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듦'과 '불행'은 다르다.

by 성실한 베짱이
아빠. 우리 가족은 참 불행한 것 같아.


식탁에 앉아 돼지바 블랙을 먹고 있었습니다. 빤뽀가 내 앞에 앉더니 자기도 돼지바를 달라고 하네요. 돼지바를 뜯더니 나에게 말합니다. 우리 가족은 불행한 것 같다고.


아이가 자신의 삶을 불행하다, 고 말한다... 그 누가 놀라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머리가 무거워지고 아득해지는 느낌을 받습니다. 심장이 쿵쾅거리고 혈액이 머리로 쏠리는 듯했죠.


반사적으로 "아니야! 불행하지 않아!"라고 방어적인 태도를 취할 뻔했습니다. 정말 다행스럽게도 나오려는 말을 꾹 눌러 다시 삼켰습니다. 몰래 심호흡을 한 번 하곤 아이에게 조심스럽게 물었죠.



어떤 것 때문에 불행한 것 같아?


음... 우리 가족은 힘들잖아. 그리고 운도 너무 없는 것 같아.



그래. 우리가 힘들지. 나도 힘드니까. 집도 회사도 이 세상도 다 나에게 맞서 싸우기만 하니까. 운? 그래 생각해 보니 운도 없는 것 같다. 네 말이 다 맞다.



그렇구나... 우리 빤뽀는 우리 가족이 운도 없고 힘들다고 생각하는구나.


맞잖아! 찐이는 장애인이고, 엄마도 내일 수술해야 하고... 엄마 죽으면 어떻게 해...



사실 그런 수술이 아니긴 한데...

절대 죽을 리 없는 수술인데...

태어나서 처음 겪어보는 가족의 수술이 무서웠네...



아... 그렇지. 빤뽀 말이 맞네. 찐이도 장애인이고, 아픈 곳도 많고, 떼도 엄청 써서 마음대로만 해니 우리가 힘들지. 그리고 엄마 수술도 정말 운이 없는 거다. 절대 수술
할 일이 아닌데 수술까지 하니 말이야... 정말 운이 없긴 없다.


그래 아빠... 우리는 정말 힘들고, 운이 없어.


아이는 담담하게 '힘듦'과 '운이 없음'을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대견하면서도 짠했습니다.


나에겐 (아마 아내도) 매일 물을 때가 있었습니다.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사실 이젠 관심도 없는 '신'에게 소리쳤죠.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우리에게 생긴 겁니까?


이 질문을 빤뽀도 매일 똑같이 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대화를 더 이어갈까, 말까 고민하다 한 마디 정도는 해줘도 되겠다 싶어 입을 열었다.



빤보 말 대로 우리는 정말 힘들고 운이 없기도 하다. 그치?


응...


근데, 힘든 거랑 불행한 거랑은 다르다고 하더라고.


응?


아빠는 우리 가족이 힘들지만 행복하다고 생각해.


......


힘들지만 행복할 수도 있고, 힘드니까 더 행복할 수도 있어. 힘드니까 더 웃으려고 노력하고, 힘드니까 더 웃을 일을 만들어내고, 힘드니까 서로를 조금 더 배려하고, 힘드니까 서로 더 사랑하게 되는 것 같아.


......


힘드니까 아빠는 장난꾸러기가 되어 버렸어. 원래도 장난꾸러기였지만 힘드니까 더 장난꾸러기가 되더라.


ㅋㅋㅋ 맞아. 아빠 장난 완전 많이 치잖아. 웃긴 이야기도 많이 하고!


ㅋㅋㅋ 그니까. 어제 잘 때도 빤뽀 학교에서 자기소개하는 거 이야기했는데 완전 웃겼잖아.


ㅋㅋㅋ 맞아. 나 웃겨서 배 아파 죽을 뻔했어. 자기소개를 그렇게 하는 게 어딨어.


그치. ㅋㅋㅋ.


서진이(가명)네는 힘든 게 하나도 없을 것 같아. 운도 엄청 좋은 거 같고.


