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 공사장 먼지가 흩날린다. 삼성 금융 그룹을 강남에서 순화동으로 옮긴다고 몇 달째 공사 중이다. 불과 몇 년 전, 남대문에 있던 삼성생명을 강남으로 옮긴 듯한데, 이번엔 순화동에 사옥을 짓고 금융 계열사들을 모은단다.
불현듯 재벌에게 사옥을 옮긴다는 건 어느 정도의 의미일지 궁금해졌다. 몇 만 명의 임직원이 이동하고, 백억 일지 천억 일지 가늠도 되지 않는 이사 비용에 어느 정도 부담을 느낄까?
언론에 따르면 이재용의 자산은 약 10조 정도 된다고 한다. 사옥을 옮기는 데 천억 정도 든다고 가정해 보면, (물론 비용이 얼마나 드는지 전혀 모르지만 그냥 감으로… 사옥을 옮기는 건 이재용 돈이 아닌 법인 돈으로 쓰지만…) 총자산의 약 1% 정도를 쓰는 셈이다.
그렇다면, 이재용이 사옥 하나를 옮기는 건 내 입장에서 집안 가구 배치를 바꾸면서 장롱을 하나 새로 들여놓고, 15년 정도 쓴 세탁기와 망가진 텔레비전을 바꾸는 정도가 아닐까?
뭐… 이렇게 생각해 보면 5년에 한 번씩 사옥을 옮기는 결정을 하는 것이 어느 정도 이해는 간다. 물론 그 이유가 훨씬 더 중요하긴 하지만. 어쨌든, 이재용의 천억과 나의 천억은 이렇게 다르다. ‘1’ 뒤에 붙는 ‘0’의 수는 같지만 그 돈을 바라보는 느낌과 그 돈을 사용할 때 고려하는 사항이 다르다.
그렇다면 난 돈을 얼마나 벌고 싶은 건가? 내가 경제적 자유를 얻기 위해 필요한 돈의 양은 얼마나 될까? 나에게 경제적 자유란 뭘까? 난 이런 생각 없이 그냥 지금 보다 더 많은 돈, 혹은 그냥 로또나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살고 있는 건 아닐까?
노선 AI에게 경제적 자유에 대해 물어봤다.
경제적 자유란, 자신이 만족을 느끼는 시간, 공간, 행위, 관계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돈을 충분히 확보해 두었을 때, 일과 돈에 구속되지 않고 자유롭게 선택하며 살 수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이는 자신만의 삶을 설계하고 이루기 위한 기반이 됩니다. 물론, 각자가 경제적 자유를 느낄 만큼의 돈과 그 기준은 다를 수 있습니다.
‘각자가 경제적 자유를 느낄 만큼의 돈과 그 기준은 다를 수 있습니다.’
그래. 이게 중요한 거다. ‘각자가 경제적 자유를 느낄 만큼의 돈’ 이게 얼마인지를 정해야 한다.
경제적 자유를 얻는 방법은 2가지다.
첫 번째는 아무리 돈을 써도 자유로울 만큼의 돈을 확보하는 것이다. 이재용으로 태어나거나, 지금 당장 회사를 때려치우고 멋들어진 아이디어를 가지고 스타트업을 하나 시작한다. 수만 명의 가입자를 확보한 후, 투자자를 유치해서 유니콘 기업으로 발돋움한다. 가진 지분을 한 천억 정도에 팔고 엑시트 하면 난 경제적 자유를 얻을 수 있다.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일단 경제적 자유는 얻을 수 있을 거다.
두 번째는 만족감을 얻을 수 있을 만큼의 현금흐름을 만드는 것이다. 그 만족감이란 것을 남들과 비교하지 않고 과시와 인정욕구에서 찾지 않아야 한다. 5성급 호텔보다는 자연과 함께 할 수 있는 국립 자연 휴양림을 예약하고, 파인 레스토랑보다는 집에서 직접 만들어 먹는 참나물 들기름 파스타를 즐기는 거다. 과정에 행복을 느끼고, 돈이 크게 들지 않는 작은 성취나 작은 자극에 만족감을 느낀다. 이 정도면 경제적 자유라고 할 수 있을까?
이재용이 되거나, 성공한 사업가가 되면 경제적 자유 부분은 간단하게 해결된다. 후후 역시 그건 무리겠지. 피보다 진하게 살아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다. 난 그럴 깜냥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남은 건 하나! 두 번째 방법이다.
내가 자유와 만족을 느낄만한 시간, 공간, 행위, 관계를 만드는 데 얼마가 필요한가! 정해보자. 얼마냐?
일단 내가 만족을 느낄 만한 시간, 공간, 행위, 관계는 과연 어느 정도이며 무엇인지를 정해야겠다. 그러려면 내가 좋아하는 것을 먼저 알아야겠다. 한 100개 정도만 목록을 만들어 볼까. 내가 좋아하는 시간은 언제인지, 상쾌한 바람이 콧속으로 들어오는 아침인지, 햇살을 머금은 공기가 가득한 낮인지, 그 시간에 책을 읽고 싶은지, 영화를 하나 보고 싶은지, 카페에서 볼 건지, 집 안 나만의 서재가 나은지, 페라리를 몰 지, 걸을지, 비 오는 아침 처마 끝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을 볼 수 있는 한옥을 원하는지, 5성급 호텔에서 룸서비스로 주문하는 브런치를 먹길 원하는지 정해야 한다.
호텔 브런치 vs 내가 만든 마늘쫑 들기름 파스타
생각해 보면, 난 내가 뭘 좋아하는지, 어떤 일을 할 때 가장 보람을 느끼는지, 무엇이 나를 기분 좋게 만드는지, 무엇을 듣거나 들었을 때 내 기분이 나아지게 만드는지 잘 모른다. 꼭 남들과의 비교가 끼어든다. 더 비싼 것, 남들이 부러워하는 것을 선택하곤 한다.
그리 오래가지 않는 그 기분을 느끼기 위해 얻고 나면 금세 사라질 그 욕구에 편승해 인생을 살고 있는 건 아닌지 고민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