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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실한 베짱이 Dec 26. 2018

#10 놀고 싶다.

[9주 차] 날 유혹하는 자극적인 것들.

<대학 1학년>
아침에 일어난다. 어제 술을 마셔서 그런지 머리가 아프다. 시계를 보니 9시 30분. 1교시는 틀렸다. 3교시 수업부터 들어가야겠다. 물이 들어가면 물이 나오고, 밥이 들어가면 밥이 나온다. 아침은 먹을 수 없다. 점심시간이 되니 속이 괜찮아지기 시작한다. 밀려오는 공복에 점심을 미친 듯이 먹는다. 해가 지기 시작하자 술 생각이 난다. 술자리를 탐색한다. 그래! 오늘은 저기다. 동기, 형, 누나들과 술자리를 갖는다. 술을 마시면 즐겁다. 점점 술자리를 익혀 간다. 어떻게 하면 내가 술자리를 리드할 수 있을지 조금 알게 된 것 같다. 순발력도 느는 것 같다. 내 앞에 있는 저 사람은 절대 날 배신하지 않겠지. 그렇게 우리는 소주 한잔에 의형제가 되었다.


<입사 2년 차>
아침에 일어난다. 어제 술을 마셔서 그런지 머리가 아프다. 시계를 보니 8시. 서둘러 지하철로 향한다. 겨우 겨우 사무실로 들어간다. 아침은 먹지 못했다. 점심에는 해장을 해야겠다. 어제 술을 마셨냐고 팀장님이 물어본다. 뒷머리를 긁으며 미소와 함께 그렇다고 대답한다. 사람 좋은 웃음과 함께 점심때 해장 잘하라고 말한다. 해가 지기 시작하자 술 생각이 나기 시작한다. 술자리를 탐색한다. 그래! 오늘은 저기다. 선배, 후배들과 술자리를 갖는다. 술자리에서는 정말 여러 가지 정보가 나온다. 술자리를 나와야 회사 생활에 피가 되는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역시 네트워크가 중요하다. 대학 때 술자리 좀 다녀놓길 잘했다. 사회생활이란 이런 건가 보다. 훗.


의형제를 맺은 형은 지금 연락 두절이다.

회사 술자리에서 얻은 정보는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었다. 


변화를 위해서는 술을 끊어야 한다. 술자리를 끊어 내야 한다. 아침 일기를 훑어보다 보면 '어제 회식을 했다. 그래서 운동을 못했다.', '어제 술자리가 있었다. 그래서 5시에 일어나지 못했다.'라는 문구를 많이 발견한다. 아침 일기를 아예 쓰지 못하는 경우도 가끔 있는데 모든 원인은 바로 '술'이다. 술을 마신 다음 날, 계획이 제대로 진행된 적이 없다. 후회를 무조건 동반하지만 단호히 '술자리'나 '술'을 거절한 적은 손에 꼽는다.


습관이 참 무섭다. 이제 6시에 퇴근하는 건 나에게 일도 아니다. 이미지도 그렇게 구축되어서 6시 30분에 사무실에 남아 있으면 옆사람이 더 안절부절이다. 그러나 회식을 거부하는 건 쉽지 않다. '오늘 술이나 한잔 할래?'라는 말에 '죄송합니다'라고 말하는 건 너무 어렵다.


변화를 결심한 후 술자리를 일주일에 1번 이하로 줄이기로 결심했다. 술자리를 안 하는 것이 원칙이고 꼭 해야 한다면 일주일에 한 번 하겠다는 뜻이다. 그리고 한 달 전부터 소주를 끊었다. 과음의 원인을 '소주'로 파악했다. 술자리에서 혼자 홀짝홀짝 마시는 나이기에 앞에 소주가 있으면 빨리 마시게 된다. 그럼 빨리 취하고, 술이 술을 마시게 된다.


안타깝게도 12월이 되자 자연스레 일주일에 2번으로 술자리가 늘어났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소주는 먹지 않았다는 것이다. 정신 못 차릴 정도로 다음날이 망가진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러나 리듬이 깨지고, 해야 할 일을 못하고, 컨디션이 안 좋아지는 상황은 매번 이어졌다. 그리고 운동을 하면 할수록 컨디션에 민감해져서 술로 인한 컨디션 저하가 2~3일 지속되는 것을 느낀다. 이제 술을 끊어야 할 시간이라는 걸 온몸으로 느낀다.

