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진첩에 노을과 야경 사진이 은근히 많다.글과 어울리는 사진을 찾다 보니 내가 다녔던 여행지와 그냥 걸으면서 찍었던 기억에도 없던 사진들을 여럿 발견했다. 산타모니카 해변, 핼리팩스의 공원, 바르셀로나 야경 등등.
노을과 야경. 자연광과 조명광 할 것 없이 좋아하는 이유가 심리학적 관점으로 본다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장(場)의 이론’에 근거를 둔 '지각심리학'에서부터 지그문트 프로이트까지...... 뭐 다음에 자세히알아보기로.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다. 여행지에서 보고 듣고 먹을 것에 큰 감흥이 없었다. 심금을 울리는 넓은 도시의 야경과 찬란함을 넘어 몽환적인 모습의 노을뿐이 내게 와닿았다. 돌아다니는 것을 선호하지 않는다. 가만히 앉아 풍경을 보고 온도를 느끼고 소리와 향에 젖는 걸 좋아한다. 어쩌면 그런 성향 때문에 이렇게 재능도 없는 글쓰기에 매달리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여행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그 와중에 좋아하는 것만 찍다 보니 노을과 야경사진이 많아졌다.
빛을 지각할 수 있을 때 감정이 동요한다. 벌건 대낮에 아무리 빛을 봐도 아무 느낌 없다. 새빨간 하늘이 됐을 때나 어둠 속에서 간간히 빛나는 조명들을 봤을 때 내 중추신경이 민감하게 반응을 한다. 이런 이유로 저물기 직전 햇빛과 어두운 밤에 발하는 밤빛을 모으는 게 아닐까 싶다. 이 정도면 굳이 프로이트 선생님까지 갈 필요 없이 설명이 되지 않을까. 더 간단히 말하면 단순히 노을과 야경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노을 사진이 이렇게 많았구나.'
라는 생각을 하며 오늘도 김치볶음밥을 만들고 있었다. 나의 김치볶음밥에는 계란과 김가루가 필수재료로 들어간다. 뚝딱 만든 밥과 요청사항에 있던 군만두 2개까지 밀폐용기에 옮겨 담은 뒤 옷방에 아무렇게나 내팽개쳐져 있던 반바지로 갈아입었다. 모자를 대충 푹 눌러쓰고 에어컨과 거실불을 다 켜놓은 채로 김치볶음밥을 들고 엘리베이터를 탔다. 아무도 없길 바랐지만 열린 문 너머로 한 구석에서 모자를 꾹 눌러쓰고 고개를 푹 숙인 채 서있던 동지를 만났다. 서로 아무도 타지 않길 바랐던 달갑지 않은 이웃 간의 동승이었다. 엘리베이터가 목적지에 도착하고 나는 곧장 요리를 주문하신 분께 달려갔다. 역시나 아무도 없는 가게에서 반겨주는 아내였다.
"아니 벌써 갈 거니? 커피 한 잔 타줄게. 잠깐 있어봐."
"내 몰골이 이런데 얼른 가야지."
아내는 잠깐이라도 내가 머물다 갔으면 싶었나 보다. 행여나 내가 훌쩍 가버릴까 얼른 커피를 내리는 아내였다.
"헙! 얼굴 어떡해! 어쩌면 좋아...... 얼른 올라가렴."
혼자 가게를 지키고 있는 아내의 모습이 안쓰러워 좀 있어줄까 싶었던 것도 잠시 사람 얼굴을 앞에 두고 두 손 모아 입을 틀어막으며 경악하는 아내의 모습에 뭉클함이 사라져 버렸다.아내가 타준 커피를 들고 곧장 집으로 올라왔다. 오랜만에 집에서 혼자 보낼 시간이 났다. 글 좀 써볼 수 있을까 싶던 찰나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터부룩한 수염을 보기 싫어할 땐 언제고 또 자꾸 심심하다며 내려오라고 보챘다. 이 시간은 심심하면 안 될 시간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