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초등학교 시절, 난 학교에서 있는 듯 없는 듯 자리에 앉아 있는 아이였다. 1, 2학년 때 반에 60명 정도가 같이 생활했으니(1학년 때 난 13반이었고, 번호는 55번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선생님은 내 이름도 몰랐을 가능성이 크다. 나도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 봐도 1, 2 학년 때 친구들 이름이 단 한 명도 기억나지 않는다.
전라도 광주에서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입학과 동시에, 더 정확히 말하면 입학 일주일 후, 우리 가족은 경기도 부천으로 이사 갔다. 그곳에서 본격적인 학교 생활이 시작되었다. 낯선 환경과 바글거리는 아이들, 게다가 오전 오후반으로 나누어 수업을 듣고, 마을버스를 타고 20분은 족히 가야 나오는 학교 탓에 정신없었다.
오전반, 오후반을 모르는 사람도 많을 거다. 토요일을 예로 들면(그땐 토요일에도 학교에 나갔다. 대학에 갔는데 토요일에 학교를 안 가는 게 왜 이리 좋았는지...), 학생들을 오전 반, 오후 반 2그룹으로 나눈다. 9시부터 12시까지 오전 반 수업을 하고, 12시부터 3시까지 오후 반 수업을 한다. 난 1학년 때 13반이었는데, 교실은 3반과 13반이 함께 썼었던 듯 하다. 그날은, 내가 오후 반이었던 날이다. 12시까지 학교에 가야하는 날이었다.
우리 집은 3층이었고 가방을 메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서 단지 내 마을 버스정류장에 섰다. 더 정확히 말하면 아파트 단지에서 운영하는 셔틀 봉고차였다. 이 봉고차는 역곡역을 들러 초등학교까지 갔다 다시 단지로 돌아왔다. 다른 날과 다를 것 없었다. 평소와 다름 없이 시작한 하루였다.
뭔가 잘못되었다고 느낀 건 봉고차에서 내린 후였다. 평소대로라면 같은 반 친구들을 만나야 할 터였다. 서로 인사를 나누고, 투닥거리며 반으로 들어가야 했는데 웬일인지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더 이상한 건 다른 반 아이들은 삼삼오오 모여 교문을 통과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몰려오는 불안감을 애써 모른 척하며 발걸음을 빠르게 교실로 옮겼다.
도착한 교실엔 아무도 없었다. 텅 빈 교실을 보자 내 머릿 속에서 어제 선생님의 음성이 재생되기 시작했다.
' 내일은 10시부터 수업을 할 테니 10시까지 과학실로 오너라, 12시에 오지 말고 10시까지 과학실로 와야 한다.'
아... 그랬다. 그랬었다. 난 과학실로 뛰어갔다. 과학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선생님은 웃으며 날 바라보았다. 친구들은 박장대소했다. 난 빨개질대로 빨개진 얼굴로 빈자리에 앉았다. 20분 후 수업은 끝났다. 난 친구들과 웃으며 아파트 단지로 가는 봉고차를 탔다. 그때는 몰랐다. 그 봉고차가 지옥으로 가는 차 일 줄은.
3시간 수업 중 2.5시간을 빼먹고 등교한 나를 웃음으로 맞이해준 선생님. 교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나를 보고 박장대소한 아이들. 난 부끄럽긴 했지만 좋은 추억으로 간직할 셈이었다. 생각해보니 조금 웃기기도 했다. 엄마는 전혀 동의하지 않았지만.
오후반 수업이라 3시에 들어와야 하는 아들이 1시에 집에 들어왔다. 엄마는 화들짝 놀라며 나에게 물었다. 왜 이리 일찍 왔냐고. 난 자초지종을 솔직히 설명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엄마는 극대노해서 날 때리기 시작했다. 왼손으로 내 손목을 잡고, 오른손으로 내 엉덩이를 때렸던 걸로 기억한다. 엉덩이만 때렸던 어머니께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지금 생각해 보면, 2시간 정도 다른 곳에서 시간을 때우다 집에 들어갔으면 어땠을까, 생각해 보지만 초등학교 2학년이 집이 아닌 다른 곳에서 2시간 보내는 건 그리 만만치 않았을 거다. 오락실도 3학년이 되어 다녔던 것 같다. 게다가 분위기 상 그리 큰일이 아니라 생각했을 수도 있겠다.
회사에서 일을 하다 문제가 발생하면 어떻게 하면 빠져나갈 수 있을지 궁리하기 시작한다. 프로젝트를 추진하다 잘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오기 시작하면 한 명, 두 명씩 면피하기 위한 문서들을 모으기 시작한다. 내가 쓴 품의서가 틀렸거나, 계산을 잘못했다는 것을 발견하면 어떻게 하면 팀장 모르게 넘어갈지 혹은 다른 누군가가 잘못된 정보를 줬기 때문은 아닌지 찾아내기 위해 머리를 팽팽 돌리곤 한다.
이제 4일만 지나면 40이다. 신입사원 시절, 면피하기 바쁜 40대 과차장을 보고 동기들과 '이 아저씨, 저 아저씨'라 부르며, 소주 한 잔 털어넣고 욕 안주를 씹어먹곤 했다. 그 아저씨가 이젠 '나'다. 문제가 생기면 핑계를 대며 피해 가는 얄팍한 지혜는 얻었지만, 문제를 품에 꼭 안고 걸어가는 순수함은 잃어버린 아저씨. 오락실에 가서 2시간을 때우다 들어가기보다는 2시간 일찍 집에 들어가 엄마에게 엉덩이를 들이대는 순수한 열정을 40대에는 되살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