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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실한 베짱이 Jul 04. 2019

메시지가 있어야, 프레젠테이션을 잘하는 것처럼 보인다.

내 회사 동기 중 한 명은 목소리 톤이 유난히 좋다. 흔히 말하는 '목욕탕 목소리'를 가졌다. 울림 있고 깊이 있다. 발성이 좋아 회의실의 끝까지 목소리가 닿는다. 발음도 좋아 거슬리는 것이 없다. 프레젠테이션을 하기에 최적의 목소리다. 이 동기는 프레젠테이션을 잘할까?


아니다. 못한다. 못한다기보다는 사람들은 그에게 프레젠테이션을 잘한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왜 그럴까? 이렇게 좋은 목소리를 가지고 있는데 왜 프레젠테이션을 못할까.


프레젠테이션에 메시지가 없기 때문이다. 메시지는 목소리, 태도, 전달력 따위보다 훨씬 중요하다. 메시지가 있어야, 프레젠테이션을 잘할 수 있다.


무슨 소리냐고? 메시지? 난 그런 거 생각해 본 적 없다고? 그냥 파워포인트 만들어서 설명하면 되는 거 아니고? 뭐... 그렇게 생각하고 싶다면 그렇게 생각해도 된다. 그러나 이 글이 끝날 때쯤이면 없는 메시지라고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 거다.




프레젠테이션을 만들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


프레젠테이션을 자료를 만들기 전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답변이 힘들다면 이렇게 질문을 바꿔 보자.


전무님이 나를 친히 불렀다. 이번 주 금요일, 프레젠테이션을 하라고 한다. 바로 내일이다. 시간이 너무 부족한 거 아니냐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오른다. 잠시 정적이 흐른다. 전무님 방, 로마자가 적힌 벽걸이 시계의 똑딱 소리마저 들리는 듯하다. 다른 말 없이 '예'라는 말을 하고 방을 나왔다. 시간이 부족하다. 지금부터 빠르게 자료 준비를 해야 한다. 뭐부터 해야 할지 모르겠다. 나 어떡하지?


자 이제 대답해 보자. 무엇을 하겠는가?


바탕화면의 파워포인트 아이콘을 더블 클릭하지 않을까? 업무용 파일을 모아 놓은 폴더를 열어 그간의 발표 자료들의 제목을 훑어 보지 않을까? 최근에 누가 프레젠테이션을 했냐는 수소문을 하고 자료를 요청하지 않을까? 당신은 100% 짜깁기할 자료를 찾기 시작할 것이다. 아닌가? 아니라면 인정.


짜깁기할 자료를 찾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제목만 바꿔서 쓸 수 있는 자료가 나에게 주는 희열과 안정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자료를 만들 때 이를 먼저 해서는 절대 안 된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바로 메시지를 찾는 것이다. 프레젠테이션 전체를 관통하는 메시지. 이것을 정하지 않고 짜깁기부터 시작한다면 프레젠테이션 자체가 재미없어진다. 의미도 없어진다. 설득력? 개가 물어 간다.



'나 잘하지? 잘했죠?' 잘못된 메시지의 함정


프레젠테이션 자료에 정보를 마구 마구 욱여넣는다. 그리고 이런 메시지를 전한다. '나 많이 알지?', '이렇게 많은 정보를 여러분께 전하고 있어요. 전무님 나 잘하죠?' 내가 말하는 건 이런 메시지가 아니다. 프레젠테이션을 관통하는 메시지를 찾아야 한다. 발표에 녹여내야 한다.


청중은 친절하지 않다. 당신이 스타 강사고, 돈을 내고 강의를 듣기 위해 사람들이 모였다면 모르겠다. 그것이 아니라면 청중의 99%는 당신의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그 들은 '내 삶에 도움이 되는 말들을 많이 하겠지? 오늘 잘 들어 보자!' 대신 '얼마나 잘하나 한번 보자.' 혹은 '틀린 건 없나?'라고 생각한다.


지난주 사내 세무사가 나와 세법에 대한 교육을 했다. 경험도 많이 없는 것 같고 연습도 안 한 것 같았다. 내 브런치 프레젠테이션 편을 소개해 주고 싶었지만, 퇴사 이야기가 너무 많아서 패스. 어쨌든, 다른 부분은 일단 제외하고 내용에만 집중해 보겠다.


