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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실한 베짱이 Jan 30. 2021

꼬치 어묵

완벽한 겨울 식탁

집에서 2번째로 큰 냄비를 꺼낸다. 제일 큰 냄비는 사골 국물을 낼 때 쓴다. 지금까지 제일 큰 냄비를 쓴 적은 없다. 물을 냄비의 3분의 2에 조금 못 미치는 정도 담아 강불에 올려놓는다. 국물용 멸치를 꺼낸다. 머리와 똥을 떼내고 물로 씻어 냄비에 던져 넣는다.


다시마를 꺼낸다. 다시마는 찬물에 우려야 한다고 한다. 끓는 물에 넣으면 알긴산이 나와 텁텁한 맛이 난단다. 난 잘 모르겠기에 그냥 넣는다. 단 마지막에 넣는다(이러면 조금은 안심이 되는 느낌적인 느낌). 멸치를 넣고 충분히 끓인 후 불을 끄고 다시마를 넣는다. 무를 꺼내어 주먹만 한 크기로 잘라 냄비에 던져 넣는다.


멸치와 무를 넣은 물을 약 10분 정도 끓인다. 불을 끄고 미리 준비해둔 다시마를 넣고 5분간 뚜껑을 닫아 둔다. 체로 멸치, 다시마를 건져내면 감칠맛 나는 멸치 다시마 육수가 완성된다. 육수를 미리 만들어 놓으면 편하지만 매번 잊는다. 내 인생은 벼락치기 인생이다. 친한 동기는 우리 부모님께 이렇게 말했다. "저는 발등에 불이 떨어져야 하고요, 얘는 발등에 불이 떨어져 타 들어가야 합니다."


감칠맛 나는 멸치 육수에 꼬치 어묵을 넣고 끓인다. 얼마나 끓이냐고? 마음대로, 취향에 따라 끓이면 된다. 우리는 꼬들꼬들한 어묵을 좋아하기에 오래 끓이지 않는다. 국간장으로 간을 맞추면 미친 듯이 맛있는 꼬치 어묵탕이 완성된다.


꼬치 어묵을 하면 애들이 잘 먹어서 좋다. 물론 아내도 잘 먹는다. 10개를 만들면 내가 먹는 건 한 개정도. 그 한 개마저도 반을 찐이가 빼앗아 갈 때도 있다. 어묵을 어느 정도 먹었으면 어묵탕 국물을 조그만 냄비에 옮겨 담고 우동 사리를 넣는다. 어묵탕 국물에 우동 사리. 더 이상 말하지 않겠다. 쑥갓이 있으면 넣어도 좋다. 없어도 전혀 문제없다. 대파를 잘라 넣고 그릇에 담아 가져 간다. 진정 맛있다.


무를 넣을 때 단호박을 넣어도 괜찮다. 단 맛이 더 강해진다. 무와 함께 오래 끓이면 단호박이 육수에 풀어지며 약간 노란색을 띤다. 우동 면을 다 먹고 단호박이 어느 정도 풀어진 국물을 후루룩 마신다. 이 또한 별미다.

찬 바람이 불고, 눈이 내리면 항상 여자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간밤에 눈이 내려 아침에 일어나 밖이 하얗게 변해 있으면 여자 친구네 집으로 몰래 가곤 했다. 집 앞이라고, 나오라고 전화하면, 갑자기 뭐하는 짓이냐며, 머리도 감지 못했다며 비니를 쓰고 나오는 그녀의 모습이 무척 귀여웠다.


같이 손을 잡고 눈을 맞으며 길을 걸었다. 걷다 보면, 길거리에 파는 꼬치 어묵을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내 취향에 맞게 익은 어묵을 골라 간장을 찍어(몇 년 후 어묵에 발라 먹고, 뿌려먹는 신묘한 아이디어가 나왔다) 입에 넣으면 짭조름하고 감칠맛 나는 환상의 세계로 빠져들 곤 했다. 어묵이 맛있어서 그런 건지, 네가 내 옆에 있기 때문인지, 과도하게 들어간 조미료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코로나로 인해 길거리에서 꼬치 어묵을 먹는 일은 없어졌다. 적어도 우리 가족에겐 그랬다. 집에서 만든 꼬치 어묵은 길거리의 강렬한 조미료 맛이 나진 않았지만, 20년 전 맞잡은 여자 친구의 손과 꼬들꼬들하게 익은 어묵을 골라 물던 입술을 떠 올리게 했다.


지금은 꼬치 어묵을 먹으며 손을 맞잡지도, 서로를 쳐다보지도 않는다. 아이들 입으로 들어가는 꼬치 어묵을 나르고, 아이들이 흘린 우동 면발을 치우느라 정신은 없지만 그래도 꼬치 어묵은 꼬치 어묵이다. 겨울엔 무조건 해 먹어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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