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성실한 베짱이 Aug 22. 2020

너에게 가방을 선물해 줄께

말이 통하지 않을 때가 많지만 괜찮아.

찐: 예이,히우, 때허이이 호자이유
엄마: 예은이랑 희운이랑 태현이가 코자?
찐: 이이잉
엄마: 아니야?
찐: 호자이유~
엄마: 코자?
찐: 이이이
엄마: 아니야?
찐: 아~이야, 호자...호야...

엄마: 아... 미안해, 엄마가 못 알아듣겠다. 엄마가 못 알아들어서 찐이 많이 속상하지?
찐: 네에...

엄마: 찐이, 친구들이 말을 못 알아들어서 속상해
찐: 아이예에(안돼)... 아이대에(안돼)...
엄마: 친구들이랑 말이 잘 안돼?
찐: 네에.. (시무룩)

엄마: 그래도 우리 찐이 엄마가 하는 말은 다 알아듣잖아!
찐: 네에!
엄마: 근데 친구들이 찐이 말은 잘 못 알아듣는구나...
찐: 네...
엄마: 아이고, 우리 찐이 속상하겠다. 그래도 찐이 예전에는 노래 못 했잖아. 근데 이렇게 노래를 잘하는 찐이가 되었네! 말도 잘할 수 있을 거야. 엄마는 믿어. 친구들도 찐이가 하는 말 잘 알아들을 수 있을 거고.

찐: 다이여~ 다이여~, 찌찌찌찌 찌이야~!
(다잊어~ 다잊어~, 찐찐찐찐 찐이야~!)

엄마: 그렇지. 그렇게 노래하면 돼.

(아이들 이름은 가명을 사용하였습니다)


아내가 어젯밤, 잠자리에 들기 전 있었던 일을 말해줬다. 아이가 느꼈을 답답함이 그대로 전해진다. 그 '답답함'은 곧 왜 우리에게 이런 일이 일어난 거지, 라는 '억울함'으로 바뀐다. 친구들과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 아이의 마음이 느껴진다. 아이가 하는 노력이 보인다. 먹먹하다.


어떻게 하면 아이가 말을 할까. 어떻게 하면 친구를 만들어 줄 수 있을까. 언어치료를 더 늘려야 할까? 인지의 문제이니 인지 치료를 늘릴까? 인지를 늘리려면 감각이 중요하니 감통 수업을 늘려야 하나? 감각도 대 근육이 발달이 우선이니 체육 수업을 늘릴까? ABA라는 교육이 있다는 데 그걸 한 번 알아볼까? 조금 강압적인 방법을 사용하는 언어치료가 효과가 좋다는 데... 그것도 한 번 알아봐야 하나?




...아나톨의 작은 냄비

(La petite casserole d‘Anatole)


https://youtu.be/PxyAzNtdo38


이자벨 카리에의 <...아나톨의 작은 냄비 La petite casserole d‘Anatole>라는 책이 있다. 아나톨은 작은 냄비를 몸에 달고 태어났다. 땅에 질질 끌리는 무거운 냄비는 아나톨을 불편하게 만든다. 자신에게는 없는 불편한 냄비를 달고 다니는 아나톨을 사람들은 이상한 눈빛으로 쳐다본다. 따돌리거나 무시하기도 한다.



아나톨은 평범하지 않은 사람을 만난다. 그 사람은 아나톨이 냄비를 가지고 살아가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가방도 주었다. 작은 냄비를 가방에 넣고 어깨에 둘러맨다. 더 이상 냄비가 땅에 끌리지 않는다. 아나톨은 가방을 메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고, 관계를 맺는다.




찐이의 냄비와 아빠의 착각


찐이도 작은 냄비를 하나 달고 세상에 나왔다. 냄비가 주는 불편은 크다면 크고 작다면 작지만, 경쟁이 최고의 가치인 이 세상을 살기엔 부적절하다. 경쟁을 할 수 없으니 배제해야 한다. 사회에 기여할 수 없으니 가치자 적다. 가치가 적으니 다른 사람들의 호의를 받으며 '보호될' 뿐이다. 그러니 저 냄비를 없애버려야 한다. 어떤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끊어버려야 한다.


