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빤뽀'의 시선(1/2)

비장애 형제는 괜찮지 않습니다.

by 성실한 베짱이
부부가 식당 문을 열고 들어온다. 뒤이어 자폐성 장애를 가진 남자아이, 비장애인 여동생이 따라 들어와 자리에 앉는다. 식당에서 주문을 하고 식사를 시작한다. 자폐성 장애를 가진 아이는 가만히 있지 않는다. 큰 소리로 같은 단어를 반복하거나, 옆 테이블의 음식을 집어 먹기도 한다.

옆 테이블의 한 남성이 자리에서 일어나 이 가족에게 소리친다. ‘왜 저런 아이를 데리고 공공장소에 나왔냐.’, ‘저런 아이는 집에 있어야 한다.’ 같은 무례한 발언이 시작되었다.

그러자 식당 안의 사람들은 가족들을 보호한다. 해당 남성을 똑바로 바라보며 ‘저 아이에게는 아무 잘못도 없고, 여기서 다른 사람들을 불쾌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당신.’이라고 지적하기도 한다.

장애 아동이 불편하게 하지 않았냐는 MC의 질문에 한 시민은 ‘여긴 공공장소고, 공공장소에 있는 이상 우리는 같은 것을 누릴 권리가 있다.’라고 대답한다.


《What Would You Do?,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라는 미국의 인기 TV 프로그램의 한 장면이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몰래카메라라고 생각하면 된다. 감동적이다. 한국에서도 이런 몰래카메라를 진행해 보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다. 이런 감동적인 장면이 연출된다면 정말 하염없이 눈물이 흐를 것 같다.


이 에피소드는 책 《나는, 어떤 비장애형제들의 이야기》에 소개되어 있다. 정신적 장애를 가진 형제를 둔 비장애형제들의 자조 모임인 '나는'에서 만든 책이다. 이 책은 '내 이웃의 아이'에게 무한한 사랑과 배려를 보내고 있는 지극히 감동적인 이 상황에서 소외된 한 사람을 지목한다.


비장애 형제는 '장애 형제와 조금의 상호작용도 하지 않는 것은 물론 몰래카메라가 진행되는 내내 배경처럼 앉아 단 한마 디도 하지 않습니다. 분명 동생도 부모와 함께 당황스럽고 불쾌한 상황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식당 안의 선한 사람들이 동생에게는 어떤 위로의 말도 건네지 않죠.'


찐이의 누나, '빤뽀'의 얼굴이 떠올랐다. 출근하는 지하철이었지만 흐르는 눈물을 참기 힘들었다.


찐이를 데리고 병원에 다녀오던 날, 의사에게 지적장애가 있을 거란 이야기를 처음 들었던 바로 그 날, 잠자리에 들려고 하는 5살 빤뽀에게 난 이렇게 말했다.


"아빠는 빤뽀가 찐이를 지켜줬으면 좋겠다. 놀리는 아이가 있으면 혼내주고, 같은 학교 다니면서 찐이 많이 도와주고 말이야"


이 말이 어떤 무게를 가지고 있는지 그때는 몰랐다. 이 말의 뜻을 깨닫고 무게를 인식하는 순간 <올드보이>의 오대수가 생각났다. 내 혀를 잘라버리고 싶었다.



빤뽀의 시선

엄마 배가 커졌다. 동생이 들어있단다. 이제 며칠 뒤면 동생이 생긴다. 기대된다. 동생을 바랐던 적은 없지만 신기하긴 하다.

엄마가 이제 며칠 동안 없다. 난 할머니랑 있어야 한단다. 찐이가 드디어 나오기 때문이다. 엄마랑 떨어지긴 싫지만 어쩔 수 없다.

일주일이 지나서 엄마를 볼 수 있었다. 엄마가 있는 병원으로 갔다. 병원이 아니고 산후 조리원이랬나? 어쨌든 엄마는 큰 옷을 입고 웃으며 나를 안아 주었다. 할머니는 내가 말도 잘 듣고 아주 잘 지내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엄마가 날 걱정해줬으면 좋겠는데... 근데, 엄마 아빠도 날 칭찬한다. 조용히 말 잘 들으면 칭찬을 받는다. 그리고 몇 밤만 더 자면 엄마가 온다니 좀만 더 참자.

찐이가 집으로 왔다. 정말 조그만 아기다. 조금 이상하게 생기긴 했지만 너무 귀엽다. 근데 엄마가 날 쳐다보지 않는다. 찐이만 챙긴다. 아빠도 할머니도 모두 찐이만 쳐다본다. 슬프다.