첫 제목 슬라이드에 '세법 FAQ'라고 적혀 있었다. 일단 제목부터 아무 의미가 없었다. 뭘 어쩌라는 건가? 누가 많이 한 질문인 건지, 어떤 경로로 모은 건지, 왜 모은 건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이어서 토막 난 세법 관련 용어들이 줄지어 나왔다. 예측 단위 적립 방식(?)이 어쩌고, 재정검증, PBO는 이렇고.


난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 발표에 집중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발표를 시킨 전무, 팀장마저도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모두들 안 보기로 마음을 먹은 듯했다. 신입사원들은 열심히 듣는 듯했지만 당연히 이해하지 못했을 거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메시지다. 이 발표를 왜 하는지, 이 발표의 내용은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 건지, 어떠한 이유로 이 내용이 구성된 것인지, 당신에게 어떠한 영향을 끼치는 내용인지에 대한 내용은 단 하나도 없었다. 내가 세무사인데, 이건 이렇고, 저건 저래. 법은 이렇고, 이 용어는 이런 거야. 단지 이것뿐이었다.


'법인세를 절감하고 싶은 회사에서 나오는 질문 총 정리' 라던가 '퇴직을 앞둔 임원이 궁금해하는 세법'과 같은 간결하고도 핵심적인 메시지를 하나 잡고 프레젠테이션을 했다면 분위기는 달라졌을 것이다. 이 메시지를 강화하고 뒷받침하는 역할을 각각의 정보들이 훌륭히 해냈을 것이다.




메시지만 잡으면 술술 풀린다.


지난주부터 3분기 전략회의 자료를 만들기 시작했다. 팀장이 마케팅 방향을 부서원에게 전달하는 프레젠테이션이다. 내가 하는 프레젠테이션이 아니기 때문에 일단 팀장을 취재(?)한다.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알아야 만들 것 아닌가. 그럼 팀장은 2시간 동안 자신이 가진 생각을 중구난방으로 풀어놓는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마구 내뱉어 미친 듯이 흩어져 있는 정보를 모은다. 전체 맥락을 관통하는 메시지를 찾아내 수면 위로 끌어올린다. 이번 자료의 메시지는 이렇게 정했다.


'당사에 우호적이지 않은 시장환경에서 살아남으려면, 집중해야 할 3가지. oooo 마케팅 강화, 새로운 구조 제안, 민주적인 조직문화 구축'


이렇게 메시지를 잡고, 팀장이 오케이 하면 전개와 흐름은 자연스럽게 나온다. 당사에 우호적이지 않은 시장 환경을 설명하고, 집중해야 할 3가지를 전달한다. 각각의 이유와 근거, 사례를 풀어놓는다.

끝이다.


여기서 바로 짜깁기 기술이 들어간다. 만드는 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할 수 있다. 물론 짜깁기를 안 하고 직접 만들면 더욱 좋은 자료가 나온다. 당장은 안 나오더라도 나중에 좋은 자료를 만들 수 있는 밑거름이 된다. 안타깝게도 야근을 해야 할 수도 있다.



이제는 메시지에 집중하라


불친절한 청중에게 손쉽게 다가서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무엇보다 우선하여 메시지를 잡는 것이다. 청중은 메시지가 있는 프레젠테이션에 재미와 흥미를 느낀다. 듣고 싶은 이유가 생긴다. 논리가 강화되니 설득력이 올라간다.


메시지를 정할 때, 아래 3가지를 고려하면 좋다.


1. 간결해야 한다. 핵심은 언제나 간단하다.

2. 아무리 많아도 가급적이면 3가지를 넘지 않도록 한다.

3. 메시지에 맞지 않는 내용은 과감히 빼라. 억지로 넣으면 설득력만 약해진다.


노무현 대통령의 연설 비서관, 대변인 출신인 윤태영은 그의 책 '좋은 문장론'에서 몇 개의 단락으로 묶었는데 어디에도 포함되지 않는 내용이 있다면 과감히 빼라고 말한다. 프레젠테이션도 마찬가지다. 핵심은 언제가 간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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