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멈가 Jun 17. 2023

엄마는 철옹성이 아니었음을

 

 

  어젯밤 몸을 뒤척이다가 아내의 팔을 베고 누워 봤다. 늘 안아주기만 했지, 안긴 것은 오랜만이었다. 잠시 그렇게 누워있는데 아내의 품이 너무 작아 불편했다. 어렸을 적 느꼈던 엄마의 품과는 사뭇 달랐다. 결국 금방 제자리로 돌아 누웠다.


 결혼한다는 것은 단순히 짝을 이루고, 번식한다는 데 그치지 않는다. 앞으로 고난을 함께 헤쳐 나갈 동료가 생긴 것이다. 그런데 지나친 유난일까? 와이프를 보고 있으면, 동료라기보다는 지켜야 할 대상으로 느껴진다.


 가족을 지켜야 할 대상으로 보는 것. 그건 수컷의 DNA에 깊이 각인된 본능일지도 모른다.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사회적 지위를 얻은 것은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다. 인류 탄생 이래로, 최근까지 남자는 늘 가족을 보호하는 역할을 해왔다. 야생동물, 다른 부족 그리고 배고픔으로부터 말이다.


 내겐 한없이 넓고 푸근했던 엄마의 품도, 아빠에겐 작고 불편한 품이었을 것이다. 어렸을 땐 엄마와 갈등을 겪으면서도 사업을 하려는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배고픔으로부터 가족을 지키기 위함이었음을. 나역시 작고 귀여운 내 월급을 보면, 사업을 해야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아버지는 나의 10대 시절 내내 기러기 아빠였다. 집에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왔다 가셨는데, 돌아가는 아빠를 배웅하고 방에 들어와 울던 엄마의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 내게 철옹성 같은 존재였던 엄마도 사실은 보호가 필요했던 것이다.


 '나의 부모님은 편안하고 풍족한 노후를 보내신다.'

 매일 아침 노트에 쓰는 긍정 확언 다섯 번째 항목이다. 이제는 내게도 작은 품이 되어버린 부모님을 보면, 내가 철옹성이 될 차례임을 느낀다. 아직은 내가 성을 쌓는 속도보다 부모님의 노화 속도가 더 빨라 조바심이 들기도 한다. 그 무엇보다 거중기가 필요한 시점인 듯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글, 딱 한 시간만 쓰겠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