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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멈가 Jun 09. 2023

신의 권능에 도전하기


임상 배아 연구원이라는 내 직업은 흔히 '난임 연구원'이라고 알려져 있다.


하는 일은, 자연 임신이 안되는 부부에게 시험관 아기 시술을 통해 아이를 안겨주는 것.


쉽게 말해서 생명공학의 힘을 빌려 아기를 만들어 주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얘기하자면, 아내에게서 난자를, 그리고 남편에게서 정자를 채취한 뒤, 그 정자와 난자를 수정시킨다.


수정에 성공하면, 이제부터는 배아라고 부른다.


그렇게 만든 배아를 며칠 더 키워, 자궁에 이식한다.


그게 바로 우리가 하는 일이다.


매일 보는 광경이지만 여전히 경이롭다.


 나는 가끔 신의 권능에 도전한다는 건방진 생각을 한다.


‘사람을 만드는 일’에 가담하기 때문이다.


물론 아직 모든 난임 부부에게 아기를 안겨줄 수는 없다.


과학 기술의 한계랄까.


하지만 중요한 점은 임신 성공률은 계속 증가하고 있다는 것.


우리는 단 1%의 임신 성공률이라도 더 높이기 위해 노력한다.


1991년 - 2018년 시험관아기 시술 임신 성공률 (출처: https://www.hfea.gov.uk/)


이런 모습이 내겐 신에게 도전하는 듯한 느낌이다.


영국 기관인 HFEA의 통계 자료를 보면 1991년부터 2018년까지 거의 모든 연령층에서 임신 성공률이 증가했다.


현재의 임신 성공률은 더 높다.


그리고 이런 추세는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이다.


우리 병원의 경우 임신 성공률은 40~60% 사이.


여기서 한 가지 알아야 할 점은, 일반인에 대한 임신 성공률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자연 임신이 안 되어 병원을 찾은 '난임 부부'를 대상으로 이 정도의 임신 성공률을 보이는 것.


즉, 과거였다면 아기를 갖지 못했을 사람 중 절반은 이제 아기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는 얘기이다.


비록 건방지지만, 이 정도면 신의 권능에 도전하는 기분을 느껴도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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