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을 그대로 받아내기
집으로 오는 차 안에서 '빤뽀'는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대성통곡이라는 말이 이럴 때 쓰는 말이구나 싶었다. 얼마나 답답하고, 얼마나 짜증이 나고, 얼마나 불안했을까.
빤뽀는 자신이 하는 대부분의 생각들, 자신이 느끼는 대부분의 감정들에 대해 죄책감을 느낀다. 찐이의 장애, 가족에게 벌어지는 불행들이 모두 자신의 잘못인 것만 같다. 나쁜 아이가 되기는 극도로 싫다. 그러니 내 감정을 절대로 드러내서는 안 된다. 내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이 절대로 알면 안 된다.
모임에 있는 5시간 동안 빤뽀는 자신의 감정을 감추어야 했다. 근데 그게 잘 안 된다.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어른처럼 완벽하게 숨겨지지 않는다. 어설프게 엄마에게 귓속말을 한다. 절대 이야기하지 말라고. 주변에 이목이 집중된다. 어! 왜 이러지. 아무 말도 안 했는 데 왜 사람들이 날 나쁘게 보는 것 같지. 불안해, 무서워. 짜증 나, 화가 나, 다 싫어!
아주 조금, 정말 아주 조금 빤뽀의 마음을 이해했을 뿐이다. 엄마에게, 아빠에게 화를 내는 아이의 심정을 알았다. 이 답답하고, 무서운 시간과 공간에서 누군가가 나타나서 자신을 꺼내 주길 바랬을 거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당연히 엄마나 아빠였을 거다. 근데 그 당시에는 몰랐다. 알 수 있었지만 체면 때문에 외면했을 수 있다. 아이가 대성통곡을 하니 조금 알 것 같았다.
빤뽀의 시선을 그대로 받아내기
쳇바퀴에서 빠져나오기 위해서는 빤뽀의 시선을 온몸으로 받아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건 열린 마음으로 대화하는 것이다. 남자는 자신의 감정을 잘 숨겨야 한다고 직간접적으로 배웠다. 어떻게 배웠는 잘못 배웠다. 누구든 자신의 욕구를 알고, 자신의 감정을 건강하게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온 힘을 다해 아이의 이야기를 듣는다. 정기적으로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든다.
둘째, 부정적인 감정을 없애려 하지 않는다. 아이의 부정적인 감정을 너무 급하게 진정시키려 하거나 바꾸려 해서는 안된다. 그렇지 않아도 자신의 슬픔이 밖으로 표출되지 않는 상황이다. 그런데 부모마저 감정 표현을 없애려 하면 안 된다. 충분히 슬퍼할 수 있도록, 충분히 짜증을 낼 수 있도록 지켜봐야 한다. 이를 이해한다는 것을 말로, 행동으로 지속적으로 표현해야 한다.
감정표현을 도와주는 것도 도움이 된다. 아이가 드러낸 감정에 대해 여유롭게, 주의 깊게 살펴본다. 아이의 표현에 대해 바로 "아니야", "그렇지 않아"라고 방어하지 않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셋째, 네가 하는 생각은 당연한 거라 말한다.
"빤보야. 찐이가 자꾸 널 귀찮게 하고 때리니 너무 속상하다. 찐이는 자신을 조절하기 힘든 상황이긴 해. 그렇다고 하더라도 너에게 한 찐이 행동은 잘못된 거야. 네가 화를 내고 짜증을 내는 건 당연해."
"나도 찐이가 없어져 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곤 한단다. 네가 하는 찐이에 대한 생각들, 죽여버리고 싶다, 안 보였으면 좋겠다, 같은 생각은 당연한 거야."
"산책을 나가면 찐이가 자꾸 빤뽀 너를 쫓아다니고, 엄마랑 잡은 손을 끊어 놓고 하면 아빠는 참 힘들단다. 너는 어떠니 빤뽀?"
네가 느끼는 것, 네가 생각하는 것이 당연한 거라는 걸 알려주자. 네 탓이 아니라 이야기해주자.
넷째, '빤뽀 이야기', '찐이 이야기'라는 책을 만들어 본다. 자신의 이야기를 책으로 만들어 보면 자신을 더욱 잘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자신의 이야기에 찐이에 대한 생각이 빠질 수 없다. 역시 책으로 만들어 보자. 2권의 책을 만들어 집에 꽂아놔야겠다.
다섯째, 비장애인 형제들의 자조 모임을 찾아본다. 자신과 같은 감정을 느끼고 있는 사람과의 대화는 자신의 슬픔을 이해하고 표현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나만 이런 감정을 느끼고 있는 게 아니구나, 라는 생각은 죄책감을 덜어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나는 여전히, 오늘도 괜찮지 않습니다> 에서 '케이트 스트롬'은 이렇게 말한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그 당시 내겐 특별한 치료가 필요한 게 아니었다. 정말 필요했던 것은 슬픔, 죄책감, 분노와 같은 감정을 스스로 이해하고, 내가 누구인지 받아들이고, 같은 상황에 있는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는 방법을 아는 것이었다.'
비장애 형제들에게만 이 다섯 가지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가족을 구성한 사람이라면 누구든, 사람과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필요하다. 단 한 명의 예외 없이, 행복한 삶은 자신의 감정을 알고 이를 솔직하고 건강하게 표현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우리 가족은 어쩌면 빤뽀와 찐이로 인해 이미 '지름길'에 들어선 것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