아침에 일어났는데 엄마, 아빠가 없다. 찐이가 아파서 병원이 있단다. 날 버린 건 아닌가? 날 두고 찐이랑 도망가 버린 건 아닐까? 엄마한테 조금 떼를 썼는데 그래서 그런가? 불안하다.

어? 아침에 일어났는데 엄마, 아빠가 또 없다. 이번에도 찐이가 아파서 병원에 있단다. 찐이가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잠깐 생각했는데 그것 때문인가? 무섭다. 너무 무섭다.

확실하다. 엄마는 날 사랑하지 않는다. 이렇게 조용히 잘 지냈는데도 날 쳐다보지 않는다. 항상 찐이 편이다. 찐이만 사랑하고 난 사랑하지 않는다. 맨날 찐이는 잘 모른단다. 찐이는 잘 모르고 약해서 내가 이해해야 한단다. 찐이가 날 때려서 나도 찐이를 때리면 그러면 안된단다. 억울하다. 뭔가 잘못됐다. 다 싫다. 정말 싫다.

더 이상 조용히 지낼 필요가 없다. 조용히, 착하게 지내도 엄마도 아빠도 절대 날 쳐다보지 않을 거다. 슬프다. 화가 난다. 엄마에게 소리를 질렀다. 욕도 했다. 길거리에 누워 뒹굴렀다.


찐이를 지켜주라는 아빠의 말을 들으며 빤뽀는 무엇을 쳐다보았을까? 조용히 말 잘 듣는 아이로 지내면서 빤뽀는 무엇을 쳐다보았을까? 날 좀 봐달라고 바락바락 소리를 지르며 빤뽀는 무엇을 쳐다보았을까?


아이가 무엇을 바라봤는지 알 수 없다. 날 좀 봐달라는, 나도 사랑해 달라는 간절한 눈빛으로 엄마와 아빠의 눈을 쳐다봤을지도 모른다. 만약 그랬다면, 난 몰랐던 거다. 아니 아이의 간절한 눈빛을 눈치챘지만 애써 외면했었을지도 모른다. 찐이 때문에 힘들다는 핑계로 말이다.


뇌병변 언니와 생활한 경험이 있는, 비장애인 형제를 위한 상담가이자, 저널리스트인 케이트 스트롬은 책 <나는 여전히, 오늘도 괜찮지 않습니다>에서 이렇게 말한다.


'나는 언니가 장애인이기 때문에 온갖 관심을 받는 것을 질투했고, 내가 더 관심을 받기 원했다. 하지만 막상 내가 관심을 받으면 죄책감이 들고 관심을 받는 게 옳지 않다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갖는 모든 감정에 대해 죄책감을 느꼈기 때문에 어떠한 감정도 표현할 수 없었다. 내가 언니가 사라지기를 바란다는 걸 사람들이 알아차릴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죄책감과 수치심을 느꼈다.'


모든 감정-찐이 죽어버려, 찐이가 아픈 게 나 때문인가, 엄마가 없어져버릴지도 몰라-에 대해 느끼는 죄책감, 부족한 관심과 사랑에서 오는 슬픔, 언제든 엄마와 아빠가 날 버릴지도 모른다는 불안과 두려움,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일어난 거냐는 억울함, 왜 내 동생이 장애인인 거냐는 분노, 이러한 감정들로 인해 나타나는 혼란까지 모두 빤뽀 안에 있었을 거다.


빤뽀는 당연히 자신의 욕구를 알기 힘들다.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지 못한다. 자칫 잘못하면 친구들이 자신을 떠나버릴지도 모른다. 극도의 불안과 슬픔이 쌓인다. 풀어야 하는데 어떻게 푸는지는 모른다. 자신을 어떻게 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에 엄마와 아빠를 쳐다보지만 엄마와 아빠는 찐이만 쳐다본다.


빤보는 이를 풀어낼 대상을 엄마로 정한다. 엄마에게 분노와 짜증을 표출한다. 만약 엄마가 이를 무조건 적으로 수용하지 않는다면 '그것 봐! 역시 엄마는 날 사랑하지 않아. 언젠가 날 버리고 말 거야!'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아내는 수용을 하고 나는 훈육을 하기로 한다. 아이가 조금씩 수위가 높아져 갈수록 아내는 하루가 다르게 지쳐간다. 아이의 죄책감은 더 커져만 간다. 언제까지 이 쳇바퀴를 돌아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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