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주 차] 생각해 보니 초등학교 때 내 꿈은 회사원이었다.
생각해 보니 초등학교 때 내 꿈은 회사원이었다. 6학년 때인가 숙제로 꿈을 적어냈었다. 난 회사원을 적었고, 이유를 적는 칸에는 이렇게 적어 넣었던 듯하다.
"모두들 대통령, 과학자 같은 대단한 꿈만 적는데 평범한 회사원도 대단한 꿈이라고 생각합니다."
6학년 치고는 틈새시장을 잘 노렸나? 왜 회사원이라고 했는지는 잘 생각나지 않는다. 조금 튀고 싶었을 수도 있고, 남들이 하지 않는 꿈을 이야기하고 싶었을 수도 있다. 아니면 만만해 보였나? 어쨌든, 뭐... 선생님도 신기했는지 발표를 시켰다. 회사원도 멋진 꿈이라며 칭찬도 받았던 것 같다. 지금 회사를 다니고 있으니 초등학교 때 꿈을 이루게 된 건가?
와우! 난 꿈을 이루었다. 젠장.
대학에 갔더니 정말 신나게 놀더라. 수업에 빠지는 걸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밤새워 술 마시는 걸 마치 훈장처럼 생각했다. 도장을 모으듯 15일 연속 술을 마셨다느니, 난 20일 연속이라며 치열한 경쟁을 한다. 잔디밭에서 술을 마시면 뭐라도 된 것 같았고, 시험 기간에 술 마시는 대범함을 여러 사람들에게 뽐내기도 하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처음 '술맛'이 좋았다기보다는 술이 취한 느낌이 좋았던 것 같다. 용기도 생기고 기분이 좋아지니 웃음도 많아진다. 용기가 생기니 이런저런 말을 조금 더 과감히 하게 되고 웃음이 많아지니 내가 하는 말의 대부분이 빵빵 터진다. 이러니 어찌 재미있지 않을 수 있겠는가. 술자리에서는 리더가 된 것 같았고, 모든 일이 술술 잘 풀렸다. 나 때문이 아니라 술 때문에 즐거웠을 가능성이 더 크다는 사실을 최근에야 조금씩 깨닫는다. 술이 깨면 다시 다소 아담한 나로 돌아오니까.
어쨌든, 당시에는 이런 이유로 술자리가 좋았고, 노는 게 내 적성에 맞는 것 같았다. 그리고 우연히 아버지께 이런 말을 들었다.
할아버지, 그러니까 네 증조할아버지는 한 번도 일을 해본 적이 없어.
증조할머니가 농사일해서 돈을 벌어 놓으면 술 마시러 나가시곤 했지.
네 할아버지 대학 등록금도 증조할아버지가 술 드시는데 다 쓰셨을 걸!
이 말을 듣는 순간 '그 봐! 내가 뭐랬어! 역시 나에게는 한량의 피가 흐르고 있었어.'라며 내 적성을 유전학적 관점에서 확정 지어 버렸다. 마이클 조던 아들은 농구를 잘할 거라고 하는 우를 범해 버렸다. 마이클 조던의 아들은 현재 패션 업계에서 일하고 있다.
한량(閑良)
그때부터였나. 내 꿈은 농담 반 진담 반 한량이 되었다.
한량(閑良)
조선 초기의 한량은 본래 관직을 가졌다가 그만두고 향촌에서 특별한 직업이 없이 사는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조선 후기에는 무예(武藝)를 잘하여 무과에 응시하는 사람을 지칭하게 되었다. 돈 잘 쓰고 만판 놀기만 하는 사람을 가리키기도 하는데, 이것은 한량이 직업이 없으면서도 경제적으로는 비교적 부유한 계층이었음을 말해준다. 시대에 따라 그 뜻이 조금씩 달라졌지만, 부유하면서도 직업과 속처가 없는 유한층(遊閑層)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민족문화대백과사전-
머리 좋고,
싸움도 잘하고,
돈 잘 쓰고, 잘 놀지만,
경제활동은 하지 않으면서
소유한 재산으로 소비만 하는
"정의로운 사람"
당시 내가 정의한 '한량'이다. 증조할아버지께서 이런 분인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난 이런 사람이 멋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이렇게 살고 싶었다. 그러나 이내 깨달았다. 이렇게 살기 위해서는 상상도 하지 못할 노력과 노력, 그리고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을. 세상에서 가장 이루기 어려운 꿈 중에 하나를 내가 꿈꾸었다는 것을.
그래서 난 '회사원'이 되었다. 안정과 편안함에 숨고 타인의 기준에 날 맞춰버렸다. 내 안의 거인을 꺼내기 힘든 곳에 깊숙이 숨겨 놓았다.
초등학교 6학년 때 꿈은 회사원이었고, 중학교 때 역사가 재미있어 역사학자가 되고 싶었다. 고등학교 때 꿈은 좋은 대학에 가는 것 정도였을까? 원대한 포부를 가지고, 난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남 눈치 보지 않고 꿈을 꾸었던 건 초등학교 저학년 때뿐이었던 듯하다. 무슨 꿈이었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과학자, 대통령이었겠지.
《나는 오늘도 경제적 자유를 꿈꾼다》에서 저자는 '안분지족(安分知足)'에 속지 말라고 말한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이런 식의 말을 참 많이도 들으며 자란다. "분수에 맞게 살거라." "그건 네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네 주제를 알아야지." "너는 그런 일을 하기엔 아직 멀었어."
사람들은 나도 아직 만나보지 않은 미래의 나에 대해 함부로 이야기한다. 나와 가까운 사람일수록 더 큰 목소리로 나의 가능성을 폄하한다는 사실은, 인생의 가장 큰 비극 중 하나다.
그들은 나의 부모님이거나 형제이거나 선생님이거나 직장상사의 모습으로 나타나서 우리에게 '안분지족(安分知足)'의 중요함에 대해 가르치려 애쓴다. 너무 무리하지 말고 현재에 만족하며 분수에 맞게 살라는 것이다. 그들은 끊임없이 한계를 설정하고는 '위험하다.' '해도 안된다.' 하며 자기가 만든 한계에 자시 자신을 가두고 스스로 옳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사는 것이 세상을 잘 살아가는 것이라 믿으면서 말이다. 그들은 최소의 목표를 세우는 것이 최선인 줄 안다. '꿈도 작게 소망도 작게'가 그들의 슬로건이다.
회사 동기들과 자주 이야기하는 것 중 하나가 '회사생활이 답이 안 보여.' '이대로 살면 안 될 것 같은데...'이다. 그리곤 '뭐라도 해야 하는데...' '미리 준비를 해야 하는데'라고 말하며 결국 이 말로 마무리한다.
"에이, 술이나 한잔 해!"
안정과 편안함을 벗어나기란 정말 어렵다. 그러나 안정과 편안함을 벗어나지 않으면 변하는 건 없다. 그냥 이대로 살게 된다. 세상에 100% 확실한 건 없지만 이건 확실하다. 이를 깨닫는데 30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깨달았지만 주변의 유혹을 단칼에 잘라내지 못했다. 내 마음속의 자기부정을 완벽히 몰아내기엔 더 많은 시간이 걸릴 것 같다.
30대 후반이 된 지금 꿈을 꾸어 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