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역국이 이렇게 어려울 줄이야.
어쩌다 보니, 작년 아내의 생일 때 미역국을 끓여주지 못했다. 연애할 땐 그렇다 쳐도, 이젠 내가 챙겨줘야 했는데. 그래서 이번 생일엔 꼭 미역국을 해주겠다고 다짐했다.
내가 요리를 안 해서 그렇지, 하면 못할 리가 없다. 왜냐하면 평소 연구실에서 하는 일에 비하면 요리는 식은 죽 먹기이기 때문이다.
나는 사람을 만든다. 정확히는 배아를 만들고 키운다. 이를 위해, 복잡한 프로토콜(요리로 치면 레시피)에 따라 배양액을 만들어야 한다. 그 과정이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다.
우리는 주로 마이크로리터(μL)의 단위를 다룬다. 참고로 1μL은 일상에서 흔히 사용하는 단위인 ml의 천분의 일 스케일이다. 그런데 그깟 미역국 하나 못 할까?
그런데 못 할 수가 있더라.
네이버에서 ‘양지 미역국 끓이는 방법’을 검색해서 가장 쉬워 보이는 레시피를 골랐다. 그리고 실험하듯 재료를 정량하여 넣고, 타이머까지 맞추었다. 비록 서툴렀지만, 모든 게 완벽했다. 이제 타이머가 울릴 때까지 끓이기만 하면 된다.
마침내 타이머가 울렸다. 기대하며 냄비 뚜껑을 열었다. 그런데 맙소사, 물이 다 졸아 거의 바닥을 보였다.
변수다. 분명 레시피에 나온 대로 물을 넣었는데 왜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다. 불이 너무 셌나 싶기도 하다.
어쩔 수 없이 물을 더 부었다. 그랬더니 이번엔 맛이 밍밍해졌다. 뭘 더 넣어야 하나 고민하던 찰나에 아내가 귀가했다.
몰래 준비하려고 했지만 더 이상 별수 없었다. 결국 현 사태에 대해 보고했다. 아내는 간을 한 번 보더니 물을 맞추고, 이것저것 넣기 시작했다. 저렇게 대충 넣는데 살릴 수 있을까 싶었다.
괜한 걱정이었다. 내 미역국은 그제야 진짜 미역국이 됐다.
이상하다. 내가 요리를 못할 리가 없는데.. 분명 블로그에서는 끓이기 쉽다고 했는데. 체감상 배아를 만드는 일보다 어려웠다. 앞으로는 밥해주면 잔말 말고 먹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