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시선

맛없는 비빔밥

by 성실한 베짱이

엄마의 일

아내는 개인 정보에 매우 민감하다. 가입한 사이트는 '다음'뿐이다. 개인 정보가 유출될까 두려워 어떤 사이트에도 가입하지 않았다. 내 명의의 핸드폰을 10년이나 쓰고 있다. 얼마 전 '넷플릭스'에 대해 말했더니 그게 뭐 냔다. 4차 산업혁명이고 뭐고 이세돌이 알파고한테 바둑을 졌던 이겼던 관심 없다. 스마트 폰으로 하는 은행 업무는 왠지 신뢰가 가지 않는다. 컴퓨터를 켜고 공인인증서가 담긴 USB를 꽂고 보안카드의 비밀번호를 넣어야만 안전한 듯하다.


이런 아내가 아주 탁월한 분야가 있다. 바로 검색이다. 특히 '약'검색은 국내 최고라 자부한다. 어떤 성분이며, 부작용은 뭔지, 어떻게 먹어야 하며 적당량이 얼마인지 단번에 찾아낸다. 그 약을 복용했던 사람들의 글들을 찾아낸다.


찐이에게 항경련제를 먹이기로 했다. 아내는 항경련제에 대한 지식도 검색을 통해 미친 듯이 흡수하기 시작했다. 항경련제는 강한 약이란다. 그렇게 많던 아이의 경련을 멈추게 하는 약이니 당연하다 싶었다. 부작용도 많다고 한다. 탈모, 저성장, 흥분 유도, 구토, 발달 장애, 우울증 등등 수도 없단다. 검색을 하면 할수록 죄책감은 늘어갔다.


이런 꼼꼼함과 예민함이 아이의 건강이 악화되는 것은 막았을지 몰라도 자신의 건강이 악화되는 건 막아내지 못했다. 항상 걱정을 해야 했고, 통계적으로 1%, 아니 어쩌면 0.1%도 채 안 되는 확률을 가진 부작용을 항상 신경 썼다. 아이의 컨디션을 최상으로 유지하기 위해 자신의 컨디션은 최악으로 내 몰았다. 죄책감이라는 기가 막힌 동력으로 아내는 앞으로 쭉쭉 나아갔다. 자신의 몸이 부서지는 것도 모른 채. 그 덕에 아내는 남들보다 2배나 빨리 뛰는 심장을 가지게 되었다. 덕분에 늦은 밤 잠을 이루지 못하고 감성적인 생각을 하는 사림이 되었다.



불쾌한 시선과 피해의식 사이 그 어딘가.

아내도 나도 언젠가부터 친구를 만나는 것이 괴로워졌다. 모든 친구가 아니다. 아이를 키우고 있는 친구들을 만나기 힘들다. 그들이 하는 아이 이야기들이 하나하나 마음에 들지 않는다. 친척들을 만나는 경우에도 이런 감정은 계속된다. 아니 더 심하다. 장애 아이를 키우는 내 상황을 알고 있기에 날 더 배려해 줬으면 한다. 내 이야기를 들어주었으면 한다. 친구들에 비해 바라는 것이 훨씬 크기에 실망도 크다.


도대체 그들이 무슨 말을 하기에 이렇게 상처를 받을까? 도대체 그들이 얼마나 날 이해해 주지 않기에 이렇게 속상하고 짜증이 날까?


일상적인 대화들이다. 일상적인 대화라 순간순간 계속해서 힘들다. 그들은 아이를 키우며 자신들이 느끼는 고민, 자랑, 감정을 이야기한다.


7살이면 다 키운 거 아니냐. 부럽다. 아기 용품은 이 제품이 좋다. 우리 아이는 소심해서 너무 걱정이다. 우리 아이는 너무 적극적이라 걱정이다. 감기에 걸려 걱정이다. 요새 말이 너무 늘어서 귀여워 죽겠다. 퇴근해서 집에 들어가자마자 하는 첫마디가 "아빠! 선물!"이다. 너무 귀엽다.


8살인데 아직 말을 하지 못하는 찐이를 매일 보는 우리에게, 놀이터에서 다른 아이를 밀거나 머리채를 끄집어 당기면 어떡할지를 고민하는 우리에게, 아프지만 말라는 새해 다짐을 7년째 하고 있는 우리에게 이런 일상적인 대화들은 가슴을 긁는다. 그런 이야기들을 거리낌 없이 내뱉는 사람들이 미워지기도 한다. 항상 웃고 있는 가면이 있다면, 똥 씹은 듯한 내 표정을 들키지 않을 가면이 있다면 사고 싶다. 언제쯤 일상적인 대화를 일상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지 오늘도 생각한다.



맛없는 비빔밥

말이 아직 안 터져서 그렇지 말만 한 번 터지면 잘할 거야.
그럼. 그럴 리가 없지.
그저 다른 아이들보다 조금 늦을 뿐이야.


아무리 기다려도 찐이는 말이 터지지 않았다. '말'대신 하나 터진 게 있다면, 아내와 내 '속'이다. 우리 '속'은 여러 번 터졌다.


터진 속으로 아이의 장애가 스윽 들어와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 좋으련만, 아이의 장애를 받아들이는 일은 생각보다 매우 어렵다. 가슴엔 원망, 분노, 짜증, 화, 무력감, 상실감, 죄책감이 가득하다. 아이가 똑똑해질 수 있으리라는 희망, 말이 터지기만 하면 된다는 경험에 의지한 소문, 혹시 나 때문인가 하는 죄책감, 왜 이런 일이 나에게 생긴 거냐는 원망, 부모라는 두 글자에 담긴 책임감 등이 비빔밥처럼 마구 뒤섞인다. 여기에 경제적, 육체적인 고통이라는 고추장이 걸쭉하게 한 숟갈 들어가면 사실과 거짓, 희망과 욕망이 뒤엉킨 맵고, 짜고, 맛없는 비빔밥이 탄생한다.


맛없는 비빔밥을 먹으며 모든 시간을 아이를 위한 음식, 아이를 위한 교육에 투자한다. 부모는 사라진다.


대개의 경우 엄마가 이 역할을 떠맡는다. 단지 엄마라는 이유로 희생을 강요한다. 선택이라 하지만 선택지는 하나밖에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혼자 약을 검색하며 무엇을 바라봤을까? 혼자 거슬리는 친구들의 말을 들으며 무엇을 바라봤을까? 혼자 비빔밥을 먹으며 무엇을 바라봤을까? 아내의 시선은 어디에 머물러 있을까? 가늠하기 조차 힘들다. '나 좀 어떻게 해줘...'라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고, 내가 그 눈 빛에 제대로 응했기를 바랄 뿐이다. 그리고 늦지 않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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