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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실한 베짱이 May 25. 2021

인간이란 무엇인가?

천선란, <천 개의 파랑>, 허블

이 책을 왜 읽었지?

점심시간이 되면 가끔 들르는 곳이 있다. '정보자료실'이라 부르는 사내 도서관이다. 많은 책이 있는 건 아니지만 신작을 꾸준히 들여놓기 때문에 유용하다. 경제, 경영, 자기계발 서적의 틈바구니 속에 소설과 에세이도 밸런스를 맞춰 자리하고 있다. 사실 책보다 더 좋은 건 장소다. 명상실따위를 만들리 없는 회사에서 조용히 책을 읽을 수 있는 이 공간은 나에게 아주 좋은 피난처다.


작년 가을, 이 책이 회사 도서관에 들어왔다. 표지에 끌려 빌렸지만 읽지 않았다. 반납 후,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콜리'(주인공 휴머노이드)가 자꾸 떠올랐고, 무언가에 이끌리듯 6개월이 지난 후 다시 빌려 읽었다. 단숨에 읽고 결정했다. 소장하기로.


무엇이 남았나?


1. 휴머노이드는 인간인가?
이 책의 주인공 콜리는 휴머노이드(인간형 로봇)다. 콜리는 인간 대신 말을 몰고 경마장을 달리게끔 설계되었다. 콜리가 만들어지는 마지감 공정에서 원래의 칩이 들어가야할 자리를 '학습형 AI칩'이 차지했다.

입닥치고 말을 몰아야하지만 콜리는 다르다. 하늘의 색깔이 궁금하고, 말의 호흡도 궁금하다. 혼자 있는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이유, 하늘을 쳐다보면서 이동한 그 시간은 빠르게 흐르는 이유에 호기심이 생긴다.


2. 공감이란 무엇인가?

콜리(휴머노이드)는 고개를 끄덕일 줄 알았고 자신이 알지 못하는 정보는 도리어 그게 무엇이냐고 물어봤다. 대화였다. 콜리는 공감을 느낄 수 없는 개체였지만 공감하는 척 움직이게 만들어졌다. 어차피 사람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게 공감이었다. 보경은 콜리를 앉혀놓고 몇 번 대화를 한 후에야 진정으로 필요했던 건 들을 수 있는 귀와 끄덕일 수 있는 고개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p271-


여기서 콜리가 보경에게 보여준 건 공감이었을까? 아니면 어떠한 말에 대응할 수 있도록 학습된 기계의 단순한 움직임이었을까? 회사에서도 뉴스에서도 공감능력이 없는 사람을 많이 만난다. 조직원을 자원으로 보는 조직장도, 조직장을 꼰대라 치부해버리고 소통하지 않는 조직원도, 세월호도, 세대간의 갈등도 모두 공감 능력이 부족해서 벌어진 일이다.

AI가 학습된 공감을 하고 그 말과 행동이 딥러닝을 통해 매우 정교해진다면 무엇이 나에게 더 위로가 될까?

3. 인간은 단지 즐거움을 위해서 동물에게 폭력을 휘두를 수 있나? 
말은 6살 아이의 지능 정도를 가지고 있다. 자신은 더더더 빠르게 달려야만 하는 운명이고 자유가 없이 갇혀있어야하고, 곧 죽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다 알고있다. 돼지도, 소도 마찬가지다. 단지 말로 표현하지 못할 뿐이다.

만약 그들이 말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다면 그들은 사람인가? 동물과 사람을 가르는 기준은 무엇인가?

4. 과학기술은 장애인에게 새로운 삶을 가져다 줄 것인가? 
과학기술과 상관없이 시선이 바뀌지 않는 이상 과학기술은 장애를 더욱 사회와 격리시킬 것이라 말한다. 예전에는 장애가 아니던 것이 새롭게 장애가 될 가능성도 보여준다. 작가는 장애인이 원하는 건 정상적인 다리가 아닌 '자유'라는 사실을 사람들이 이해하길 바란다. 안경 쓴 사람을 장애인으로 분류하고 차별하기 전에 말이다.

5. 천선란 작가는 2019년 제4회 한국과학문학상에서 『천 개의 파랑』으로 장편소설 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정세랑 작가 덕분에 SF를 접했고, 김초엽 작가 덕분에 SF를 더욱 좋아하게 되었다. 천선란 작가 덕분에 SF소설의 깊이를 알게되었다.

깊이 있는 소설, 질문이 마구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소설을 읽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보길 추천한다. 물론 완전 재밌다. 빌려서 읽었지만 소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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