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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멈가 Oct 21. 2023

제 글의 90%는 OOO에서 완성됩니다.


바야흐로 전 국민이 작가인 시대이다. 작가의 벽은 허물어졌다. 이제 누구나 글을 쓸 수 있다.


현대에 작가란 어떤 모습일까? 잠시 작가가 글 쓰는 모습을 상상해 보자.


나는 이런 장면이 떠오른다. 책으로 둘러싸인 서재, 방 한가운데 놓인 커다란 원목 책상, 잔잔하게 흘러나오는 클래식 음악, 그리고 펜을 쥐고 고뇌하는 작가.


-SBS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 中-


알다시피, 펜으로 글을 쓰는 시대는 끝난지 오래이다. 내 생각엔, 요즘은 원고지 쓰는 법을 모르는 작가도 많을 것 같다. 그런데도 작가라고 하면 왠지 그런 장면이 그려진다. 전형적인 고정관념이다. 이제 서재는 그저 펜처럼 상징적인 이미지가 되었다.


물론 나도 개인 서재에 대한 로망은 있다. 원래는 작년 이맘때쯤, 그 로망을 실현시킬 계획이었다. 신혼집으로 이사 준비를 하면서 나는 아내에게 호기롭게 통보했다.


“남는 방 하나는 내 서재로 쓸게.”


계획은 실패했다. 아내는 허락했지만, 조그마한 집에 서재까지 두는 건 불가능했다. 살림이 채워질수록 공간이 부족했다. 서재가 될 뻔했던 그 방은 오만 잡동사니로 차버렸다. 이렇게 될 줄 알고 허락했던 걸까?


비록 서재는 갖지 못했지만, 어쨌든 나는 글을 쓴다. 이제는 스마트폰만 있으면 어디서든 글을 쓸 수 있다. 실제로 내 글의 90%는 출퇴근길 지하철에서 완성된다.


이제 스마트폰으로 어디서든 글을 쓸 수 있다(출처=셔터톡스)


글을 써본 사람은 알 것이다. 막상 각 잡고 앉아 있으면 글 상이 잘 떠오르지 않는다. 그런데 대중교통에서는 생각보다 글이 잘 써진다. 주변 소음이 어느 순간 백색소음이 되는 것을 경험할 수 있다.


덕분에 종종 내릴 곳을 지나치기도 하지만 크게 개의치 않는다. 글 쓸 시간이 늘어났으니 오히려 좋다. 그렇게 위안하며, 이 삼일 출퇴근하다 보면 한 편이 거의 완성된다. 이쯤 노트북으로 맞춤법 검사와 간단한 편집으로 마무리한다.


이렇게 글을 쓸 수 있다는 게 참 다행이다. 사실은 이전에 하루에 한 시간씩 매일 글을 쓰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의지박약인 나는 지키지 못하는 날이 더 많았다. 스마트폰이 없었더라면, 작가 흉내도 못 낼 뻔했다.


나의 경우 지하철에서 주로 쓰지만, 어떤 이는 퇴근 후 카페에서 쓴다고 한다. 서재가 없어 글을 못 쓰는 일은 이제 없다. 스마트폰만 있다면, 우리가 있는 이곳이 곧 서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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