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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실한 베짱이 Apr 25. 2021

제가... 고기를 안 먹어서요...

비건, 채식주의자

회사에서 점심을 먹기가 불편해졌다. 어딜 가도 내가 먹을 만한 음식을 찾기가 쉽지 않다. 누군가와의 점심 약속은 더욱 부담스럽다. 갈 만한 식당을 찾기 힘들다. 왜냐고? 난 고기를 먹지 않는다.


발달 장애를 가진 둘째가 태어난 이후로 장애인 차별에 대해 생각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여성, 성소수자, 트랜스젠더 등과 같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생각까지 이어졌다. 여기까지가 끝인 줄 알았지만 더 이어져 있었고 그 끝엔 동물이 있었다.


강자의 논리, 다수의 논리

강자가 약자를 억압하고, 다수가 소수를 차별한다. 이러한 행위는 우리 삶 곳곳에 숨어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자연스럽게 나는 차별주의자가 된다.


장애인들은 버스에 오르기 힘들다. 그래서 저상버스를 도입했다. 장애인 때문에 세금을 더 썼다. 장애인은 당연히 세금을 더 내거나 최소한 우리가 베풀어준 호의에 고마워해야 한다.

장애 아동이 수업 중에 소리를 지르거나 돌아다녀서 학급 분위기가 엉망이다. 우리 아이의 공부를 방해하는 장애인은 비장애인과 함께 공부를 하면 안 된다. 특수학교가 왜 있나? 그곳으로 보내는 게 좋지 않을까?


'어...? 맞는 말 아닌가...'라고 생각했다면 당신은 차별주의자일 가능성이 높다. 비장애인에게 맞춰진 대중교통 시스템 인해 장애인은 태어난 순간부터 피해를 보고 있다. 비장애인 아동에게 맞춰진 교육 시스템 때문에 장애 아동의 교육권은 이미 보장받고 있지 못하다. 왜 장애인은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불편을 겪어야 하는가? 왜 장애 아동은 집과 가까운 초등학교에 가면 안 되는가? 이유는 오직 하나 다수가 아니기 때문이다. 다수에 속해있는 사람은 자신의 일상이 혜택으로 가득 차 있다는 사실을 알아채지 못한다. 나도 그랬다.


동물권

그렇다면 동물은 어떨까?


새끼를 많이 낳아야 하는 돼지는 정기적으로 강간을 당한다. 태어나서는 몸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할 정도의 우리에 갇혀 몇 개월을 산다. 차에 실려 도축장으로 이동하여 죽음을 당한다. 컨베이어 벨트에서 선택받지 못해 칼날로 떨어지는 병아리나 복날 나무에 매달려 몽둥이로 맞아 죽는 개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겠다.


동물은 사람과 똑같이 느끼고 자신이 처한 상황을 정확히 알고 있다. 단지 '사람'의 언어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지 못할 뿐이다. 우리가 먹는 소, 돼지는 사람으로 치면 6세 정도의 지능을 가지고 있다. 유쾌한 감정, 불쾌한 감정을 느낄 수 있으며 당연히 자신이 처해 있는 상황으로 인해 고통받는다. 홍은전의 <그냥 사람>을 보면, 도축장 앞에서 트럭에 실려있는 돼지의 눈을 본다면 그들이 얼마나 두려워하며 떨고 있는지 느낄 수 있을 거라 말한다.


장애인, 여성, 성소수자 등은 차별을 받고 있지만 최소한 연대하여 목소리를 낼 수 있다. 아직 굉장히 부족하고 속도도 더디지만 저상버스는 도입되고 있고, 성소수자들은 함께 모여 퀴어 축제를 연다. 동물은? 그들은 연대할 수 없다. 목소리를 낼 수도 없다. 인간의 입 맛을 돋우기 위해 억압받고 죽어간다. 우리가 무슨 권리로 그들을 고통스럽게 할 수 있는가?


