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생활의 한 가지 재미라면, 아내를 관찰하는 일이다. 나는 원래 동물 관찰하기를 좋아한다. 그것과 비슷한 느낌이다. 아내를 동물에 비교해 조금 그렇지만, 내 얘기를 듣는다면 조금은 납득할 것이다.
그녀는 기분이 좋을 때, 초원 위를 노니는 망아지 같다. 반은 비유법이고 반은 사실이다. 실제로 이상한 소리를 내며 날뛰기 때문이다. 그 옛날, 찰스 다윈이 갈라파고스 제도에서 새로운 종을 발견했을 때 이런 기분이었을까? 귀여우면서도 괴상하다.
반면 기분이 안 좋을 땐, 변태 직전의 애벌레마냥 잔뜩 웅크린다. 이불속에 파묻혀 숨도 안 쉬고 몇 시간 동안 드라마를 본다. 운이 좋으면 이 모든 모습(망아지와 애벌레)을 하루 만에 볼 수도 있다. 그러니 신기할 수밖에.
그녀는 첫 만남부터 심상치 않았다. 커다란 챙 모자를 쓰고 친구들과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마치 인디아나 존스 같았다. 서울에서는 볼 수 없는 차림새였다. 아니, 그냥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차림새였다. 나도 모르게 호기심이 생겼다. 숙맥인 내가 먼저 다가갔으니 말 다했다. 그날 전화번호를 받고는, 한동안 그녀를 인디아나 존스라고 저장해놨다.
인디아나 존스는, 아니 와이프는 그 뒤로도 파격적인 패션을 선보였다. 형광색 그물 옷이라든지, 호피 원피스라든지. 처음엔 충격적이었지만, 볼수록 나쁘지 않았다. 언제부터인가 번화가에는 다들 똑같은 패션을 하고 있지 않던가? 그 사이에서 아내는 늘 독보적이었다. 과연 오늘은 또 무슨 옷을 입었을까 하고 설렘 반, 두려움 반으로 그녀를 만나러 갔다.
조금은 이상하지만, 나는 분명 그의 독특한 매력에 이끌렸다. 그런데 결혼한 뒤로는 자꾸만 아내를 바꾸려 한다. 튀지 못하게 평균 안으로 넣으려 한다. 외출 준비를 할 때마다 평범한 옷은 없냐며 핀잔을 준다. 그래서인지 지금은 그 색이 조금 옅어졌다.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 미안하다.
그런데 사실 내가 신경쓰는 건 형광색 옷이나 호피 원피스 따위가 아니다. 뭘 입든 나는 그 취향을 받아들일 수 있다. 지난 7년 간 온갖 희한한 옷을 보며 내성이 생겼기 때문이다.
내가 정말로 싫은 건, 그런 아내를 쳐다보는 타인의 시선이다. 특히, 일부 아줌마 아저씨들은 어찌 그토록 노골적으로 쳐다보는지 모르겠다. 정작 아내는 그 무례한 시선을 눈치채지 못한다. 불쾌한 건 언제나 예민한 내 몫이다. 그런 걸 보면, 나도 성숙한 어른이 되긴 글렀다. 그렇지만 어쩔 수 없다. 아내의 독특함을 논할 수 있는 건 나뿐이니까. 관찰도 나만이 할 수 있다.
이제 글을 마무리하려는데, 쓰고 보니 이상한 건 아내가 아니라 나인 것 같다. 차라리 잘 됐다. 이상한 사람끼리 만난 것이니, 잘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