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초록 초록한 자연을 좋아한다. 울긋불긋한 가을 단풍이나 온통 새하얀 설경도 좋지만, 역시나 가장 좋은 건 초록색이다. 초록색은 내 숨통을 트이게 해준다.
어렸을 땐 숨통이 트인다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는데, 이제는 잘 안다. 바쁜 일상을 살다 가끔씩, 아주 가끔 녹음(綠陰)을 마주하게 되면 ‘숨통 트인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그 감정을 아직은 설명할 방법이 없어 아쉬울 따름이다. 그저 공감을 기대할 수밖에.
남들은 그렇게 힘들다고 하는 대학원 생활을 그럭저럭 잘 해낸 것도 초록색 덕분이다. 대학원에서 나만큼 산책을 자주 하는 학생은 없었다. 날씨가 좋아서, 논문이 안 써져서, 마음이 답답해서, 그냥 걷고 싶어서. 다양한 이유로 매일 캠퍼스를 산책했다. 그렇게 푸르른 나무들 사이를 걷고 나면 다시 논문을 펼칠 힘이 생기곤 했다. 농땡이 치고 왔냐는 연구실 동료들의 놀림에는 ‘생태 공부했는데요~’라고 하면 그만이었다(실제로 전공이 동물생태학이었다).
초록색 앞에선 겸손해진다. 초록색이 짙은 곳엔 늘 생명력이 넘쳐난다. 곤충, 조류, 포유류 등 수많은 생물이 찾아든다. 그런 걸 보면 나나 쟤들이나 다 똑같은 자연의 구성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인간이라고 오만할 이유가 전혀 없다. 우리는 녹색을 벗어나서는 살 수 없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초록색엔 분명 불가사의한 힘이 있다. 감히 생태학적 지식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에너지가 분명히 있다.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나의 숨을 트이게 하고, 다시 살아갈 힘을 준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