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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실한 베짱이 Oct 27. 2024

불행은 눈이 없다.

불행은 스타벅스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주변을 둘러보다, 오늘은 저기 파란색 셔츠를 입은 안경 쓴 사람에게 가야겠다,라고 생각하곤 오는 놈이 아니다. 아무런 인과관계도 상관관계도 없이 불쑥 내 앞에 나타난다.


불행이 내 삶을 덮친 건 누구의 탓도 아니다. 그러니 당연히 내 잘못도 아니지만, 불행을 만나면 격양된 목소리로 묻게 된다. 

도대체 왜! 내가 뭘 잘못했길래! 나한테 온 거야?


찐이가 태어나고, 지적장애가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난 내 앞에 불쑥 나타난 불행의 멱살을 부여잡고 외쳤다. 


"나 그렇게 나쁘게 살지 않았어! 정말 착하게 살았는데 왜 나에게 온 거야. 왜 하필 나 야!"


지치고 힘들어 격양된 목소리가 사그라지고, 질문이 점점 잦아들 때 즈음 알았다


불행은 눈이 없다는 것을.


뇌종양. 여동생 정은이의 병명이었다. 2002년에서 2003년으로 바뀌는 겨울, 세차장에서 차에 물을 뿌리며 눈물도 함께 뿌렸다.


정은이는 수술실에 들어가며 웃는 얼굴로 엄마 다녀올게,라고 말했다. 중환자실에서 엄마가 떠먹여 주는 밥을 입에 넣으며, 엄마에게 단단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어젯밤에 옆 침대 아저씨... 죽어서 나갔다."
"그래?"
"응"
"무섭지 않아?" 
"뭐가 무서워 병원인데." 

정은이는 

덤덤하게 

꾸준히 

조금씩 

머릿속에 조그맣게 남아있는 종양을 받아 들였다.


다시 학교를 다니고, 카페에서 알바를 하고, 대학원에 다니고, 사람들에게 커피를 가르치고, 카페를 운영하고, 맥주도 한 잔 하고, 공부 안 하는 조카에게 수학을 가르치고, 중학교 검정고시에도 합격시켰다. 중환자실에서 단단한 목소리로 말했듯, 그렇게 일상을 조금씩 단단하게 부여잡으며 40대가 되었다.


그렇게 상처도 아물고, 종양은 머릿속 다른 녀석들과 한 데 어우러져 잘 살고 있었다. 그런 줄로 알았다.



종양은 다시 스르륵 커졌고, 한 데 어우러져 잘살고 있는 줄만 알았던 그 자리에서 아주 조금씩 더 강하게 머리를 서서히 압박하고 있었다.


슬프게 따뜻했던 봄날, 다시 수술을 해야 한다고, 의사는 말했다. 5월에 수술을 하자고 했지만 6월이 되고, 7월이 지나도록 아무 말도 없었다. 9월에 수술 일정이 잡혔고, 이런 어수선한 시국에 그나마 빠르게 수술 일정이 잡혀 다행이라며 서로를 위로했다.


위로의 눈물이 채 마르기도 전에, 불행은 슬그머니 내 옆자리를 꿰차고 앉아버렸다. 그리곤 내 귀에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엄마는 울지 말고 들으라며 나에게 말했다.


"정은이 수술 못 한데. 수술이 너무 힘들다네. 예전에 수술했던 곳에 방사선 치료를 했기 때문에 조직이 다 엉켜있데. 그 종양이 다시 커진 거니까, 그 종양을 긁어내려면 다른 부분을 안 건드릴 수가 없데."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지금처럼 살다가 증상이 나타나면 오래. 그때 수술 해준다고. 얼마나 남았는지는 모른데. 몇 달이 될지, 1년이 될지, 10년이 될지. 그런데 지금 수술하면 죽을 수도 있다고… 일단 지금 큰 증상 없이 지내고 있으니, 즐겁게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라고."
"조심할 건 없대. 좋아하는 거, 재밌는 거 하면서 살래."


한 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믿기지가 않았다. 믿고 싶지 않았다. 꿈인 듯하여 꿈에서 깨 보려고 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옆에 붉어진 눈을 하고 갈라진 목소리를 조금이나마 적셔보려 떨리는 손으로 물을 한 모금 마시는 엄마가 있었다. 꿈이 아니었다. 믿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어쩌지


이 세 글자가 머리에 종양처럼 자리 잡았다. 그리곤 무력감과 죄책감을 사방으로 내뿜어 날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수술을 해야 한다는 통보를 받고, 수술 전 검사 결과를 보러 가는 날, 정은이는 혼자 병원에 갔다. 치매에 걸린 노모와 장애인 손자를 돌보느라 엄마는 딸의 병원에 따라가지 못했다.


의사는 이런 날까지 혼자 병원에 보내는 부모를 탓하고, 혼자 자신의 머리에 있는 종양에 대한 설명을 듣는 눈앞의 환자를 안타깝게 생각했다. 


의사는 부모를 탓했겠지만, 그렇지 않다. 우리 집이 이런 보고 싶지도 않은 드라마를 찍고 있는 건 내 탓이다. 무시무시한 검사 결과를 보러 가는 날, 정은이를 혼자 보낼 수밖에 없었던 건 나 때문이다. 회사가 뭐가 그렇게 중요하다고, 언어치료실에 가는 게 뭐가 그렇게 중요하다고 혼자 병원에 보냈을까. 그날 휴가를 내고 아이를 내가 돌보았어야 했다.


혼자 감당했을 정은이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리다. 이 아픔을 밖으로 내보낼 수 있는 출구가 눈 하나밖에 없어서, 슬픔이 가시질 않는다. 내가 이런데, 엄마는, 아빠는 어떨까?


아마도 혼자 검사 결과를 보던 날, 수술이 어려울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정은이는 들었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그리곤 집으로 돌아와 수술실에 들어가기 전에 웃으며 담담하게 엄마 다녀올게,라고 말했던 것처럼 담담하게 엄마에게 이렇게 말했을지도 모르겠다.

"뭐... 쉬운 수술은 아닐 수도 있다네"


불행에는 눈이 없다. 아직까지는 불행의 멱살을 붙잡고 왜 또 여기냐고 소리치고 있지만, 이제는 알고 있다 불행은 정말로 눈이 없다는 사실을. 불행의 멱살을 잡을 시간에, 정은이의 손을 잡아야 한다는 사실을.


알지만 잘 안 된다. 잘 안 되는 것이 당연하다. 그렇지만 당연하다고 그냥 이렇게 시간만 보내고 있을 수만은 없지 않은가. 


불행의 멱살을 놓고, 살짝 웃으며 이렇게 물어야겠다.


"일단 왔으니 같이 잘 지내보자. 그리고, 너만 온 건 아니지?"


멋진 일몰을

멋진 일출을

함께 보러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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