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어트'는 '맥락'에서 시작한다.
'다이어트'에 도움을 주는 '맥락' 5가지
리드 헤이스팅스, 에린 마이어의 『규칙 없음』은 No Rules Rules, 즉 규칙이 없는 게 규칙인 넷플릭스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이 책에서는 넷플릭스를 세계 최고의 기업으로 이끈 조직 문화에 대해 여러 가지로 말하고 있지만, 단 하나의 키워드를 꼽으라고 한다면 '맥락'이다.
넷플릭스는 규정을 정하는 것으로 직원들을 통제하지 않는다. 휴가 규정은 어떻고, 판촉비 규정은 어떻고, 이건 사규 어디에 의한 거고, 저건 사규를 위반한 거다,라고 하지 않는다. '회사에 가장 유리하게 행동하라'라는 대 명제 아래 다른 규칙은 없다. 단지 '맥락'이 있을 뿐이다.
미성년자인 딸이 파티에 가려고 한다. 술을 마시지 못하게 하고 싶다. 우리 회사는 감시 카메라를 달거나, 주변인에게 물어 술을 마셨는지 확인하거나, 집에 올 때 음주 측정기를 들이댈 거니 알아서 하라, 고 말한다. 넷플릭스는 왜 술을 마시면 안 좋은지, 어떻게 되는지, 어떤 위험이 있는지 알려준다. '맥락'을 이해시키고 스스로 행동하게 만든다.
이 '맥락'의 힘은 넷플릭스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초등학교 때는 먹는 게 싫었다. 엄마한테 맨날 혼났다. 돌도 씹어 먹는다는 중고등학교 시절. 그다지 먹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여기에 공부 스트레스까지 더해졌다. 고등학교 3학년 때, 난 178cm에 55kg의 키와 몸무게를 가지게 되었다.
대학에 갔더니 그간의 모든 속박과 억압이 풀리는 기분이었다. 아침을 굶고, 점심을 미친 듯이 많이 먹고 저녁엔 술을 마시는 생활 패턴을 1년간 유지한다. 살은 붙고 또 붙어 78kg까지 도달한다. 군대에서 10kg을 감량하지만 내 몸은 주체할 수 없는 식탐을 이미 탑재하고 있었고, 살은 다시 쪘다.
도달해서는 안될 몸무게라 여겼던 80kg을 불과 한 발자국 남겨 놓았다. 79.8kg의 몸무게에 도달한 나는 '50만 원' 빵 살 빼기 승부를 펼쳤다. 3개월 동안 탄수화물을 먹지 않고 단백질만 먹고 버틴 나는 74kg이 되었다. 획득한 50만 원으로 엄청난 탄수화물을 섭취했고, 2020년 5월, 6개월 만에 79.4kg을 다시 달성하는 기염을 토했다.
더 이상 요요를 부르는 다이어트를 할 수 없었다. 지속 가능한 다이어트가 필요했다. 간헐적 단식을 하다 다시 아침, 점심, 저녁에 야식까지 챙겨 먹었고, 달리기를 하다 멈추고, 스쾃을 하다 멈추는 일상이 반복되었다. 내 뱃속은 야식으로 먹는 치킨과 족발로 가득 찼고, 운동을 해도 피곤하고, 안 해도 피곤하다면 안 하는 게 맞다는 기묘한 논리를 세웠다.
이래선 안된다고 생각하고 결심하고, 의지를 높여 참았다. 과식을 하거나 야식을 먹은 다음 후회하고, 다짐했다. 날 다그쳤고, 자책했다. 그러나 꾸준히 다이어트를 하지 못했고 배는 나와고 팔다리는 가늘어졌다. 단순히 지금 몸무게에서 몇 키로를 더 빼자, 오늘 운동은 성공? 실패?를 달력에 동그라미 치는 것로는 답이 나오지 않았다. 다른 방법이 필요했다.
그 방법은 다이어트의 '맥락'을 이해하는 것이었다.
내 다이어트의 가장 큰 적은 바로 '야식'이었다. 퇴근 후 맥주와 함께 먹는 치킨의 유혹, 쫀득쫀득한 족발의 유혹을 난 이겨낼 수가 없었다. 월화수목 잘 참다가도 금요일이 되면 야식을 먹었다. 야식이라는 게 참 신기한 게 한 번 먹으면 며칠을 계속 먹게 된다. 주말에도 먹고, 그다음 주에도 난 야식을 먹게 된다.