고기를 끊고 차별을 만나다

채식에 대한 생각은 2년 전부터 하고 있었지만 고기를 먹지 않기로 결정한 건 올해(2021년) 1월이다. 일단 소고기, 닭고기, 돼지고기를 먹지 않기로 했다. 4월부터는 생선도 먹지 않는다. 자기 전에 '그래! 내일부터 채식을 하는 거야!'라고 다짐하고 다음 날 점심에 돈가스를 먹고 있는 나를 2년간 발견했다. 그러다 '오늘부터 고기를 먹지 않겠다'라고 가족들 앞에서 선언했다.


고기가 먹고 싶어 견딜 수 없을 줄 알았지만 그렇지 않았다. 고기는 생각보다 참을 만했다. 그다지 생각나지 않았다. 점심 약속! 이게 더 힘들다.


지난주 경리팀 전 과장과 점심을 먹었다. 어디를 갈까 고민하다 피자와 파스타를 먹을 수 있는 곳으로 갔다. 그곳에는 마늘로 맛을 낸 오일 파스타가 있을 터였다.


— 이것 좀 드셔 보세요!


전 과장은 베이컨이 듬뿍 들어간 피자를 호의를 듬뿍 담아 나에게 건넸다. 이 호의를 거절해야 하는 내 마음도 아팠다.


— 제가... 고기를 안 먹어서요...

— 네?

— 하하하. 제가 고기를 올해 1월부터 끊었어요. 피자는 과장님 드세요.

— 어머! 정말요? 왜요?


동물이 받는 억압부터 공장식 목축의 폐해, 온실가스와 그로 인해 벌어질 가까운 미래의 재난까지 이야기했지만 돌아온 건 당신은 이기적이라는 대답이었다. 팀 식이나 파트식을 하면 당신 때문에 메뉴 선택에 제한이 있을 거며, 아내는 2가지 요리를 다 만들어야 하니 얼마나 힘들겠냐는 거다. 그게다 까탈스러운 당신 때문이다.


아... 찐이가 지금 받는 그리고 앞으로 받을 차별이 이런 거겠구나. 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로서의 차별을 느끼고 생각해왔지만 직접 당해보는 건 처음인 듯했다. 물론 찐이의 기분이 내가 받은 느낌보다 훨씬 더 강도 높고 견디기 힘들겠지만 이런 기분의 종류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 이기적인 사람이 날 보고 이기적이라 하는 그 기분. 내 당연한 권리를 호의를 베푸는 듯 말을 듣는 그 기분.


이것저것 반박하고 싶었지만 그만뒀다. 집에서 요리의 절반은 내가 하니 아내는 힘들지 않을 거다. 오히려 비건의 당위성을 알고 있지만 자신이 못하는 채식을 결심하고 실행하는 날 지지해준다 말하고 화제를 전환했다.


비건으로의 길

아직 나는 멸치 육수도, 우유도, 달걀도, 버터도 먹는다. 가끔 새우와 오징어도 먹는다. 3분기가 되면 새우와 오징어, 여차하면 우유도 끊어볼 생각이다. 그리고 2022년이 되면 달걀, 버터도 끊어 보련다. 이미 사버린 우리 집 가죽 소파를 버릴 용기는 없지만 앞으로 내 인생에 가죽도 동물 실험을 한 화장품도 없다.


내가 고기를 끊었다 말하고, 생선은 먹는다, 오징어는 먹는다, 달걀은 먹는다 말하면 그게 뭐냐며 비웃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나도 안다. 논리적이지도, 합리적이지도 않다. 근데 한 번에 끊기는 참 어렵다. 조금씩이라도 끊는 것이 자신의 입을 만족시키기 위해 고기를 계속 먹는 것보다는 덜 이기적이지 않을까?


2022년 1월 1일. 드디어 오늘 진짜 비건이 되었습니다!라고 글을 쓰는 날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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