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싸웠다. 코로나 때문에

우리가 싸운 3가지 이유

by 성실한 베짱이

아내와 싸웠다.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싸우지는 않았지만, 오랜만에 충분히 감정적이었다.


"내일 지석이 형이 밥 먹으러 온다네"


이 말로 시작한 싸움은 내가 굳은 얼굴로 침대에 눕는 걸로 마무리되었다. 싸운 이유? 음... 굳이 말하면 코로나 때문이랄까?


내일 지석이 형이 밥 먹으러 온다네. 그 우리 찐이 처럼 발달 장애 아들 키우는 집 있잖아. 내가 ㅇㅇ병원 말해줘서 오늘 진료 봤다고 내일 보자고 하네.

ㅇㅇ병원 우리도 맨날 가는 덴데 뭐


이 첫 대화에서 난 감정이 상했다. 왜 이리 감정이 상했을까. 다시 생각해 봐도, 아내의 톤을 기억에서 끄집어내어 읽어봐도, 글로 적어봐도 감정이 상할 포인트가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난 감정이 상했고, 짜증이 났다. 왜? 내 이야기를 무시한 걸로 느껴졌다. 자기 이야기는 폭포수처럼 쏟아내면서 내 이야기는 왜 듣지 않는 거야!,라고 생각했다.


아내도 감정이 상했고, 반응은 뾰족했다. 왜 이런 일상적인 대화에 감정이 상했을까? '코로나 오해(?)' 때문이다. 아내는 지석이 형을 저녁에 만난다 생각했다.

난 집에서 코로나 때문에 애들이랑 지지고 볶고 앉아 있는데 지는 시답잖은 정보나 얻을라고 친구 만날 핑계를 대고 앉아 있네... 회사일로 접대다 회식이다 저녁 먹는 거도 짜증이 뻗치는데! 난 친구는커녕 애들 엄마들하고도 커피 한 잔도 안 마시는데! 애들을 위해서! 우리 찐이는 다른 아이들과는 다르니까!! 기저질환이 있으니까!!! 근데 저녁에 놀러간다고오오오


저녁이 아니라 점심이었다. 작은 오해에서 싸움 시작되었다. 오해를 풀어봤지만 싸움은 풀리지 않았고, 감정싸움이 되어 버렸다. 끝낼 수 있는, 아니 너무 쓸데없어서 시작도 할 필요도 없는 싸움이었다. 이 싸움은 빌드업되기 시작했다. 코로나 상황에서 다른 사람과의 식사는 과연 필요한가, 논쟁으로 옮겨갔다.


이슈는 이슈를 만들고 상한 감정은 막말을 만든다. 난 아내에게 해서는 안 될 말을 해버렸다.

그래. 넌 계속 니 얘기만 해라.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잖아.
코로나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 밥 안 먹는 건 니가 선택한 거잖아. 왜 애들 핑계를 대!


한 번 내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나중에 다시 확인해 볼 필요가 없을 정도로 말이다. 막말은 서로의 감정을 더욱 격하게 만들었고, 예전에 '네가 잘못했던 일들'까지 생각나게 만들었다. 화가 난 아내를 두고 잠을 청했다. 끓어오르는 감정을 다스리는데 다른 길은 없어 보였다. 싸움은 나의 '비겁한' 도피로 끝났다.



우리가 싸운 3가지 이유

새벽에 일어났다. 어두운 거실에서 굴러다니는 장난감을 밟았다. 발바닥의 통증이 어제 싸움의 여운을 되살아나게 했다. 오늘은 조금 길게 달려야 할 것 같았다. 도대체 왜, 나와 아내는 싸운 걸까? 무엇이 문제였을까?


첫 번째로,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말들을 내뱉었다. 비꼬기, 비난, 자의적 판단, 죄책감을 불러일으키는 말을 했다. '그래... 넌 계속 니 얘기나 해라!' 아내의 태도를 비꼬고 아내 자체를 비난하는 말이다. '넌 남의 말을 듣지 않는 사람이야'라고 자의적으로 판단하고 근거 없이 비난했다. 아내에게 죄책감을 불러일으켜서 내 마음대로 움직이려 한 비열하고 위선적인 말이었다.


두 번째로, 내가 무조건 옳고 아내는 틀렸다고 생각했다. 어제 싸우는 중에도 분명히 이 부분을 인식했다. 그렇지만 아니라고, 난 그렇지 않다고 속으로 반항했다. 난 지극히 유연하며, 아내의 의견을 받아들이는 사람이라고 날 속였다. 내가 가진 생각이 무조건 상식적이며 아내는 비 상식적인 생각을 한다고 확신했다. 이는 내 고질적인 문제다. 대부분의 대화에 이런 아집을 가지고 임하는 듯하다. 난 완벽하지 않다. 난 틀릴 수 있다. 어제 내가 한 말, 행동은 틀렸다.


마지막으로, 내 욕구 때문이었다. 마셜 로젠버그의 《비폭력대화》에 따르면, 어제와 같은 상황에서 이렇게 했어야 했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관찰하고 무엇을 느끼는지를 표현한다. 그 느낌이 나의 어떤 욕구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알아채고, 내가 원하는 것을 상대방에게 표현함으로써 긍정적인 행동을 정중히 부탁한다. 이를 통해 외부의 비판이나 비난에 대해 변명하고 물러가거나 폭력적으로 반격하는 것을 멈출 수 있다.


어제 나는 아내가 내 말을 무시한다고 생각해서 짜증이 났다. 그 짜증은 '내 이야기를 하고 싶다, 힘들다는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상대방이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내 욕구에 연결되어 있다.


상대방의 웃음거리가 될까 봐, 관심 없어할까 봐, 무시할까 봐, 재미없을까 봐, 시간 낭비라고 생각할까 봐, 비웃을까 봐 두렵다. 안전한 소재, 완벽한 타이밍을 항상 생각하고 이야기를 꺼낸다. 이야기는 항상 주변을 맴돌고, 농담 따먹기가 되기 일수다. 예전에는 이 욕구를 몰랐다. 어제와 같은 짜증이 오기 전에 내가 원하는 것을 알아차리는 연습을 해야겠다. 건강한 방법으로 욕구를 표현하면 쓸데없는 감정 소모는 줄어들겠지.



기울어진 운동장

이 싸움은 아내와 나의 관계가 이미 기울어져 있다는 사실을 나에게 다시 한번 상기시켰다. 아내는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포기를 암묵적으로 강요당했다. 회사에서 얻는 성취감, 동료와의 농담 따먹기, 친구와의 만남 등 많은 것을 포기했다. 내가 포기해도 되는 일이었지만 그 선택지는 없었다. 답이 정해져 있는 질문지를 아내에게 내밀었다.


기울어진 관계에서 포기를 강요당하는 쪽은 억울하다. 그 억울함을 알아주지 않으면 더 억울하고 우울해진다. 억울함을 알아채고, 이해하고, 포용해야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오히려 도움이 되지 않는 말을 내뱉고, 내가 무조건 옳다는 건방진 생각을 했다. 내 욕구를 건강하지 못한 방법으로 표출했다.


이제는 달라져야겠다. 오늘은 더욱 칼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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