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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므므강 Jul 19. 2023

#2 태몽에 나온 해

태몽에 나온 해

 아버지의 품에 해가 들어와 안기는 꿈이 내 태몽이었다. 용 꿈보다 좋다는 해 꿈이라며 어머니로부터 넌 잘될 거다라는 말을 수도 없이 듣고 자랐다. 그래서 나도 그런가 보다 하고 살아왔는데 이제는 그런 게 아닌가 보다 하게 됐다. 어머니가 꿈에 대한 믿음이 좀 있다. 좋은 일이 생기면 얼마 전에 꾼 비단 꿈 얘기를 하거나 나쁜 일이 생기면  바닥에 뱀이 꿈틀대는 꿈을 꿨다고 말하곤 했다. 그래서인지 미신 같은 거 쓸데없다며 전혀 믿지 않았지만 꿈 해몽만큼은 꼭 찾아봤던 것 같다.


 공무원 시험에 붙기 전에 꿨던 물귀신 꿈 이후로 어머니를 따라 꿈에 대한 믿음이 생긴 듯했다. 가게 가맹계약 전날에 변기에 앉아 온몸에 똥칠하는 꿈을 꿨다. 사업에 관한 꿈 중 최고 중에 최고 좋다는 꿈이었다. 가게 오픈 전 날에는 망망대해 한가운데서 돌고래가 떼로 나에게 안기는 꿈을 꿨다. 금전 꿈 중에서 정말 이보다 좋을 수는 없다는 꿈이었다. 여태 꿨던 꿈들에 대해서 이전에 알고 있다거나 어떤 꿈이 뭐에 관련된 것이라는 정보 같은 것들을 전혀 몰랐다. 그저 똥, 돼지, 용 이런 꿈들이 좋다 이 정도가 전부였기에 뜬금없는 돌고래의 등장은 꿈에 대한 믿음과 신념을 갖게 해주었다. 그리고 사업성공에 대한 설렌 마음과 희망찬 미래를 그려보게 만들었다.


 그런데 지금 상황이 어떠한가...... 내가 꿈에 대한 믿음이 산산이 무너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 않은가. 그래서 내 태몽에 대한 믿음도 사그라들 수밖에 없던 것이다. 내 꼴을 좀 보라. 본업도 벅찬 와중에 퇴근하면 쉬지도 못하고 가게로 나가야 하는 꼴을 보라. 그렇다고 그토록 몸을 갈아 넣은들 남는 게 무엇인지, 월급 받아서 가게 적자나 메꿔야 하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만 몇 개월째 인지 보라. 주택담보대출 이자만도 벅찼는데 가게 차린다고 추가로 받은 대출 이자까지 감당해야 하는 꼬락서니다. 똥이며 돌고래이며 뭔 의미가 있겠는가.




 그러던 어느 날, 너무도 머릿속에 또렷이 새겨진 또 하나의 꿈을 꿨다. 제주도 비스무리하게 생긴 어떤 섬마을에 갑자기 물이 불어나기 시작하더니 마을이 잠기기 시작했다. 나는 서둘러 높은 곳으로 뛰어 올라갔고 모든 마을이 에 잠긴 모습을 그곳에서 내려다보고 있는 꿈이었다.  꿈 따위 아무 의미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날도 눈 뜨자마자 인터넷을 뒤져 해몽을 알아봤었다.


'자기에게 밀어닥치는 홍수를 피해 도망가는 꿈'


이라고 적힌 제목이 가장 나의 꿈과 맞아떨어져 보였다. 해몽은 이랬다.


'어떤 일에 있어서 좋은 기회가 찾아오나 모르고 지나쳐 놓칠 가능성이 큼.'


대체 이 상황에 무슨 좋은 기회가 올 수 있을까라며 곰곰이 생각해 보다 이내 손에 든 폰을 내려놓고 잠이나 이어 붙이기로 했다. 꿈같은 거 믿어봤자 아무짝에도 쓸모없을 테니까. 하지만 그날 그 꿈을 그렇게 가벼이 여겨서는 안 됐다. 물이 밀려들고 그것을 피하는 꿈. 그 꿈의 장면을 다시 곱씹고 헤아렸어야 했다.


 홍수꿈을  날은 장마가 시작된 날이었다. 폭우가 쏟아져 가게를 찾아오는 이가 아무도 없었다. 물론 폭우가 아니어도 없었겠지만 그날은 문을 열고 몇 시간째 개시조차 못 할 정도로 심각하게 고요했다. 그때 정적을 깨고 아파트 방재실에서 심상치 않은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상가 주차장에 차 대놓으셨죠? 지금 천장 배수관이 터졌는데 그 밑에 차가 있어서 다 맞고 있거든요! 얼른 빼주셔야 할 것 같아요."


