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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므므강 Jul 19. 2023

#1 여름 해

여름 해

"해가 길어졌다는 게 이런 거구나? 아직도 밝아."

"신기해?"

"응, 신기해! 생각해 보니 10년 만에 이 시간에 나와있는 거잖아."


 올해 아내의 나이가 서른하나니까 스물하나부터 저녁에 떠있는 여름 해를 보지 못했다는 소리였다. 가게를 열었던 3월부터 4개월이 지난 7월까지 하루종일 가게에 있으면서 몸소 길어진 낮을 겪어보니 새삼 신기했나 보다. 는 가게 밖 하늘을 한참 올려다보았다. 지나가는 행인들이 혹여나 손님으로 들어오지나 않을까 거리만 내내 응시하던 아내가 이제는 저녁 7시가 넘도록 밝은 하늘을 구경하느라 바빴다. 등장인물이 속 깊은 사연이 있어 드넓은 바다를 인생에서 처음 대면한 장면 따위가 내 눈앞에서 펼쳐졌지만 현실은 그런 영화와는 다르게 별 감흥이 없었다. 그런 아내의 아이 같은 모습이 귀여울 따름이었다. 그런데 창 밖을 보는 아내의 뒷모습을 계속 바라보니 그 옆 커피 호퍼에 담긴 원두를 한 움큼 꺼내 삼킨 듯이 씁쓸한 기분이 슬며시 올라왔다. 벽에 기대 선 아내의 뒷짐 진 손은 무엇에 흥을 느꼈는지 까딱거리고 있었다. 


 아무도 없는 텅 빈 홀처럼 버틸 기력도 자금도 점점 바닥을 보여가는 와중에 오랜만에 보는 그녀의 티 없이 맑은 미소. 평소였으면 아내의 말에 어디 동굴에서 마늘만 먹다 나왔냐며 놀렸겠지만 그러기엔  미소에 머금은 의미가 너무 많아 무거워 보였고 낯설었다. 2주 전에 하지가 지난 오늘에 구태여 낮과 밤의 길이를 재보는 이유를 알  없지만 예상은 할 수 있었. 바쁠 시간이니까. 그런데 안 바쁘니까.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그럴 거니까. 그러니 주위의 모든 것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을 것이다.


"좋아?"

"좋지. 내가 이러려고 일 관두고 가게 차린 거잖아."

"해 보려고?"

"응! 그렇지."


 말하지 않았지만 그녀가 무슨 생각하는지 이제 보이기 시작했다. 아내가 했던 말을 토대로 내 느낌을 얹어 표현하자면 그녀의 근 10년 간의 생활은 지옥이었다. 물론 지극히 내 개인적인 감상이 섞였으므로 과장된 표현일 수 있지만 아내는 항상 오랜 기간 해온 일을 그만둔 것을 탈출이라고 말해왔었다. 출에는 성공했지만 세상 밖은 호락하지 않았던 동물원을 벗어난 침팬지가 된 아내의 모습. 지옥이란 철창으로 된 우리에서 벗어났지만 홀로서기를 위해 최소한의 울타리 역할이 필요해 보였고 그것을 남편인 내가 자처했었다. 그런데 요즘 내 존재가 그녀에게 득이 되긴 하는지 의문일 때가 많아지고 다. 사사건건 부딪히는 일이 잦아졌었다.  번은 가게에 관하여 무슨 일을 진행하든 날 설득해야 하는 과정이 가장 벅차다고 말한 적도 있었다.


  순간 아내와 내가 있는 하나의 시공간이 비틀어지고 있음을 느꼈다. 지나간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그녀를 따라가지 못하고 나의 시간은 그 자리에서 멈추고 말았다. 아내의 격정적인 시간 속에 내 존재는 미미했을 것이. 그녀의 탈출기는 이제 시작이었고 남편이라는 울타리가 장애물이라고 느꼈던 순간들이 있었을 것이고 그 일들을 곱씹고 있지는 않을까 하는 지레짐작이 피어올랐다. 기쁨과 후회라는 이질적인 감정이 동시에 일어나 섞이지 못하고 그녀의 속에서 삐져나와 공기를 무겁게 만듬을 느꼈다. 겨우 꿈을 이룬 듯했지만 녹록지 않은 현실에 눌려 꿈이 터져나가고 있는 와중에도 그 지옥을 벗어난 스스로의 선택을 격려하는 아내의 미소.  미소가 본디 역할대로 이제는 전력으로 기쁨만 담을 수 있게 만들고 싶다고 그녀의 장애물이 아니라 정말 지켜주는 울타리가 되고 싶다고 나는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그제야 뒤틀린 우리의 시간이 제자리를 찾았고 그 사이 내 비장한 감정이 새어 나온 표정을 발견한 아내가 여름 해로부터 고개를 돌려 말했다.


"여보. 갑자기 슬퍼?"

"아냐. 내가 왜 슬퍼."

"방금 엄청 슬퍼 보였어. 내가 행복해하는 모습 보고 어째 슬퍼하니?"


 아내의 말투에 장난기가 가득 담겨있었다. 얼토당토않은 시비로 날 놀릴 생각에 신난 눈빛까지 장전을 한 체였다.


"나랑 결혼한 거 후회한 적 있어?"


 내 질문에 아내는 고개를 밖으로 돌리고선 잠자코 아무 대답이 없었다. 뒷짐 진 손만 아까보다 더 까딱거리며 흥을 올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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