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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실한 베짱이 Jun 27. 2019

사내 네트워크에 대한 무서운 착각

인적 네트워크의 확장을 원한다면 회사 내 인간관계에서 벗어나야 한다.

회사 생활에서 네트워크가 중요해.


팀장: 입사 몇 년차지?

나: 6년 차입니다.

팀장: 계속 영업 부서에 있었고?

나: 네 맞습니다. 입사하고 계속 영업했습니다.

팀장: 마케팅팀도 영업이랑 똑같아. 이건 사내 영업이야. 사내 영업.

나: (사내 영업? 타 부서에 뭘 파나? 뭔 소리야? 일단 대답하자.) 네.

팀장: 타 부서하고 협의하는 일이 많아. 거의 대부분이라고 생각하면 된다고. 사람들 만나서 점심도 먹고, 저녁도 먹고 하면서 네트워킹을 잘해놔. 그게 능력이다. 영업하듯이 하면 되는 거야.

나: (아... 그런 말이었구나) 네. 알겠습니다.


사내 영업이라는 이상한 말에 자꾸 의구심이 생겼지만 일단 넘어갔다. 상사가, 그것도 마케팅팀 팀장이 한 말이니 새겨듣기로 했다. 본사 경험이 있던 영업부서 상사도 본사 네트워크를 잘 구축해 놓으라 말했었다. 그랬기에 난 믿어 의심치 않았다.




네트워크 확장을 위한 노력


나와 관련된 타 부서 사람들과 점심 약속을 잡았다. 경영관리팀, 경영기획팀, 인사팀, 경리팀 등등.... 이미 약속이 꽉 차있어 2달 후 점심 약속만 가능하는 사람도 있었다. 경영관리팀에 있었던 동기의 말을 들어보니, 그 팀에 있을 때는 점심 먹자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점심 걱정을 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다른 사람들도 인간관계를 위해 노력하는구나...'라고 생각했다.


영업본부 사람들과 저녁을 먹었다. 술도 한잔 했다. 영업 현장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듣는다는 명분이었다.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다음 날 생각이 안 난다는 것이 함정이었지만, 현장의 목소리를 술자리에서 진솔하게 들었다.


업무 요청사항에 대해 맺고 끊음이 없이 대부분 수용했다. 과도하더라도 말이다.




'사내 네트워킹'으로 얻을 수 있다고 착각하는 것 3가지


이렇게 노력해서 인간관계가 좋아지면 과연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과연 얻을 수 있을까?



1. 평판

사람들과 점심도 많이 먹고, 술자리도 많이 해서 매일매일이 바쁘다. 웃으며 회사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음식을 먹는다. 오고 가는 술잔에 서로 좋은 느낌을 담는다. 내 평판이 쑥쑥 올라가는 느낌이다. '이런 게 바로 진정한 회사 일이지'라는 생각이 들어 뿌듯하다.


이런 식으로 평판이 올라가는 건 아니다. 그러나 백번 양보해서 이렇게 해서 올라간다고 치자. 그렇다면 왜 평판을 올리려 하는가? 딱 하나. 바로 승진 때문 아닌가? 만약 '자기만족', '더불어 사는 사회'와 같은 다른 이유 때문이라면 어쩔 수 없다. 만약 아니라면, 잘 생각해 보라. 승진에 영향을 미치는 건 직속 상사다. 이는 네트워킹과 전혀 관련이 없다.



2. 안 되는 일을 되게 하기 위해서

친하다고 안 될 일이 되고, 될 일이 안 되진 않는다. 자신의 업무 영역이나 권한을 벗어 나는 일은 아무리 친해도 못해준다. 친하다면 일을 조금 편하게 할 수는 있을 것이다. 마케팅 상 협찬 광고를 해야 할 일이 있었다. 동기가 있어서 어떻게 풀면 편할지 알려줬다. 딱 이 정도다. 조금 편하게 일하려고 사내 인간관계를 쌓는 노력에 내 시간을 투자한다? 글쎄 모르겠다.


"안 되는 일을 되게 할 순 없어도, 될 일을 안 되게 할 순 있어!"


맞다. 훼방을 놓기는 상대적으로 쉽다. 이는 호감을 얻는 것으로 충분히 해소할 수 있다. 호감은 태도로 얻는다. 공손하고, 합리적으로 사람을 대한다. 무리한 요구를 하지 않는다. 내 의견을 강요하지 않는다. 이거면 된다. 밥을 먹을 필요 없다. 상대는 자연히 호감을 갖는다. 그럼 될 일을 안 되게 하진 않을 거다.