아이가 가지고 있는 불편함은 병이다. 난 어떻게 해서든 그 병을 치료해 줄 것이다. 그게 부모의 의무다. 부모의 의무를 다해, 이 경쟁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갈 수 있게끔, 사람들에게 무시당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게끔 해주고 싶다.


각종 치료와 집중교육을 아이에게 퍼붓는다. 초등학교 1~2학년까지 교육의 효과가 높다. 언어 치교, 음악 치료, 미술 치료, 인지 치료, 감각 통합 치료, 특수 체육, ABA(응용 행동 분석 치료) 등등 수많은 치료를 시도한다.


아이보다는 냄비에 집중했다. 어떻게 해서든 냄비를 끊어주려 했다. 그게 아이를 위한 일이라는 핑계를 대면서 말이다.




아이는 스스로 자란다.


아이가 어릴수록 아이의 장애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장애를 고쳐보려는 의지도 강하다. 아직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인 우리 찐이의 '병'을 고쳐보려 했다.


조기 교육실(장애 학생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30년 가까이 특수교육을 한 특수교사 심승현은 그의 책 <공중부양의 인문학>에서 '배움은 철저히 배우는 자의 몫'이라 말한다. 아이의 성장에 '대부분'의 자연 성숙과 '약간'의 구조화된 교육이 필요할 뿐이며, 발달장애를 가진 아이도 마찬가지라 말한다. 또한 장애'라는 이유로 인간의 보편적인 자연 성숙을 무시하면 안 되며 의도적인 교육활동을 통해 성숙할 아이들은 어떤 교육방법으로도 성숙한다는 사실을 30년간 130여 명의 아이들을 만나며 확인했다.



찐이가 끊임없이, 매일매일 성숙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는다. 장애가 있고 없고는 상관없다. 모든 아이는 스스로 크고, 성숙한다. 우리 찐이도 그렇다.


노래를 따라 부르지 못했던 찐이가 어설프게라도 노래를 따라 부른다. 어린이집은 그냥 머물다 오는 곳인 줄 알았지만, 이젠 친구들을 관찰하고, 집에 와서 친구들이 했던 행동을 흉내 낸다. 앞서 가는 아이를 보며 저 아이가 할 수 있는 것을 왜 찐이는 못하지, 라는 관점으로 바라보면 한 없이 부족하다. 그러나 어제의 찐이, 1년 전의 찐 이를 생각해 보면 아이는 훌쩍 자랐다.




삶의 길엔 목적지가 없다.


'장애'가 있다고 배제되어 다른 길을 걷지 않는다. 자신만의 속도로, 조금은 다른 방식으로 같은 길을 걸을 이다. 가 나처럼 걸을 필요도, 앞서 가는 그들을 따라잡아야 할 이유도 없다.


미친 듯이 경쟁하며 빠르게 걷고 뛰어 목표로 했던 지점에 남 보다 빨리 도달하면 성공한 인생이 아니다. 인생은 마라톤이라 하지만, 성대한 인파가 맞이해 주는 피니쉬 라인은 삶의 길엔 없다.


걷는 것 자체가 삶이요 목적이다. 걷는 방법, 걷다가 만나는 사람들, 걷다가 보는 주변 풍경, 걷다가 겪는 특별한 일과 걸으며 느끼는 평범한 일상이 바로 삶 그 자체이다.


끊어낼 수 없는 냄비를 끊어내려 너무 애썼다. 너도 힘들고 나도 힘들었다. 함께 걷는 것을 즐겨야겠다.



찐이에게,

냄비 끌고 다니느라 힘들지? 그 냄비만 끊어 주면 다 괜찮아질 줄 알았는데... 그거 안 떨어지는 거더라. 아빠가 미안해. 몰랐어. 이제라도 알았으니 너무 애쓰지 말고 조금은 편하게 살자꾸나.

아빠가 냄비를 담을 스타일리시한 가방을 찾아볼게. 그 가방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을 찾는 것도 좋겠다. 아빠가 하나 멋들어지게 만들어 줄 수도 있고.

그전에, 먼저 오늘 집에 가서 꼬옥 안아주고, 너와 이야기 나눌게.
매거진의 이전글 '장애인 인식 개선 교육'이 달라졌어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