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줄줄이 요리에 실패하고 있다. 며칠 전 '단호박 크림수프'를 만들었는데 그 결과는 참혹했다.
나 혼자 다 먹었던 단호박 크림수프
"어때? 맛있어?" "우.와. 정.말.맛.있.다." "아이고... 너무 느끼해서 못 먹겠다."
"찐아! 한 번만 먹어봐~" "시이어~!" (싫어)
이제 초등학교 5학년이 되는 딸, 빤뽀는 혼자 단호박 크림스프를 쓸쓸히 먹고 있는 내 뒷모습을 찍었다.
이젠 요리를 접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나 혼자 단호박 2통을 다 먹었다. 배는 부르고, 기분은 좋지 않았다. 요리를 통해 나 혼자만의 만족을 얻을 수도 있다. 나 혼자만을 위한 요리는 삶을 충만하게 해준다. 그러나 남을 위한 요리를 했으나 나만 먹는 이 상황이 영 기분이 좋지 않다. 아무리 과정을 즐겼어도, 밀려오는 슬픔까지는 어쩔 수 없다. 3시간 정종 전복찜도 그렇고 이번에 단호박 크림스프도 그랬다.
"이제 하는 방법을 알았어! 다음엔 더 잘할 수 있어!"라고 힘을 내 보지만 힘이 나질 않는다. 이럴땐 필살기가 필요하다.
내 필살기는 '아보카도 명란 덮밥'이다.
아보카도를 준비한다. 아보카도 자르는 법은 유튜브에 아주 잘 나와있으니 참고하면 된다. 아보카도를 반으로 가른다. 가른다고 하기보다는 칼집을 낸다는 표현이 더 적절하려나? 어쨌든, 중간에 큰 씨가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중간을 빙 둘러가며 칼집을 낸다. 칼집을 중심으로 아보카도 양 옆을 두 손으로 움켜쥔다. 살짝 힘을 주어 비틀면 아보카도가 둘로 갈라진다. 씨를 칼날로 내려친 후 살짝 비틀어 씨를 빼낸다.
숟가락으로 아보카도의 과육과 껍질을 분리시킨다. 끝부분부터 조심스럽게 분리한 후 숟가락을 아보카도 중심으로 쑥 집어넣으면 톡 분리된다. 먹기좋게 잘라서 따뜻한 밥 위에 아보카도를 올린다.
명란젓을 한 줄 꺼낸다. 먹기 좋게 자른 후 밥 위에 올린다.
양념장을 만든다. 간장 한 스푼, 설탕 혹은 시럽 반 스푼의 비율로 섞는다. 참기름을 적당히 넣는다. 양파 혹은 파프리카를 볶음밥에 넣는 것 처럼 썰어 넣는다. 채를 설어도 괜찮다. 다시마 1조각을 양념장에 넣으면 시간이 지날수록 다시마의 감칠맛이 더해진다. 2~3일 지나면 양념장이 끈적해 지는데, 그럼 더 맛있다. 청양고추를 넣어도 정말 맛있으나 아이도 먹어야 하니 참자.
간단하다. 단호박 크림스프에 비하면 1/10정도다. 이 단순하고 간단한 요리를 아내는 가장 좋아한다. 특히 양념장은 엄지손가락을 두 개나 치켜세운다. 이 요리를 해 놓고 출근을 하면 카톡이 온다. 너무 맛있다고, 고맙다고. 단호박 크림수프를 하느라 내가 부엌에 있었을 때는 아마 모르긴 몰라도 이렇게 생각했을 수 있다.
'아... 젠장... 아무도 먹지도 않는 걸 만든다고 부엌에 몇 시간씩 뭐 하는 거야... 그 시간에 애나 보지'
어쩌면 세상은 단순한 것 아닐까? 간단하게 해결 될 수 있는 문제로 이루어져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단지 그 단순한 것을 복잡하게 보는 사람이, 간단한 문제를 어려운 문제로 만들어버리는 '나'와 '너'가 세상을 어렵게 만드는 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