그런데, 아...... 참 쉽지 않다. '술'을 끊는다니... 아직은 상상도 되지 않는다. '그 멋진 걸, 그 좋은 걸 어떻게...'라는 생각이 든다. '술'이 없는 세상이 잘 그려지지 않는다. 사는 이유 중 하나가 없어진다면 이런 느낌일까? 아직 난 변화에 대한 결심이 부족한 걸까? 아니면 내가 술을 너무 좋아하는 걸까? 술을 끊을까? 말까?


최근에 『나는 오늘도 경제적 자유를 꿈꾼다』라는 책을 읽었다. 저자는 15년이나 다닌 대기업을 39살에 그만두었다. 그리곤 이렇게 했다고 한다.

일을 잘하기 위해 모든 것을 끊어라. 과거에 나는 직장을 나오면서 모든 것을 끊었다. 친구도 끊었고 놀이도 끊었고 심지어는 가족도 끊었다. 한동안 일에 올인하느라 가족과 시간을 보내지 못했다는 말이다. 너무 가혹한가? 내가 그렇게까지 한 이유는 오직 한 가지, 다시 그들에게 빨리 돌아가기 위해서였다. 모든 것을 끊고 죽도록 일하라. 처절하게 외로움을 느끼면서 하루하루 자신을 다 써버 려야 한다. 젊은 날 3년에서 5년을 이렇게 살면 어떤 분야에서든 고수가 될 수 있지 않겠는가 술도 끊지 못하면서 부자는 되고야 말겠다고? 나는 그 말을 믿지 않는다.

그 후 그는 지독한 공부와 현장조사, 창의적인 발상으로 부동산 투자에 성공하여 월 1000만 원의 현금흐름을 만들어 냈다.



과식

아침식사를 한다. 청국장이 맛있게 끓여졌다. 계란찜도 맛깔난다. 밥을 2그릇이나 먹었다. 회사에 가서 커피를 한잔 내린다. 옆을 보니 쿠키가 놓여 있다. 커피와 함께 한통 먹는다. 덕분에 점심시간이 되었지만 배가 고프지 않다. 그러나 내 입은 음식을 넣으라 한다. 돈가스만 시켜도 되었을 텐데 굳이 정식을 시켜 입에 욱여넣는다. 사무실에서 감자칩을 먹고, 초코바를 먹는다. 중간에 바람을 쐬러 나가서 따뜻한 핫초코도 한잔한다. 퇴근하니 함박스테이크가 놓여 있다. 너무 맛있어서 2 그릇을 먹는다. 9시가 되니 배는 부르지만 치킨이 먹고 싶다. 아이들도 좋아하니 과감히 치킨을 시켜 먹는다. 다음날 회사에 가니 배가 아프다. 점심 약속을 취소해도 되지만 그러기는 싫다. 부대찌개를 먹는다. 입에 들어오는 햄과 사골국물의 콜라보가 예술이다. 배가 아픈 것 정도는 금세 잊힌다.

생각만 할 때는 몰랐는데 이렇게 적어 놓고 보니 '미친 게 확실'하다. 요새 너무 먹는다. 먹어도 너무 먹는다. 이유를 모르겠다. 스트레스 때문인가? 배가 아픈데 입에선 음식이 당긴다. 그래서 배가 아프지만 먹는다. 조절이 필요하다. 최소한 배가 아플 땐 먹지 말아야 하지 않은가. 크리스마스 때도 오후 4시에 순댓국을 먹고 저녁은 먹지 않으려 했지만 피자를 시켜 먹었다.



TV & 스마트 폰

멍하니 TV를 보고 있는 시간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특히 '나 혼자 산다'는 마성의 프로그램이다. 아내와 아이들도 너무 좋아한다. 그래서 금요일 밤 책을 들고 TV를 보는 나를 발견하곤 한다. 중고등학교 시절 독서실에서 문제집을 펴놓고 만화책을 보던 내 모습이 오버랩된다.


