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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멈가 Sep 19. 2023

영어 부진아는 커서 영어로 논문을 씁니다.


 목이 빠지게 기다리던 메일을, 잊을 때쯤 되어서야 받아볼 수 있었다.


 'Notification of Acceptance'


 11월에 있을 국제 학회에 제출한 연구 요약본이 승인되었다는 메일이다. 학회에 내 연구를 걸어주겠다는, 발표해도 좋다는 내용이다.


 이제 본격적으로 준비를 해야 한다. 발표라면 지겹도록 해봤지만, 이번 발표는 조금 특별하다. 국제 학회인 만큼 영어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영어 부진아였던 내가 영어로 글을 쓰고 발표한다는 사실이 신기할 따름이다. 중학교 때, 나는 영어 시간이 가장 두려웠다. 영어 선생님은 무작위로 학생을 지목하여 영어 지문을 읽게 하셨는데, 그게 무척 싫었다. 부끄럽게도 난 그때까지도 영어를 잘 읽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리 준비하기로 했다. 영어 지문 아래 한글로 발음을 적어놓았다. 그렇게 하니 마음이 놓였다. 마침 내가 지목되었고, 준비하길 잘했다고 생각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그날, 나는 평생 가슴에 남을 상처를 얻었다.


 “에휴.. 넌 됐다. 안 시킬 테니까 그런 짓 하지 마라.”


 영어 선생님이 내 교재를 보고는 혀를 차며 말했다. 읽지 않아도 된다고 하니 처음엔 안도했지만, 이내 수치심이 몰려왔다. 한심스럽다는 표정과 한숨. 그건 분명 포기를 의미했다. 실제로 그 뒤로 내게는 아무것도 시키지 않았다.






뒤늦게 시작했던 대학원 생활


 남들이 펜을 놓는 시기에 펜을 잡았다. 유일하게 좋아했던 과목인 생물을 전공으로 선택했고, 잘하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대학원 진학으로 이어졌다. 그때부터 영어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었다.


 가장 좋아하는 걸 공부하기 위해 가장 싫어하는 것을 공부해야 한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하지만, 덕분에 영어를 포기하지 않았다.


 연구원이라면 응당 영어 논문을 숨 쉬듯 자연스럽게 읽어야 하건만, 뒤늦게 공부를 시작한 나는 그렇지 못했다. 마치 아가미 호흡을 하던 어류가, 육지로 올라와 폐호흡을 배워가듯, 고통스럽고 부자연스러웠다. 하지만 진화하기를 포기하면 도태된다는 것을 알기에, 꾸역꾸역 해나갔다.


 어디에서 그런 글을 본 적 있다. 뒤처지는 느낌이 들면, 과거의 자신과 비교해 더 나아진 점을 종이에 적어본다는 글. 그렇게 함으로써 느리지만 꾸준히 발전하고 있음을 깨닫는다는 얘기.


 그런 관점에서 나는 분명히 발전했다. 이젠 논문을 읽는 것도, 쓰는 것도 꽤 익숙해졌다. 한 문장 한 문장 어렵지 않게 타이핑한다. 마침내 폐호흡을 배운 것이다.


 그 선생님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당신이 포기한 학생이, 이제는 영어로 논문을 쓰고 해외에서 발표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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