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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실한 베짱이 Jul 29. 2019

힘들 땐 잠시 내려놓는다.

내려놓으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장을 보러 마트에 간다. 사야 할 물건들을 적어서 가지만, 항상 사지 않아도 될 물건들을 잔뜩 사게 된다. 쓸데없는 물건을 샀다는 아내의 잔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계산대에서 '아... 저건 뺄걸...'이라는 생각이 든다. 가끔 빼 달라고 이야기할 때도 있지만 대부분 타이밍을 놓친다.


생각보다 많은 물건을 사 가져간 장바구니 넘칠 때가 많다. 장바구니를 안 가져갈 때도 많다. 항상 집을 나선 후 생각난다. 그래서 쓰고 싶지 않지만 비닐봉지를 사용하게 된다. 요새는 20L 종량제 쓰레기봉투를 사용할 수 있어 죄책감이 덜하긴 하다.


생각보다 많이 산 물건들을 비닐봉지에 욱여넣는다. 들어보면 무게가 꽤 나간다. 처음엔 호기롭게 들어 보지만 조금 걷다 보면 여기저기 피로감이 몰려온다. 손에서 오른손으로 바꾸어 보기도 하고 장바구니를 어깨에 걸쳐 기도 한다. 어떻게든 한 번에 집이든 차든 가려고 한다. 무 무거워 여의치 않을 때가 있는데, 그럴 때는 잠시 짐을 내려놓고 쉬었다 다.


잠시 짐을 내려놓으면, 술안주로 산 통조림이나 많이 사면 더 싸지는 캔맥주가 떠오른다.  필요 없는 걸 샀냐며 잔소리할 아내 얼굴떠오른다.


얇은 비닐 손잡이가 손바닥 파고들어 아프다. 이럴 때면 박스를 접어 손잡이를 말거나 손수건으로 손잡이를 말아 쥔다. 이도 저도 없다면 별수 없다. 잠시 쉬었다 다시 들고 걷는다.



내려놓는다는 건 무엇일까?

놓치면 죽을 것 같기에 붙잡고 있는 무언가가 있다. 다다르지 않으면 낙오자가 될 것 만 같아 붙잡고 있는 목표가 있다. 받아들여야 하지만 받아들이기 힘든 문제들도 있다.


이런 상황을 만나면 힘들다. 조급해져서 힘들고 주변의 시선에 힘들고, 불안해서 힘들다. 그래서 견딜 수가 없다면 문제를 잠시 내려놓아야 한다. 손바닥을 파고드는 장바구니를 잠시 바닥에 내려놓듯 이다.


내려놓고 바라보면, 죽을 것같던 문제들, 정말 심각하다 여겨졌던 문제들의 본모습이 보일 때가 있다. 내가 걱정해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 내 인생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문제들, 원인이 중요하지 않은 문제들이 보인다.


마치 마트에서 담은, 술안주로 먹을 통조림 같다. 아내에게 왜 쓸데없는 걸 샀냐며 잔소리 정도만 들으면 모든 게 해결되는 문제들이다. 잔소리에 웃음과 애교로 화답하고 캔맥주 한잔 하면 된다.


조급함으로 마음의 근육이 피로해지고, 남들의 시선 때문에 마음에 상처가 생겼다면 잠시 바닥에 짐을 내려놓자. 그리고 그 짐들을 바라본다. 내려놓고 잠시 쉬다가 상처 난 마음을 손수건으로 감싸고 일단 집으로 들어간다.


장 봐온 재료로 음식을 만들고 아내의 잔소리를 듣는다. 그리고 캔맥주를 하나 따고, 아내와 아이들에게 나 힘들었다고 이야기한다. 상처 난 손바닥을 보여준다. 그 손을 따뜻하게 잡아주는 아내와 아이들이 눈 앞에 있을 거다. 내가 할 일은 그저 솔직히 말하는 거다. 힘들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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