야식을 먹는 것은 건강에 안 좋다. 그래. 나도 알고 너도 안다. 근데 왜? 왜 야식을 먹으면 건강에 좋지 않지? 야식을 먹고 다음 날 아침을 안 먹으면 살은 그대로 여야 하는 거 아닌가?
공복 상태에서 잠을 자면 ‘글림프 시스템(glymphatic system)'이 뇌에서 가동된다. 낮 동안 뇌에 쌓인 노폐물을 척수액이 사이사이를 지나다니며 깨끗하게 청소한다. 그러나 야식을 먹으면 이 글림프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다. 위에 있는 음식을 소화시키는 데 혈액이 가서 일을 해야 하고, 글림프 시스템에 배분한 여력은 없어진다. 그래서 야식을 먹고 자면 몸이 좋지 않은 거였다. 단순히 1kg, 2kg의 문제가 아니었다.
두 번째로 내 다이어트를 방해하는 건 '술'이다. 술을 마시면 기분이 일시적으로 좋아진다. '도파민'때문이다. 에탄올은 뇌의 쾌락 중추인 중변연계에서 도파민을 분비하게끔 한다. 술을 마시면 어떠한 노력도 없이 도파민이라는 행복 물질을 얻을 수 있다. 도파민이 과다하게 분비되면 우리 뇌는 도파민과 결합하는 수용체를 늘린다. 늘어난 수용체만큼 더 많은 도파민을 필요로 한다. 필요한 만큼 도파민이 공급되지 않으면 불안하고 초조해진다. 이는 우울감으로 이어진다. 우울해서 술을 마시고 그 술 때문에 우울해져 다시 술을 마시는 악순환에 빠진다.
세 번째는 피곤함이다. 운동을 해도 피곤하고, 운동을 하지 않아도 피곤하다. 그렇다면 괜히 힘들게 운동을 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그러나 최근에 그 피곤함의 종류가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침에 운동을 하면 그날 하루 종일 피곤하다. 스쾃이나 푸시업을 조금 심하게 한 날은 근육통도 있다. 온몸이 나른하고 피곤하다. 이 피곤함은 기분이 좋다. 푹 자고 일어나면 통증이 조금 완화된다.
운동을 하지 않았을 때 나타나는 피곤함은 무기력이다. 아무것도 하기 싫고 몸이 무겁다. 어딘가에 통증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발걸음이 무겁고, 몸을 움직이는 게 귀찮아진다. 걷지 않게 되고 일어나지 않게 된다. 그리곤 눕는다.
네 번째는 의지다. 다이어트를 계속 이어나가지 못하는 이유를 정신력에서 찾았다. 그러나 정신력은 건강한 몸에서 나온다. 정신력으로 극복할 수 있는 건 없다. 내 몸에게 건강한 음식, 충분한 휴식을 선물로 주어야만 의지를 다질 수 있다. 파이팅만 외친다고 의지가 다져지는 건 아니다.
마지막으로 과식이다. 배고픔은 가짜 배고픔과 진짜 배고픔으로 나뉜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위에 소화를 기다리는 음식물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배가 고프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행복 호르몬인 세로토닌이 줄어들고, 세로토닌을 분비시키는 가장 쉬운 방법은 단백질이나 탄수화물을 공급하는 거다. 주로 특정 음식이 먹고 싶어 지면 가짜 배고픔일 확률이 크다. 가짜 배고픔을 없애려 하거나 참는 것보다는 알아차리고 받아들이는 것이 도움이 된다.
이 정도 맥락이면 소녀가 파티에서 스스로 술을 마시지 않듯, 스스로 다이어트에 성공할 수 있지 않을까? 야식으로 내 뇌를 쓰레기장으로 만들지 않고, 과음으로 우울해지는 어리석음을 벗어나고, 운동 후의 기분 좋은 피곤함을 느끼며, 내 몸을 위해 휴식을 선물하고, 가짜 배고픔을 알아차린다. 이 정도 맥락이면 난 다이어트에 성공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