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토리니의 해
(사진 : 로스앤젤레스 산타모니카 해변 2014)
세계 3대 석양의 황홀한 노을을 기억한다. 그것도 3대 석양 중 2개나 직접 바라본 내 눈이 기억한다. 산토리니, 피지, 코타키나발루의 석양을 묶어 세계 3대 석양이라고 한다. 산토리니는 신혼여행지였고 피지는 대학시절 어학연수로 갔다 온 곳이었다. 두 곳 모두 그런 거창한 타이틀을 보유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갔었다. 피지 해변가에서 바라본 석양이 황홀경이라 역시 휴양지는 다르구나 생각은 했던 기억이 난다. 산토리니에서는 요트를 타고 노을 보러 나갔던 선셋투어에서 뱃멀미를 심각하게 했던 기억이 있다. 물론 피지 못지않은 눈부신 아름다움 또한 잊을 수 없었다. 코타키나발루는 아는 지인들과 여행으로 한 번 가려고 계획은 했으나 아쉽게도 실행되진 못했다. 그래도 코타키나발루는 아내가 결혼하기 전에 여행을 다녀왔다고 했으니 부부가 합쳐 세계 3대 석양을 섭렵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남태평양 섬 피지의 석양(2014) 산토리니 피아마을의 석양(2022) 산토리니는 아내가 직접 고른 신혼여행지였지만 정작 본인은 자기가 생각한 유럽의 이미지가 아니라며 여행 다니는 내내 뾰로통했었다. 절벽에 들어선 순백의 마을과 드넓은 바다의 찬란한 조화를 이루는 산토리니는 그녀가 상상했던 동유럽의 아기자기한 도시풍경과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노을 지는 풍경과 야경을 좋아하는 나에게 맞춤형 여행지였던 터라 아내와 달리 신혼여행은 황홀했던 기억 위주로 내게 남아있다.
아내는 나와 결혼할 때 몇 가지 꼭 지켜줬음 하는 조건이 있었는데 그중 하나는 매년 최소 한 번 이상 해외여행을 가고 싶다는 거였다. 그래서 여행비를 적금식으로 꼭 따로 모으자고 했다. 올 3월 전까지는 꼬박꼬박 모았었고 그 모은 돈으로 도쿄여행도 잘 다녀왔었다. 이런 조건을 요구하는 모습을 보면 해외여행을 좋아해서 많이 다녀봤겠지 싶었지만 전혀 아니었다. 일하느라 바빴고 혼자 다니는 것도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결혼한 후에 나와 함께 여행을 많이 다니고 싶어 했을 뿐이었다.
"우리 이제 해외여행은 어렵겠지?"
그 3월에 갔던 여행이 우리 부부에게 최후의 해외여행이 될지도 모르는 상황이 돼버렸다. 시간은 둘째치고 동네 나가서 커피 한 잔 사 마실 돈도 부족할 판이었다. 너무 돈, 돈, 돈 거리는 것 같지만 실제로 우리 재정상태는 점점 파국으로 치닫고 있었다. 이번 달마저 적자가 나면 정말 버틸 수 없는 상황이었다.
아내와 함께 해외여행 가는 꿈을 꿨다. 나는 아내와 달리 여행을 필수로 가야 한다는 마음은 없었다. 갈수록 여행은 피곤하고 지치는 일로 여겼다. 준비하는 과정이 번잡스럽고 힘들었다. 그런 내가 해외여행을 가는 꿈을 꿨다는 게 신기했다. 해외여행이 우리 부부에게 꿈속의 존재처럼 느껴진 순간, 관심도 없으면서 괜스레 가질 수 없음에 뒤틀린 탐욕이 발동한 모양이다.
10년 동안 아내는 겨울과 여름의 해가 얼마나 다른지 조차 모르고 살아왔다. 동대문 도매업에 종사한 지 10년. 중간에 관둔 기간 2개월을 제하더라도 9년 넘는 시간을 해가 없는 밤에 일어나 출근을 해왔다. 해가 떠있을 때 잠들어야 했고 해가 졌을 때 비로소 하루를 시작해야 했다. 동대문 도매시장의 건물들은 각각의 운영시간이 있는데 건물에 세 들어온 개인 매장들은 반드시 이에 따라야만 한다. 도매시장은 소매시장이 열리기 전에 판매를 해야 하므로 밤에 문을 열었다. 아내가 일했던 건물은 주 6일 문을 열었고 그래서 그녀는 불과 1년 전까지 일주일에 엿새를 밤새워 일해야만 했다. 아내가 저녁 여름 해를 몇 년간 보지 못했던 이유다. 늦어도 오후 4시 전에는 자야 6시간 정도 자고 일어나 출근을 할 수 있었다. 개인 휴가 같은 것도 없었기 때문에 연휴라 함은 명절과 건물이 정한 여름휴가 기간 외에는 전무였다. 그래서 아내는 여행에 목말라 있었다. 1년에 1박 이상 여행 갈 기회가 고작 3번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 3번 모두 여행을 다녔던 것도 아니었다.
"도쿄라도 갔다 와서 다행이다. 어쩐지 가게 열면 못 갈 거 같더라니."
아내는 여행적금을 부을 정도로 강했던 해외여행에 대한 열망을 일본 여행과 탐탁지 않았던 신혼여행의 기억 덕에 겨우 억누를 수 있었다.
"후회 안 해?"
"일 관둔 거? 절대로. 지금도 행복해. 아직 힘들긴 한데 벌이만 조금 나아지면 너무 만족스러워."
아내가 카페를 차린다고 했을 때 걱정하던 장모님께 울부짖던 모습이 떠올랐다.
'나도 남들 잘 때 자고 일어날 때 일어나고 싶어. 평일에 일 끝나고 저녁에 사람 만나서 맥주 한 잔 하면서 그렇게 살고 싶어. 이제 밤에 일하는 거 진절머리 나.'
10년간 갈망해 왔던 낮생활. 빈털터리가 될지라도 지금의 생활을 후회하진 않아 보였다. 그냥 큰 바람도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그 대가를 비정상적으로 크게 치르고 있을 뿐이었다. 씁쓸한 행복 속에 있는 아내에게 슬쩍 한마디를 건네보았다.
"그래도 그때 벌이는 훨씬 괜찮긴 했는데 말이여."
같이 덮고 있던 이불을 휙 낚아채 등을 돌려버리는 아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