3. 정보

친한 사람에게 정보를 더 준다. 그건 맞다. 영업 부서에서 거래처의 관계를 관리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렇게 해서 얻은 정보는 내 커리어나 회사에 수익을 가져다준다. 그러나 사내 정보는 어디에 써먹는가? 상사가 자신의 상사에게 아는 척 한 번 하기 위해 사용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내가 아는 한 차장은 조직 개편에 대해, 전체 공지하기 하루 전에 결과를 알아내 팀장에게 보고했다. 이를 해낸 차장은 나에게 이런 게 정말 중요하다며 나에게 동아리 활동을 하라고 했다. 자신은 3개나 하고 있다며. '오 마이 갓'이다. 그 시간에 회사에 수익을 올릴 아이디어를 생각하는 게 낫다. 전부 다 해낼 수 있다면 하면 된다. 난 전부 다 해낼 수는 없는 사람이다. 그래서 난 사내 인간관계 구축에 개인 시간을 투자하지 않는다.




인간관계가 업무를 얼마나 편하게 해 주는가?


다행히 자연스럽게 '나'를 대상으로 실험해볼 수 있었다. 육아휴직 전, 즉 '사내 인간관계 구축에 시간을 투자하던 나'와 육아휴직 후 '사내 인간관계 구축에 시간을 투자하지 않는 나'를 비교해 보았다.


육아 휴직 전, 난 열심히 점심 약속 잡고, 저녁을 먹으러 다녔다. 팀장님 말씀대로 사내 네트워킹을 하려 노력했다. 지금 난 점심 약속을 잡지 않는다. 책을 읽거나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맛있는 걸 먹는다. 저녁 약속도 간혹 하는 부서 회식 이외에는 회사 사람들과의 약속은 거의 없다.


지금이 예전보다 타 부서 협의가 잘 안되나? 내 평판이 떨어졌나? 일처리가 불편해졌나? 고급 정보 획득이 힘들어졌나?


다 아니다. 오히려 타 부서 협의가 더욱 잘 된다. 1년 후 퇴사할 거라 생각하고 과감하게 하니 협의 진행이 수월하다. 예전에는 타 부서 담당자(특히 선배)에게 쫄기도 했는데 이젠 그런 것도 없다. 스트레스도 많이 줄었다. 안 되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고, 팀장에게 보고한다. 그리고 팀장 선에서 커뮤니케이션해서 해결한다. 팀장이 귀찮아할 거라고? 날 무능력하게 볼 거라고? 내가 시도도 해보지 않고 무조건 다 팀장에게 토스하면 싫어하고, 날 무능력하다 생각할 수 도 있다. 그러나 하는 데 까지 했는데도 해결이 안 되는 어려운 일이다. 바로 그 일에 자신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멋지게 해결까지 했다. 기분이 좋지 않을까?


내 평판? 글쎄... 올라간 거 같은데. 최소한 떨어지지 않았다. 일처리? 다른 이유로 마음이 예전보다 훨씬 편안해졌다. 사내 네트워킹과 관련 없다. 고급 정보? 사내 인간관계 구축에 열과 성을 다했을 때도 획득 못했다.




회사에서는 일을 하면 된다.


인적 네트워크의 확장을 원한다면 직장 내 인간관계에서 벗어나야 한다. 서로 일을 하기만 한다면, 사내 네트워크는 이미 형성되어 있는 것이다. 같은 회사에 다니고, 같은 목표로 일을 하고 있다면 사내 네트워크는 이미 충분히 형성되어 있는 것이다. 일을 하지 않고 서로 친하게 지내기 위해 노력하는 순간 회사는 사교의 장이 되어 버린다. 회사는 일을 하는 곳이지 사교의 장이 아니다.


'사내 정치', '라인', '썩은 동아줄'과 같은 이야기를 하면서 사내 네트워크가 직장생활에 매우 중요하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회사가 내 인생에 전부고, 회사에 모든 것을 올인하고, 그게 재미있고, 내 인생을 풍족하게 만들어 준다면 오케이다. 그렇게 하면 된다. 사내 인간관계를 차곡차곡 쌓아 나가시면 된다.


난 퇴사를 목표로 회사를 다닌다. 사내 네트워크보다는 진정한 인적 네트워크를 확장하기 위해 회사 밖으로 눈을 돌렸다. 그리고 이제부터라도 같은 회사 사람이 아닌 다양한 생각, 직업을 사람들과 진정한 네트워크를 형성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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