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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실한 베짱이 Mar 21. 2019

#22 내 인생의 결승선Finish Line

[21주 차] 포기하는 지금 이 순간이 피니쉬 라인 직전 일지도 모른다.

10km 마라톤


지난주 일요일, 10km 마라톤에 나갔다. 20살에 아버지의 '강압이 조금 섞인 권유'로 한 번 나갔고, 상무님의 '강압이 조금 섞인 권유'로 30대 초반에 한 번 더 도전다. 30대 후반이 된 지금, 나 스스로 도전한 첫 번째 마라톤에 참가했다.


마라톤에 나가기 위해서는 아니지만 아침마다 꾸준히 조깅을 했다. 정신없이 달리는 데만 집중했던 지난번과는 달리 조금 여유가 있었다. 그래서인지 여러 단상들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마라톤에 참가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1km 지점마다 깃발이나 배너가 위치해 있어 내가 얼마나 달렸는지, 골인 지점까지 얼마나 남았는지를 알 수 있다. 그래서 몸 상태와 남아 있는 거리를 고려해서 속도를 조절할 수 있다. 더 빠르게 달릴 것인지, 속도를 조금 늦출 것인지를 판단한다. 몸 상태에 비해 남아 있는 거리가 너무 많다면 다음을 위해 포기할 수도 있고, 힘들지만 남아 있는 거리가 작다면 조금 더 가자고 날 채찍질할 수 있다.

 

5km 지점까지는 뛸 만했다. 좋은 기록을 위해서는 여기서부터 속도를 더 내야겠다고 판단했다. 속도를 낸 탓인지 7km 지점에서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힘들었다. 대회 시작 1시간 전에 먹은 아침이 아직 소화되지 않은 것 같았다. 배가 땡겼다. 심장은 터질 것 같고 위에 있는 음식물이 넘어올 것만 같았다. '포기할까'라는 생각이 드는 그 순간 8km 깃발이 보였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제 고작 2km 남았다.
이 속도로 조금만 더 가면 피니쉬 라인이다.


난 멈추지 않고 끝까지 달릴 수 있었다.



끝을 알고 있다는 것


완주 후 이런 생각이 들었다.


끝을 알고 뛴다는 건 정말 기쁜 일이구나.


지금 내가 달려온 길은 얼만큼인지, 이제 얼마나 남았는지 알고 있으니 판단이 수월했다. 속도를 조절해서 기록을 더 빠르게 하거나, 위험을 줄일 수 있고, 미리 포기해서 다음을 대비할 수 있다.


만약 결승선 있지만, 모른 채 그냥  달려야 하는 상황이라면 난 어떻게 했을까? 포기하지 않고 달렸을까? 끝을 모르는 길을 어떤 의심 없이 달릴 수 있었을까?


어느 지점 일지는 모르겠지만 포기했을 거다. 6km에서 포기했을 수도 있고, 결승선 직전에 포기했을 수도 있다.

 


트랙을 달리는 인생


태어나서부터 난 트랙을 달렸다. 주변에서 만들어 놓은 트랙이 전부라 생각하며 그냥 달렸다. 초등학교라는 트랙을 달렸고, 중학교, 고등학교라는 트랙을 달렸다. 옆 사람만 쳐다보며 조금이라도 빨리 달리려 노력했다. 너무 잘 달리는 사람을 보면 '재는 특별해'라고 합리화하며 이기길 포기했다. 옆 사람이 평균이라 생각하며 어떻게든 평균보다 더 빨리 달리려 애썼다.


대학을 가면 피니시 라인이 있을 줄 알았다. 무언가 달라질 줄 알았다. 그러나 결승선은 없었고 트랙은 더 공고해졌다. 일자리를 잡기 위해 달렸다. 일자리를 잡지 못하면 트랙에서 벗어나는 거다. 트랙에서 벗어나면 인생이 끝날 것만 같았다. 그렇게 대학 놓아준 트랙을 지나 사회로 나왔다.


사회에서도 여전히 난 트랙을 달린다. 트랙 바깥을 볼 여력도 여유도 없다. 옆 사람만 바라보며 한 발자국 앞서기 위해 뛴다. 이 트랙을 벗어나면 낙오자라는 주홍글씨가 새겨질 거다. 이 보다 무서운 건 없다. 난 이 트랙을 벗어 날 수 없다.



이 트랙의 끝


이 트랙의 끝은 어디일까? 대학이 결승선일 줄 알았다. 결혼을 하면 두 팔을 들고 피니시 라인을 지날 거라 막연히 생각했다. 남들이 하는 걸 다 하다 보면 내 앞에 결승선이 나타날 것 같았다. 그런데 왜 안 끝나지? 지금 나는 골인 지점을 알고 있는 건가? 결승선까지 얼마나 남았는지, 나는 지금 어디쯤 있는 건지 알고 있는 건가?



인생은 게임?


캐릭터를 생성하고 레벨업을 하는 컴퓨터 게임이 있다. 몬스터를 잡고, 퀘스트를 수행하면 경험치가 쌓이고 내 레벨이 올라간다. 이런 게임에 흥미가 생기는 이유는 인생과 일치하는 90% 때문이고, 여기에 빠져들고 중독되는 이유는 인생과는 다른 결정적인 10% 때문이다.


열심히 경험하고 배우고 일하면 내 레벨이 올라간다는 건 인생과 같다. 그러나 인생에서는 내 경험치가 얼마나 쌓였는지 알 수 없다. 얼마나 더 열심히 해야 레벨업이 되는지 모른다. 게임에서는 지금 이 몬스터를 잡으면 얼마나 경험치가 오르고 언제 레벨업이 된다는 걸 알 수 있지만, 인생은 그렇지 않다. 지금 이 자격증을 따고, 영어 공부를 하고, 일을 죽어라 열심히 해도 레벨업을 할 수 있을지 우리는 해보기 전까지 알 수 없다. 그리고 대부분 해 보면 레벨업이 되지 않는 경험을 더 많이 한다. 이게 인생과 게임이 다른 결정적인 10%이다.


사실 우리는 몬스터를 잡기 위한 마지막 한방, 그 한방으로 레벨업을 할 수 있는 그 시점까지 정말 열심히 살다 레벨업 하기 직전에 포기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인생의 결승선_죽음


인생의 결승선은 아무리 생각해도 결국 죽음이다. 항상 죽음을 염두에 두고 그 결승선 앞에서 후회하지 않을지 생각하며 살아야 하지 않을까?


『죽을 때 후회하는 스물다섯 가지』라는 책에서 호스피스 전문의인 저자 오츠 슈이치는 1000명이 넘는 말기 암 환자들과의 이야기, 죽음을 경험하고 그들의 마지막 후회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고맙다는 말을 많이 했더라면, 진짜 하고 싶은 일을 했더라면, 감정에 휘둘리지 않았더라면, 죽도록 일만 하지 않았더라면, 가고 싶은 곳으로 여행을 떠났더라면, 건강을 소중히 여겼더라면. 그리고 내 장례식을 생각했더라면.



난 마라톤 10km 코스의 끝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완주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레벨 업을 할 수 있는 마지막 한방이 언제인지 인생에서는 알 수 없지만 결승선이 어디인지는 알 수 있다.


인생이 중간에 포기할 수 없는 마라톤이라면 결승선까지 얼마나 남았는지 알아야만 하지 않을까? 죽음에 대해 매일 되뇌고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후회를 가지고 골인지점을 통과할 필요는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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