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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멈가 Oct 16. 2023

좋은 글은 쉽게 읽히는 글

사자의 암수를 구별하는 방법


대학교 레포트를 쓰던 때가 기억난다. 내용 자체는 별것 없었는데, 이해하려면 두세 번은 읽어봐야 했다. 문장이 난해하고 전문 용어를 많이 썼기 때문이다. 그게 멋있다고 생각했다.


그 레포트는 B+를 받았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너그러운 교수님이었다. 나라면 읽어보지도 않았을테니까.


글쓰기의 대가들은 하나 같이 ‘쉽게 쓸 것’을 강조한다. 전문 용어를 최소화하고, 문장은 간결하게 쓰라고 말이다.


예를 들어, 자청은 저서 <초사고 글쓰기>에서 SEDA 법칙을 제시했다. 짧게 쓰고, 쉽게 쓰고, 문단을 나누고, 완성된 글을 다시 보는 것만으로도 상위 3%의 글쓰기 실력을 갖출 수 있다는 것이다. 글 솜씨를 수치화하는 것은 불가능해 상위 3%라는 말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지만, 그만큼 쉽게 쓰는 것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그들은 왜 그토록 짧고 쉽게 쓰라는 것일까? 조금은 어려운 글이 좋은 글 아닐까?


과거에는 그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대가 변했다. 글은 더 이상 지식인들의 전유물이 아닐뿐더러, 독자들은 이제 어렵고 장황한 글을 읽지 않는다.


흥미로운 제목에 이끌려 들어가 봤다가 어렵고 장황한 내용을 보고는 ‘뭐라는 거야?’ 하며, 뒤로가기를 눌렀던 경험이 한 번씩 있지 않던가. 한 가지 사실은 분명하다. 우리는 활자 읽는 능력이 퇴화했다.


따라서 독자가 짧은 호흡으로 속도감을 느끼며 읽을 수 있도록 배려해야한다. 문장을 짧게 쓰라는 것은 그런 의미이다.


반면 ‘쉽게’ 쓰라는 표현은 다소 애매하다. 대체 얼마나 쉽게 쓰는 것이 쉬운 걸까? 석사 수준의 글이 교수에게는 쉬울 테지만, 학부생에겐 그렇지 않을 것이다.


글을 쓸 땐, 내가 알고 있는 것을 상대방도 알고 있으리라 여기는 경향이 있다. 이를 지식의 저주라고 한다.


관련해서 재미있는 경험이 있다. 예전에 미술 학원에 다닌 적이 있는데, 하루는 갈기가 멋진 수컷 사자를 그리고 있었다. 그림을 보던 미술 선생님이 물었다. “사자는 수컷인지 암컷인지 어떻게 알아요?” 나는 심히 당황했다. 수컷만 갈기가 있다는 사실을 모를 수도 있단 말인가.


2019. 수컷 사자


나 역시 별반 다르지 않다. 나는 스케치와 소묘의 차이점도 몰랐다. 내가 소묘에 대해 묻자, 옆에 앉은 꼬마가 의기양양하게 설명했다. 그 꼬마에게는 사자의 암수를 구별할 줄 모르는 것과 다를 바 없어 보였을 것이다.


이런 일이 글쓰기에서는 더욱 흔하다.


한 가지 팁은 가상의 상대를 만드는 것이다. 말하고자 하는 것에 대해 전혀 모르는 가상의 상대를 만들어, 내 앞에 앉힌다. 그러고는 대화하듯이 글을 쓰는 것이다. 때로는 부모님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어린 아이가 되기도 한다.


생각해 보자. 초등학생에게 DNA의 구조에 대해 설명하려면? 전문 용어는 모조리 빼 버려야 할 것이다. 좋은 글은 쉽게 읽히는 글이다. 하지만 그 쉽게 읽히는 글을 쓰기 위해선,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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