찐이가 태어난 이후로 친한 친구와 그리 친하지 않은 친구를 나누는 기준이 자연스럽게 생겼다. 찐이의 장애를 알고 있다면 친한 사람, 그렇지 않다면 조금 덜 친한 사람이다. 지난주, 아내에게 전화를 한 사람은 친한 친구였다. 단순한 안부 전화라 생각했다. 통화는 생각보다 길어졌고, 아내는 조용한 곳으로 자리를 옮겨 본격적으로 대화를 나누었다. 열린 문틈 사이로 익숙한 단어들이 흘러나왔다. 언어 치료, 발달, ABA, 병원.
그 친구는 아이가 둘이다. 그중 둘째가 발달이 조금 느리다고 한다. 말이 터지지 않아 언어치료를 받는 중이고 의자나 식탁에서 마구 뛰어내리는 등 산만한 행동을 한단다. 그러던 어느 날 언어치료사에게 병원에 아이를 데려가서 진단을 받아보라는 말을 들었다. 어떤 병원을 가야 할지, 병원에 가면 무엇을 하는 건지 궁금해서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내가 의사는 아니지만, 아내의 말을 들어보면 특별한 장애가 있을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친구는 매우 불안해 보였다. 자신의 남편은 너무 충격을 받아서 우울증 직전이란다. 만약 장애가 있다면 정말 모든 힘을 쏟아서 아이를 정상으로 만들겠단다. 검색해보니 ABA라는 게 있더라, 한 달에 400만 원 이상이라 너무 비싸지만 몇 년 투자해서 아이를 '정상'으로 만들어보려고, 라며 의지를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통화의 마지막을 이런 말로 마무리했다.
우리 지원이(가명)가 정상이기만 하면,
나는 아무 소원이 없어...
정상으로 만들겠다는 말, 정상이기만 하면 아무 소원이 없다는 말이 너무 거슬렸다. '너희 아이는 장애가 있고, 여러모로 부족하고, 도와주어야 하는, '비정상' 이잖아. 너희도 알고 있지?'라고 말하는 듯했다. 내가 너무 베~베~ 꼬였나?
정상? 비정상?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을 찾아보면 정상(正常)은 '특별한 변동이나 탈이 없이 제대로인 상태'를 말한다. '비'정상은 정상이 아닌 상태, 즉 특별한 변동이 있거나 탈이 난 상태이다. 어디까지가 정상의 범주이고 어디까지가 비정상의 범주인가? 갈색 머리는 정상인가? 회색머리는? 몸에 털이 많은 건 정상인가 비정상인가? 다리가 없거나 말을 잘하지 못하면 비정상인가? 말을 얼마나 못 해야 비정상인가? 우리 팀장은 보고를 잘 못하는데, 비정상인가?
미국에 살고 있는 '루시'의 이야기를 해보자.
루시는 롱보드와 서핑을 좋아하는 20대 여성 직장인이다. 루시에게는 한 가지 고민이 있다. 생리통이 너무 심하다는 것이다. 진통제를 먹으면 통증이 가라앉았지만, 작년부터는 내성이 생겼는지 통증이 잘 없어지지도 않는다. 매달 생리 시기가 다가오면 우울하다. 어떤 달은 우울감이 너무 커서 일상생활이 힘들 정도다. 매달 휴가를 내보지만, 이제 눈치가 보여 휴가도 내기 힘든 상황이다.
루시는 단지 생리통이 조금 심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2013년 이후 '정신 장애'를 가진 사람이 되었다. 미국정신의학회(APA)의 정신질환 진단과 통계 편람 5판(DSM-5)이 개정되었기 때문이다. 2013년에 개정된 DSM-5에서는 '월경 전 증후군(premenstrual dysphoric disorder, PMDD)'이 정식 진단으로 승격되었다. 이제 루시는 'DSM-5'에 따라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것으로 분류된다. 루시는 정상인가? 비정상인가? 2012년의 루시는 정상이고 2013년의 루시는 비정상인가?
루시는 실존인물이 아니다. 이 이야기를 내가 만들어냈다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사실은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대부분의 정신병이 이런 과정을 거쳐 정신 장애로 분류되었다는 것이다.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는 객관적인 기준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는 기준은 언제나 주관적이다. 동일한 대상을 보고도 누군가는 정상으로, 누군가는 비정상으로 여긴다.
사람을 정상과 비정상으로 나누는 건 위험하다. 장애인, 성소수자는 비정상이다, 라는 편견은 30년이 흐른 뒤 갈색 머리카락은 비정상이다, 안경을 쓴 사람은 비정상이다, 라는 말로 충분히 변질될 수 있다.
내가 상상하는 미래
2050년, 대한민국. 30년이란 시간 동안, 장애인을 분리하고, 성소수자를 수용소에 몰아넣었다. 비정상인 존재를 없애버리니 사회가 깨끗해진 느낌이다. 과정은 힘들었지만 단일 민족 대한민국을 드디어 만들었다고 생각하니 내가 자랑스럽다. 이제 '갈색인'(갈색눈과 갈색 머리카락을 가진 놈들)이 눈에 거슬린다. 그들은 순수 혈통이 아니다. 격리해야 마땅하다. '갈색인'만 봐도 역겹고 짜증이 나 견딜 수가 없다. 아쉽지만 음식점 출입이라도 제한했으니 다행이다. 이제 편하게 밥을 먹을 수 있겠다.
이런 미래를 상상해 보았다. 전혀 가능성이 없는 미래라고, 말도 안 되는 상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이런 극단적이고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하느니 라면에 밥이나 말아먹고 자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렇게 바꾸어서 글을 읽어보면 어떨까?
'유태인'이 눈에 거슬린다. 그들은 순수 혈통이 아니다. 격리해야 마땅하다. '유태인'만 봐도 역겹고 짜증이 나 견딜 수가 없다. 아쉽지만 음식점 출입이라도 제한했으니 다행이다. 이제 편하게 밥을 먹을 수 있겠다.
갈색인을 유태인으로 바꾸어 읽는 순간 역사의 한 장면이 되어 버린다. 조센징으로 바꿔 읽으면 더 느낌이 올지 모르겠다. '아이들'로 바꾸어 읽으면 얼마 전 까지만 해도 논란이 되었던 '노 키즈 존' 이야기가 된다. '장애인'으로 바꾸면 발달 장애아동의 상동 행동을 이상하게 쳐다보며, 자신의 아이를 근처에도 못 가게 하는 상황의 이야기가 되어 버린다.
"우리 아이가 정상이기만 하면 소원이 없어."라고 말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 받아들여지는 세상 속에서 '내 상상 속 2050년 대한민국'의 실루엣을 본다.
누군가가 이렇게 말하면 '뭐가 정상이고 뭐가 비정상인데?'라고 되물어볼 수 있는, 이렇게 되묻는 것이 당연한 세상 속에서 사는 상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