 아차 싶었다. 우리 아파트는 지하 2층이 상가 주차장이고 지하 3층부터 입주민 주차장인데 내 차는 입주민 등록이 돼있으므로 상가 주차장에 주차를 하면 안 된다. 입주민 차량이 이를 위반할 시 상가 주차장 비용이 청구되며 5회 누적 시 입주민 등록까지 배제가 된다. 보통 배달 때문에 잠깐씩 이용만 하고 항상 입주민 주차장을 이용했었다. 아파트 주차장에 자리가 부족한 것도 아니고 상가 주차장에 대놓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제 마지막 배달을 가려다가 홀 손님이 잠깐 몰아치는 바람에 배달은 라이더를 보내고 아내를 도와 홀에 남아있었다. 그게 마지막 배달주문이었고 그 상태로 까먹고 입주민 주차장으로 차를 이동시키지 않은 채 가게 마감 후 집으로 올라왔던 것이다. 처음으로 상가 주차장에 밤새 차를 세워둔 날 장마가 시작했고 하필 그 자리의 천장 배수관이 터져 버렸다.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 때문에 항상 그래왔듯 지하주차장에 물이 새는 모양이겠거니 하고 내려간 나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온갖 음식찌꺼기를 머금은 오물들이 내 차 위로 퍽퍽 떨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차는 오물로 전체가 뒤범벅이 된 끔찍한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정확히 내 차가 주차된 자리 바로 위에서 터진 배수관에서 시뻘건 오물들이 떨어지고 있었다. 차의 앞유리는 고춧가루로 보이는 시뻘건 가루와 온통 찌꺼기들로 뒤덮여 있었다. 놀라 자빠질 틈도 없이 얼른 차를 빼야 했다. 이 상태로는 세차장을 이용하기도 힘들어 보였다. 그래도 밖에서는 폭우가 쏟아지는 중이라 천천히 가다 보면 살짝씩 씻겨 내려가 세차장 이용은 될까 싶었는데 이게 무슨 일인지 지하주차장에서 빠져나온 내 차에 빗방울이 한 방울도 떨어지지 않았다. 불과 그 5분 사이에 폭우가 싹 그친 것이다. 참혹한 모습을 발견했을 때도 꾹 참았던 욕이란 욕을 한참 동안 쏟아내 버렸다. 비까지 그친 건 선 넘은 거 아니냐며. 이 대책 없는 상황이 이 정도로 악화일로이기만 할 수가 있냐고. 상가 주차장을 이용할 이유가 없었다. 자리가 넉넉한 입주민 주차장을 이용하면 됐다. 그저 깜빡하고 하룻밤 워두었을 뿐이었다. 그냥 자리가 비었길래 거기에 댔을 뿐이었고 그리고 장마가 시작했을 뿐이었다. 애석하게도 잔뜩 구름 낀 마른하늘 아래 찌꺼기로 물든 차 안에서 망연자실하고 있던 순간, 오늘 아침에 꾼 꿈이 떠올랐다.


 물난리를 피하는 꿈...... 예지몽이었을까. 물난리를 피하라고 꿈에서 알려줬지만 꿈의 해몽대로 기회를 놓친 모양이다.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은 내 차. 아내는 그 차를 팔아야 하는 거 아니냐고 심각하게 말했다. 아직 뽑은 지 1년도 안된 차. 어떤 흑심을 품은 운명이 날 괴롭히려고 한 것인지 몰라도 분명 예삿일이 아니라 생각이 들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복권을 구매했다. 뜬금없어 보이지만 그때 떠오르는 생각은 딱 하나였다. 이건 다 잘되려고 벌어지는 일이다. 그거 아니고서야 설명이 되지 않는 최악의 상황. 그래서 얼마나 잘될지 두 눈 부릅뜨고 확인해 보겠다는 일념으로 복권을 구매했다. 그렇게라도 생각을 몰아가지 않으면 정말 내 속에서 스트레스가 폭발해 버릴 것만 같았다. 복권방에서 나오며 한숨을 크게 들이켜보았다. 가만히 심호흡을 하다 보니 마음이 진정되며 한 가지 생각이 들었다. 꿈과 맞아떨어져 보이는 상황에 피어난 은근한 미소와 함께.


'꿈같은 거 다시 믿어 볼 만한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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