그건 모르지. 서진이네도 힘든 일이 있을 수도 있지.


그렇지만 우리 만큼은 아닐 거 아니야.


빤뽀는 그렇게 보이는 구나.


응. 근데 우리보다는 덜 행복하겠지?


ㅋㅋㅋ 그것도 잘 모르겠지만 이건 확실한 것 같아.


어떤 거?


서진이네 아빠보다 내가 더 웃기고 장난도 많이 친다는 거!


ㅋㅋㅋ 맞네. 서진이네 아빠는 장난 하나도 안 치는 거 같아. 아빠랑 잘 놀지도 않고. 재미도 없는 듯.
아빠. 우리 행복한 거 맞음.


그래! 힘들지만 행복함.



'힘들지만 행복할 수 있어!'

내가 이렇게 말하면


'내가 지금 힘들다는데 뭔 개소리임'

이렇게 대화가 흘러갈 수 있었는 데 다행입니다.


빤뽀 덕분에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네요.

'힘듦'과 '불행'은 다르다는 걸.


우리는 힘들지만 행복하다는 걸.


우리 둘은 웃으며 돼지바 블랙을 하나씩 더 먹었습니다.



얼룩진 눈으로 바라본 세상

돼지바로 행복을 확인하고 나니 얼룩진 눈으로 세상을 바라봤던 때가 떠오릅니다. 찐이의 장애를 고치고, 극복하는데 애쓰다 보니 눈 앞에 얼룩이 생겨 버렸습니다. 슬픔, 짜증, 화, 분노, 원망, 죄책감, 우울이 한데 뒤섞여 눈 앞이 얼룩졌습니다.


얼룩진 눈으로 아내를 바라봅니다. 빛나던 아내는 온데간데없고 얼룩진 아내가 보였어요.

얼룩진 눈으로 빤뽀를 바라봅니다. 얼룩에 가려져 아이가 보내는 신호가 보이질 않았어요.

얼룩진 눈으로 세상을 바라봅니다. 내 눈의 얼룩 때문인지만은 모르겠지만 세상은 얼룩져 있었어요.


고난에는 눈이 없다고들 하지요. 그 눈 없는 고난이 저에게 왔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고난을 불렀죠.


"야! 고난 이 정도면 됐잖아. 이젠 떠날 때도 됐잖아. 왜 이리 한 군데 오래 있는 거야. 쟤한테도 가고 얘한테도 가고 그래야지!"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없더군요. 시간이 오래 걸렸지만 직접 찾아갔습니다. 어깨를 두드리며 왜 쳐다보지도 않냐고 물었습니다. 그리고 제발 가라고 울부짖으며 이야기했죠. 그제야 대답을 하더군요. 자기는 고난이 아니라고요.


나는 당신의 숙제가 아니에요
세상의 많은 하찮은 것들이
나를 통해 소중한 것들로 바뀔 거예요.
산을 올라 정상을 정복하는 삶보다
낮은 곳으로 흘러 흘러 넓은 곳에서
함께 만나는 삶이 더 아름다울 수 있음을

-'소통과 지원연구소' 김성남 소장-


아... 이런... 다시 보니 고난이 아니더군요. 하기 싫은데 억지로 해야 하는 숙제도 아니었고요. 전 그것도 모르고 계속 '고난아! 저리 가!'만 외치고 있었네요. 이 녀석 덕분에 오히려 내 삶이 더욱 소중해지고 의미를 가지게 되었는데도 말이죠.



제가 지금까지 한 이야기는 장애인과 그 가족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내 옆집에 사는 아이, 내 가족의 아이, 그리고 '내 아이'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남의 이야기가 아닌 바로 내 이야기입니다.


제가 던진 돌이 긴 파문을 일으키며 멀리 퍼져 나갔으면 합니다. 파문이 없어질 것 같으면 한 번 더 던지고, 파문이 조금 약하면 조금 큰 돌을 던질게요. 혼자가 버거우면, 여러분들과 함께 던진다면 정말 행복할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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