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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실한 베짱이 Nov 25. 2020

난 가끔 당신이 싫을 때가 있습니다.

아내에게 쓰는 편지

난 가끔 당신이 싫을 때가 있습니다.


왜 당신이 싫을까요?


내 아내니까, 내 옆에 항상 있고 앞으로도 그럴 사람이니까, 어떤 상황에서도 나를 지지해 줄 수 있는 이 세상 단 한 명이니까, 나에게 항상 친절하길 바라고, 항상 날 이해해주길 바라고, 항상 날 사랑해주길 바랬습니다. 네. 그렇군요. 난 항상 당신에게 바라기만 했네요. 내가 변하게 할 수 있는 건, 세상에 단 하나뿐, 오직 '나'뿐이란 걸 몰랐습니다. 당신이 변하기만 원했습니다. 그래서 당신이 싫었었나 보네요.


난 참 오만한 사람이었습니다. 내가 하는 말이 모두 옳다고 여겼죠. 당신이 하는 말을 존중하지 않았어요. 밖에서 짓밟힌 자존심을 당신에게서 찾으려 했습니다.


난 참 위선적인 사람이었습니다. 내가 하는 말이 모두 옳다고 여기면서도 그렇지 않은 척했어요. 밖에서 채우지 못한 내 욕구를 집에서 채우려 했는데 아닌 척했습니다.


난 참 무식한 사람이었습니다. 이 세상에 '항상'이라는 말은 있지만 사람의 마음엔 해당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나만 쳐다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을 전혀 알아채지 못했어요. 그래서 당신이 항상 나에게 친절, 사랑, 지지를 보내주실 원했습니다. 나도 할 수 없는 걸 당신에게 바랬어요.


난 참 폭력적인 사람이었습니다. 당신을 나의 소유물로 생각했습니다. 당신의 자유를 무시하고 내 마음대로 조종하려 했습니다. 당신에게 죄책감을 주고 내가 원하는 대로 당신이 행동하게끔 했습니다.


난 참 겁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속도를 줄이지 않고 달려오는 찐이의 장애와 속도를 높여 달려오는 비장애 형제 빤뽀를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네요. 가랑비처럼 내려대는 집안일, 이 집안일이 점점 차올라 목 언저리에서 출렁이는 상황을 모른척 했습니다.


난 참 어리석은 사람이었습니다. 쳐다보지 않으면 될 거라 생각했습니다. 쳐다보지 않으면 부딪히지도 않고, 모른 척하면 내 얼굴까지 차올라 숨 막히는 일은 없을 거라 착각했습니다. 모래에 머리를 파묻고 "나도 힘들다고!"를 외치고 있으면 날 찾지 못할 거라 생각했네요.


문득문득 당신이 싫고, 짜증이 나고 화가 났던 이유는 모두 저에게 있었습니다. 난 오만했고, 위선적이었고, 무식했습니다. 난 폭력적이면서 겁이 많고 어리석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였습니다.


당신에게 고백합니다. 가끔 당신을 싫어했었다고. 내가 이리 못난 사람이라 당신을 싫어했었다고.


앞으로의 다짐은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이미 변했으니까요. 내가 틀릴 수 있다는 생각을 항상 가지고 삽니다. 내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려 노력합니다. 나 자신을 항상 바라보고, 당신은 내가 마음대로 조종할 수 없는 존재란 걸 알아챕니다. 죄책감을 주지 않기 위해 노력합니다. 용기를 내봅니다. 난 지혜롭지 못한 사람이라 솔직히 말해봅니다.


아! 하나는 변하지 않을게요. 우리의 삶을 지탱해 주는 유머와 해학, 풍자 말이죠. 가끔 비꼬는 것처럼 들릴지도 모르지만 조심할게요. 당신은 X세대고 난 Y세대지만 우리 극복해나가요.


오늘 생일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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