사실 독서실에서 문제집을 펴놓고 보는 만화책과 손에 책을 들고 보는 TV가 훨씬 더 재미있긴 하다. 하지만 TV 프로그램이 끝났을 때의 공허함과 후회는 날이 갈수록 커진다. 그리고 시도 때도 없이 날 자극하는 '유튜브' 채널들, 재미있는 부분들만 모아놓은 동영상 클립들이 주변에 널려있다. 나도 모르게 터치하고 한 시간 동안 연예인들이 '바보같이 퀴즈를 푸는 모습'을 바보같이 보고 나면 이런 생각이 든다.


'아... 고작 연예인들이 혼자 사는 모습을 지켜보느라 내 시간을 허비했구나.'

'연예인들이 연출한 바보 같은 모습에 만족감이라도 느낀 건가?'


물론 이런 시간을 통해서 스트레스도 풀고, 피로도 풀고, 감정도 리프레시된다면 TV나 동영상을 보는 시간은 필요하다. 이러한 시간을 통해 업무 효율이 높아지고 내 인생에 긍정적인 효과가 생긴다면 장려해야 할 거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범위에서, 긍정적인 효과를 불러일으킬 정도로 활용한다면 문제가 없다. 그러나 순간적인 자극을 위해 TV나 스마트 폰을 보고, 그 시간이 인생의 대부분을 차지한다면 문제다. 이제 더 이상 TV를 그만 보라 소리치는 엄마도 없지 않은가.


자극

사람들은 편안한 자극, 더 큰 자극을 원한다. 노력이나 고통 없이 자극해 주는 것을 좋아한다. 술, 과식, TV 다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어떠한 노력이 없어도 날 충분히 자극해 준다. 술을 마시고 취하면 난 아무 노력을 하지 않았지만 쉽게 기분이 좋아진다. TV를 아무 생각 없이 멍하니 쳐다보기만 해도 난 깔깔 대며 웃는다.


술, 과식, TV가 악마의 도구라는 건 아니다. 다 없어져야 될 물건이라는 것도 아니다. 모두 도구로서 잘 활용한다면 내 삶을 훨씬 더 풍요롭게 해 줄 것이다. 그러나 주객이 전도된다는 것이 항상 문제다. 내 삶의 주인으로서 이들을 초대하고 즐기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이들의 집에 기웃거리게 된다. 과음을 하고 과식을 하고 TV를 보며 인생의 대부분을 써버 린다는 것이 문제다.


다시 한번 『나는 오늘도 경제적 자유를 꿈꾼다』의 한 부분을 옮겨본다.

우리는 모두 자유를 얻기 위해 일한다. 자유란 무엇인가? 사람들은 흔히 경제적 자유와 시간적 자유를 말한다. 하기 싫은 일은 하지 않고 하고 싶은 것만 하며 사는 삶을 소망한다. 그러나 그것은 진짜 자유가 아니다. 그것은 차원이 낮은 자유다. 내가 생각하는 진정한 자유, 궁극적인 자유는 나 스스로 삶의 주인이 되어 진정으로 이루고 싶은 꿈을 좇는 삶, 바로 그것이다. 내 삶에 규율과 원칙을 세워 몸과 마음을 컨트롤하고 가치 있는 꿈을 이루며 사는 삶, 이보다 멋진 삶이 또 있을까? 이보다 멋진 자유가 또 있을까?



날 유혹하는 것들

진짜 자유를 위해서 날 유혹하는 것들을 잘 컨트롤해야 한다. 나쁜 습관을 좋은 습관으로 덮어 버려야 한다. 내 삶의 주인은 나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항상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범위 안에 있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자. 매일 술을 마시고, 배가 아파도 입에서 당기는 음식을 먹고, 나도 모르게 TV를 보고 있는 건, 날 컨트롤하고 있다고 보기 힘들다. 나조차 컨트롤하지 못하는 데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는가.


날 유혹하는 것들에 대해 이렇게 규율을 세워 보기로 했다.


1. '술'은 일주일에 한 번이면 족하다. 과음은 일 년에 단 2번만 허용한다.

2. '과식'은 명절 때만 한다. 또한 2019.1.31 난 3kg이 줄어 있을 것이다.

3. 'TV'는 단 한 프로그램만 본다.


아... 그래도 아직 난 놀고 싶다. 아직도 주변에 부정과 방해가 넘친다. 그러나 이제는 다르다. 달라졌다는 걸 보여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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