


첫째가 7살이 될 무렵, 아이는 엄마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엄마의 말을 듣지 않았고, 엄마를 때리고, 엄마에게 욕을 했다. 길을 걷다 돌부리에 걸려도 소리를 지르며 엄마를 탓했다. 엄마가 화를 내면, '그것봐... 내 생각이 맞지? 역시 엄마는 날 사랑하지 않아...'


친척들이 자신을 책망하거나 자신의 잘못을 지적하면 무섭게 째려봤다. 눈물을 뚝뚝 흘리며 소리질렀다. 숨이 넘어갈 듯 울었다. 마치 자신을 봐달라는 듯이. 자신은 억울하다는 듯이. 친구들과의 관계도 비슷했다. 잘 지내는 듯 하지만 조금이라도 자신을 탓하는 상황이 발생하면 공격적으로 변했다.



우리가족의 다큐멘터리는 절정에 다다랐다. 아이를 탓해보고, 아내를 탓해봤다. 세상을 향해 소리를 지르고 하늘을 향해 욕을 했다. XX. 도대체 나한테 왜이래!


지금 생각해 보면, 난 안전한 바깥 세상에 숨어 있었다. 바깥에서 아내와 아이들을 바라보며 무언가를 알아볼 생각도 내가 변화해야 겠다는 생각도 전혀 하지 않았다. 내가 나를 힘들게 하고 있음에도 누군가가 나를 힘들게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누군가가 뿅하고 나타나서 이 사건을 해결해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이 다큐멘터리를 해피엔딩으로 끝내고 싶었다.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결국 행복하게 오래 오래 잘 살았다는 전래동화처럼 만들고 싶었다.


첫째의 심리치료를 시작했다. 동생 없이 엄마, 아빠와 손을 잡고 지하철로 가는 시간을 아이는 사랑했다. 심리치료가 끝나고 내려와 먹는 떡볶이를 아이는 좋아했다. 떡볶이보다는 자신만을 바라보고 있는 엄마와 아빠가 마음에 들었을 거다. 그렇게 아이는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했다.


다행스럽게도 몇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1. 아이와 단 둘만의 시간이 필요하다.

2. 아이와 보내는 시간의 양 보다는 밀도가 훨씬 중요하다.

3. 아이의 감정을 알아채고 공감할 수 있는 연습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 세 가지를 위해서 아내에게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칼날위에서 아이를 등에 업고 아등바등하고 있는 아내를 알아챘어야 했다.


칼날 위의 아내를 진심으로 공감하기 위해서는 내 감정이 가득 차 있어야 했다. 나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내 감정을 알아채고 잘 다루어야 했다. 나를 돌보는 것이 아내에게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그리고 그 길로 걸어가야만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고 말하며 이 다큐멘터리를 끝낼 수 있다.




아빠! 나 찐이 될래.


빤뽀 : 아빠! 나 찐이 될래

나 : 응?

빤뽀 : 맨날 찐이만 돌봐주고, 찐이만 쳐다보잖아. 내가 아무리 말해도 엄마는 나 한테 관심도 없어.

나 : 아... 그랬구나. 많이 속상했겠다. 엄마가 찐이에게만 관심 보이는 것 같고... 너 한테는 관심이 없으니 얼
마나 섭섭했겠어.

빤보 : 응. 정말정말정말. 나 그냥 찐이 될래! 흥!



빤뽀 : 엄마는 찐이 한테 주는 관심이 60%고 나한테 35%! 아빠한테는 5%인것 같아!

나 : 컥! 정말? ㅜㅠ

아내 : 하하하 아니야! 나 아빠 1%야!

빤뽀 : ㅋㅋㅋ 아빠는 엄마한테 50%고 나한테 30%, 찐이한테 20% 인 것 같아

나 : 그럼 너는?

빤뽀 : 나? 나는 엄마한테 60%, 아빠한테 30%, 찐이한테 10%! 친구들이 옆에 있으면 찐이한테 20%가 되고!

나 : 컥! 아빠는 30% 밖에 안되는 거야? 9월 달에 관심 배틀 다시해! 내가 엄마를 이기고 말겠어!



첫째는 이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더 이상 꼭꼭 숨기거나 소리지르고 때리는 걸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지 않는다.


난 첫째에게 아무런 기대를 하지 않는다. 걱정은 어쩔 수 없이 되지만 그러지 않기로 노력했다. 단지 자신의 감정을 알아채고, 솔직하게 표현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난 아이를 그런 사람이 되게 할 수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내가 그런 사람이 되는 것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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