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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멈가 Jun 15. 2024

아내한테 블로그를 들켰다.


나는 음흉한 구석이 있어서, 밖에선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왠지 감정이나 생각을 들키는 게 싫다. 그래서 사람들은 종종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한다. 칭찬이 아니란 걸 알지만, 그런 소리를 들으면 마음이 놓인다.



반면, 내 글은 말보다 직설적이고, 표정보다 솔직하다. 가까운 사람에게도 말 못 하는 계획이나 꿈에 관해서도 얘기하고, 다소 오글거리는 말도 글로는 곧잘 표현한다. 블로그는 그야말로 벌거벗은 나의 정체성이다. 여전히 남몰래 글 쓰는 이유이다.



그런 블로그를 아내에게 들켜버렸다. 휴대폰에 켜져 있던 블로그 앱을 봐버린 것이다. 물론 딱히 필사적으로 숨긴 것은 아니다. 언젠간 알겠거니 했다. 오히려 이제야 안 것이 신기할 정도이다. 그런데도 막상 들키니 낯 뜨거워 등에 땀이 맺혔다.



아내는 내 눈앞에서 블로그 글을 한편 한편 정독했다. 나는 안절부절못하면서도 그녀의 반응을 살폈다. 그동안 글을 통해 심심찮게 흉도 봤기 때문에 조금 찔리기도 했다.



어떤 글은 무표정하게 넘기더니, 어떤 글에선 웃었다. 또 어떤 글에선 성질을 냈다. 자기 얘기를 쓰면서 보여주지도 않았냐는 것이다. 아마 그랬다면 진솔하게 쓰긴 어려웠을 것이다. 나는 대충 얼버무리고는 맥주를 한입 마셨다. 그래도 생각보다 반응이 나쁘진 않은 듯했다.



다시 고개를 들어 아내를 보았다. 얼굴이 잔뜩 붉어져 있었다. 몇 번 봐서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울기 직전의 표정이었다. 당황스러웠다. 내 글은 딱히 슬픈 글도 아닌데, 도대체 어느 부분에서 그러는 걸까?



알고 보니, 결혼을 결심하게 된 계기에 관해서 쓴 글에 감정이 북받쳤다고. 나는 감상평을 자세히 듣고 싶었다. 어떤 점이 좋은지, 부족한 점은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그러나 우는 아내를 보니, 물어도 소용없을 듯했다. 다시 맥주를 들이켰다.



서비스로 나온 소금 맥주의 맛이 오묘했다. 덩달아 내 감정도 오묘해졌다. 누군가 내 글을 보고 웃고 울고 한다는 사실이 오묘했다. 하지만 가장 오묘했던 건 아내의 얼굴이었다. 안 그래도 어딘가 이상한 그녀는, 우는 것도 진짜 이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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