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를 시작하고 목숨 걸고 지키는 게 하나 있습니다.
바로 글 쓴다는 사실을 주변에 알리지 않는 것입니다. 필명을 고집하는 이유도 그 때문입니다.
저의 첫 번째 출간 책 <글쓰기라는 묘한 희열>에서도 본명은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첫 책인 만큼 이름을 넣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요. 지금 돌이켜 봐도 그러지 않길 잘했습니다. 글은 은밀하게 쓰는 것이 좋습니다.
글을 왜 은밀하게 써야 할까요?
취미든 뭐든, 글 쓴다는 걸 알면 지인들은 일단 포털 사이트에 이름을 검색해 보기 마련입니다. 못 보여줄 글을 쓰는 것도 아니지만, 아는 사람이 본다고 생각하면 글에 제약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일상의 여러 사람과 사건을 주제로 삼는 에세이의 특성 때문이죠.
제 일화를 예로 들어볼게요. 갓 출판되어 따끈따끈한 책을 부모님께 기념으로 드렸습니다. 어머니는 그 온기가 식기도 전에 멈가라는 제 작명을 검색해서 블로그를 찾아내셨습니다.
하물며 직장에선 어떨까요? 잘 써도 문제, 못써도 문제입니다. 그런 이유로, 저의 글쓰기 멘토인 S작가님 역시 글 쓴다는 사실을 직장에 만큼은 절대로 알리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은밀하되, 위대하게 씁시다.
은밀하게 쓴다고 해서 그 내용마저 비밀스러워서는 안 됩니다. 은밀하게 쓰되, 글 안에서만큼은 자신을 온전히 내어놓아야 합니다. 그래야 비로소 글이 진정성과 독창성을 갖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자신을 내어놓는다는 것이 말처럼 쉽진 않습니다. 왠지 글을 쓸 땐 똑똑해 보이고 싶은 마음이 들곤 하는데요. 때로는 그런 오만함이 글에 드러나기도 합니다. 이는 제가 가장 지양하는 부분으로, 눈물을 머금고 글을 통째로 삭제한 적도 있습니다. 글에서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은 생각보다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솔직하고 대범한 글이야말로 위대한 글입니다. 꼭 대단한 글을 써야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비록 그 내용이 사소하더라도 나를 온전히 내어놓은 글은 독자의 마음에 울림을 줄 수 있습니다.
고비는 따로 있습니다.
꾸준히 글을 쓰다 보면 종종 좋은 일이 생깁니다. 예를 들어, 어딘가에 내 글이 실려 높은 조회수가 나오기도 하고, 그동안 쓴 글이 모여 책으로 출간되기도 하죠. 그럴 때면, 여기저기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네, 잘될 때가 오히려 고비입니다. 이렇게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샘솟으면, 저는 생각합니다.
‘동료들이 내 글을 본다면, 앞으로도 이런 글을 쓸 수 있을까?’
아마도 솔직하고 재밌는 글을 쓰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어쩌면 글쓰기 자체를 놓아버릴지도 모르고요.
그렇게 생각하니 목청까지 올라왔던 말이 쏙 들어갑니다. 천만다행입니다. 생각해 보면 딱히 큰 자랑거리도 아니었거든요.
은밀하게 글을 쓴다는 것은, 주변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져 자신만의 생각과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할 수 있음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자신을 온전히 내어놓은 글이야말로 위대한 글이고요. 그러니 당분간은 참기로 해요. 압도적 성과를 내기 전까지 말입니다.
저는 오늘도 은밀하게 위대하게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