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 한번 안아볼래?”
아기를 안아보라는 와이프의 말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외동에 조카도 없어, 한 번도 아기를 안아 볼 기회가 없었다. 어떻게 받쳐 안아야 하는지도 모른다.
혹여나 다치게 할까 걱정되어 거절한 것이다.
병아리가 다칠까 봐 만지지 못한다는 마동석과 비슷한 마음이랄까.
“아 왜에! 너도 나중에 다 해야 하는 거야. 안아봐.”
그런데도 와이프는 조카를 강제로 내게 안겨주었다.
어느 정도는 예상했다.
최대한 조심스럽게 아기를 안았다.
아기가 내 수염이 신기한 듯 쳐다보았다.
나도 아기를 신기하게 쳐다보았다.
지금 누가 더 신기할까?
임상배아연구원이니 뭐니 하는 내 직업은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쉽게 난임 부부에게 아이를 만들어 주는 일이라고 설명하고는 한다.
그런데 사실 이 말은 정확하지 않다.
우리는 배아 초기 단계까지 만들어 이식하고,
임신이 성공하면 후에 산부인과에서 출산한다.
실제로 갓난아기를 볼 일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처조카를 안았을 때, 어색할 수밖에 없었다.
젖병을 문 모습, 나를 훑어보는 눈빛, 쉬 싸며 부르르 떠는 것, 붉으락푸르락하는 표정 그리고 엄마의 손가락을 꽉 쥔 작은 손. 모든 게 신기했다.
자세가 불편했는지 아니면 낯선 내게 안긴 게 싫었는지 금방 울먹이기 시작했다.
나는 난감해 어찌할 바를 몰라, 얼른 넘겨주었다.
그런 어린 처조카를 보며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그 코딱지만 한, 아니 그보다 훨씬 작은 배아가 이런 아기가 될까 신기했고
바로, 이 모습을 보기 위해 많은 난임 부부가 그 고생하는구나 싶었다.
육아 때문에 힘들어하면서도 아이를 행복하게 바라보는 부모의 얼굴이 인상 깊었다.
과연 지금까지 나는 몇 명의 부부에게 행복을 주었을까?
그리고 한 10년쯤 뒤엔 얼마나 많이 기여했을까?
문득 궁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