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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므므강 Jul 19. 2023

#0 태양은 쓰리다.

태양은 쓰리다.

 2023년은 두 번의 차 사고와 함께 시작했다.  사고 모두 혼자 기둥을 박은 어처구니없는 사고였다. 새로 뽑은 지 3개월 만에 허탈하게 상한 차를 보며 올해가 어쩌려고 이지경인지 한숨을 품으며  해를 맞이했다. 그리고 그 의문은 금방 풀렸다.


 가게를 연지 3개월쯤이 지났을 무렵, 우리 부부는 펑펑 울었다. 7월 들어 열흘 내내 큰 기복 없이 좋은 매출을 유지했다. 하루 찔금 오르면 다음 날 맥없이 고꾸라지던 모습과는 달랐다. 이제 정말 서서히 자리 잡아 가는가 싶었던 날들, 나도 아내도 버텨볼 만한 힘이 생기는 듯했다. 그게 불과 이틀 전이었는데 우리 부부는 오늘 크게 싸우고 난 뒤 그 자리에서 끌어안고 주저앉아 펑펑 울었다. 새로운 한 주의 시작과 동시에 매출은 고꾸라지기 시작했다. 그 어떤 날보다 초라한 매출을 찍었다. 몇 시간 동안 단 한 명의 손님도 단 한 건의 배달도 없었다. 결국 오픈이래 가장 낮은 매출을 기록했고 할 일 없이 야구경기나 보고 있는 아르바이트생에 관해 얘기를 나누다 결국 우리 부부는 크게 싸우고 말았다.


 힘들 땐 서로에게 기댈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마찰이 없진 않았지만 누구보다 서로가 힘들다는 점을 알았고 싸움 따위에 일말의 기운도 뺏기고 싶지 않았기에 큰 다툼은 없었다. 그러나 이제 한숨 돌릴 수 있지 않을까 라는 기대감과 희망을 맛본 후에 빠진 절망은 아득히도 깊고 깊었다. 결국 정신줄을 놓은 체 피아를 망론하고 쏘아대는 총질이 서로를 향하고 말았다. 서로에게 바싹 의지해 버티기 힘든 상황에서 눌러왔던 고름이 곪아터지듯 원통함이 폭발했다. 쥐젖만 하지만 겨우 보였던 가능성의 정체가 신기루였다는 걸 깨닫는 순간 우린 무너져버렸다. 누구보다 예민해지고 서럽지만 꿋꿋이 버텼던 아내는 나의 짜증과 잡아먹을 듯이 소리쳐대는 호통에 3개월 간의 고통을 토해내 듯 숨을 헐떡이며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오늘의 절망이 더욱 크게 느껴진 이유는 그간 고생한 대가로 적자라는 성적표를 받아 든 날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적자 난 금액이 적지도 않았다. 아내는 큰 걸 바라지 않았다. 큰돈을 바라지도 않았고 큰 야욕이 있지도 않았다. 그저 밤에 자고 낮에 일하는 삶을 바라고 평생 동안 동대문에서 밤낮이 바뀐 체 일하며 모아 온 돈을 받쳤을 뿐이었다. 일확천금을 노린 것도 아니었다. 이토록 몸뚱이 내던져 일하면서도 남는 게 있기를 크게 바라지도 않았다. 그저 이 생활을 유지만 해도 좋을 것 같다고 했었다. 하지만 가혹한 현실은 그마저도 욕심이라고 말하는 듯했다. 아내는 자신이 뭘 그렇게 잘못했냐고 물었다. 주저앉아 목놓아 소리치며 우는 아내의 모습에 나도 무너지고 말았다. 바닥에 같이 주저앉은 체 그녀를 품에 가두고 나도 흐느껴 울었다.


 아내가 행복하길 바랐다. 남들 다 누리고 사는 당연함을 부러워하고 행복이라고 생각하는 그녀의 가엾은 꿈을 이뤄주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아내가 흔들리고 있었기에 나라도 버텼어야 했다. 본업과 가게의 스트레스가 과중된 체 짓눌리고 있는 와중에도 난 태도와 언행에 희망을 섞어야만 했다. 최소한 나로 인해 그녀가 조금이라도 부담을 느끼는 일이 생겨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우리의 선택이 잘못됐을지 언정 이토록 가혹한 벌을 받아야 할 정도로 큰 죄를 지은 걸까라는 의문 속에서도 난 끝까지 아내를 위해 이겨내야 했다. 하지만 이 상태로 몇 달 더 이어진다면 감당하기 힘들 정도의 재정상태가 된다는 점, 그래서 겨우 하나 가지고 있는 대출 잔뜩 얹은 집마저 날릴 상황이 설마가 아닌 코앞에 닥친 현실이라는 점은 나에게 결정타를 날리고 말았다.


 어제와 오늘 나는 그녀에게 악을 쓰며 목이 쉴 정도로 소리를 질러댔다. 그것은 아내에게 내가 날린 결정타였다. 아내의 예민함과 짜증 섞인 반응은 나에게 보낸 구조신호였다는 걸 깨달았어야 했다. 살려달라고 소리치며 애원하던 아내를 내가 걷어찬 것이나 다름없었다. 내 앞에 무너진 체 정신 못 차리고 있는 그녀의 모습은 나 자신을 더욱더 수렁에 잠기게 만들었다. 몇 달째 서서히 침몰해 가고만 있는 우리의 삶이 앞으로 나아질 기미가 있긴 할까.


 날 끌어안고 컥컥 대며 울다 잠든 그녀를 제쳐두고 거실로 나와 새벽 희미한 해가 올라 선명한 아침해가 될 때까지 잠 한숨 없이 날밤을 보냈다. 태양이 뿜는 그 밝은 빛 속으로 잠식되 가는 어둠이 숨을 곳을 찾아 내 품으로 들어왔다. 내 안에 자리 잡은 어둠은 아침이 거북했고 그 불편한 감정은 내게도 고스란히 전해져 그날따라 눈부시게 밝은 햇빛이 따갑고 쓰렸다.



 

 출근 준비를 위해 조용히 문을 열고 들어간 안방에는 깊이 잠든 아내가 있었다. 그녀가 눈을 뜨면 시작되는 새 하루에 다시 미소 지을 순간이 올 수 있을까. 어제 나의 행동에 대한 사과와 더 나아질 길은 보이지 않지만 그렇기에 예상할 수 있는 오늘의 절망에 유난 떨지 말자는 메시지를 남기고 출근길에 나섰다. 이제 장마기간이라 절망은 오늘 하루만으로 끝나진 않을 듯싶다. 그렇기에 더욱더 이 악물고 몰아치는 폭풍우에 떠밀려가지 않게 서로를 꽉 붙잡고 버텨야만 한다. 자영업자는 매번 희망이 아니라 다가올 절망을 바라본 체 살고 있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힘들어하지 말고 잘 버티세요. 내일 더 힘들 거니까.'


우리는 더 큰 절망에 빠지지 않으려 희망을 버리기로 했다. 지나간 희망은 절망에 밀려 떨어질 구멍을 더 깊게 파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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