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은 취하려고 마시는 거다.
(아침) 머리가 아프다. 머리 뚜껑을 열고 뇌를 꺼내 깨끗이 씻어 다시 집어넣고 싶다. 내가 다시 술을 마시면 개다. 개.
(저녁) 멍멍. 전 개입니다. 한 잔 하시죠!
"술은 나빠. 사람을 사람처럼 보이지 않게 만들어. 그리고 술을 좋아하면 헤퍼 보이고 가벼워 보이잖아. 그럼 안돼. 자기 관리의 대척점에 있는 아주 좋지 않은 물건이야. 술이 좋다고 느껴지는 순간이 있긴 하지만 착각일 거야. 나는 이런 물건에 휘둘리지 않는 그런 수준 높은 사람이어야만 하니까. 그러나 사람과의 관계는 좋아. 사회적으로 전혀 문제가 없는 사람이지. 문제는커녕 대인관계가 내 자랑이야. 사람 사이에 소통도 무지하게 잘되는 멋진 휴머니스트거든. 그래서 술 자체보다는 술자리를 너무너무 좋아해."
난 태양이 강렬하게 내리쬐는 한낮에, 카페테라스에 앉아 마시는 시원한 맥주를 좋아한다. 이렇게 할 수 있는 순간이 인생에 몇 번 없었다는 게 문제다. 퇴사에 성공하면 이런 시간을 많이 가질 수 있으려나?
비 오는 날 부침개와 함께 먹는 막걸리도 좋다. 엄마의 부침개라면 더할 나위 없다.
금요일에 아이들을 재워 놓고 마시는 캔 맥주 한잔도 사랑한다. 당연히 김치냉장고에서 꺼내야 한다. 김치냉장고는 김치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마음이 맞는 사람과의 맥주 한 잔도 기분 좋다. 한 잔, 두 잔 마시면 벌써 친해진 기분이 든다.
맥주집을 오픈한 친구의 가게에서 먹는 맥주도 빠질 수 없다. 이 것 저 것 원하는 대로 준다. 이 맥주 저 맥주 맛도 보게 해 준다. 서비스 안주도 많다.
동기들과 죽을 때까지 마시는 술도 좋다. 정신을 못 차릴 정도까지 술을 마시다 보면 가족보다 친해진 듯한 느낌이다. 다음 날 아침이 되면 왠지 서먹해지는 사람도 있다는 게 함정.
친구들과 추억을 안주 삼아 마시는 술이 좋다. 매번 만날 때마다 같은 소재를 반복하지만 반복할 때마다 재밌다. 술자리가 끝나면 약간은 허무할 수도 있다는 게 함정.
마음이 울적할 때 단골 집에 가서 사장님과 이야기하며 마시는 술은 특별하다. 딱히 내 고민을 털어놓진 않지만 고민이 해결되는 느낌이다. 사실 고민은 고민한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고민하지 않고 행동할 때 해결되는 게 바로 고민이다.
가족들과 치킨을 먹으며 마시는 맥주는 진리다. 아이들은 음료수를 마시고 난 맥주를 마신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부위는 엉덩이 살과 갈빗살이다. 가끔 모양이 비슷해서 퍽퍽한 살을 고르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