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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므므강 Aug 09. 2023

#11 드디어

드디어 큰 적자를 면했다.

7월 말 월세와 8월 초 발주 금액과 인건비까지 모두 계산해 보니 드디어 손해의 늪에서 탈출한 걸 확인했다. 마이너스가 아니라도 딱히 손에 가져간 것은 없다. 바로 대출 이자를 갚고 나니 환호성이 한숨으로 바뀌긴 했지만 절망만 부르짖던 우리에게 드디어 희망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한 건 사실이다. 물론 언제나 이 동네는 희망을 봤다 싶으면 몇 배나 큰 절망을 되물어주곤 하지만 이번만큼은 좀 다른 느낌이다. 일매출 변동의 낙폭이 줄었기 때문이다. 본사 차원의 원조와 개선된 부분들, 신메뉴까지 복합적인 이유가 있겠지만 이제 와서 이유가 무슨 대수랴. 겨우 잡고 버틸 푸석한 지푸라기라도 하나 생긴 게 중요했다. 그렇다고 크게 벅차거나 그런 감정도 없다. 아내도 평균 매출이 십 단위가 바뀌었지만 큰 감흥이 없다고 했다. 길고 긴 절망에 감정기능이 망가졌는지 혹은 절망이 감각의 역치를 높여놨는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아내도 나도 더 이상 좌절이나 기쁨이나 어떤 반응도 크게 보이진 않았다. 가게 매출은 그냥 녹아든 일상에 불과해졌다.


"유유자적하니 좋으니?"


카페가 한가할 때 자리 잡고 앉아 글을 쓰고 있으면 아내는 인생 즐기며 산다고 부러워한다. 글을 쓰고 있으면 유유자적하며 신선놀음하고 있냐고 한다. 내면에서 벌어지는 창작의 전쟁통을 몰라서 하는 소리다. 하나의 생각이 다른 생각에 엎어지고 다시 젖혀지고 떠오르는 글귀를 적었다 지우고 지우고 또 지우고. 글을 쓰면 이상하게 지우는 게 더 많은 느낌이다. 그런 전쟁의 참상 같은 고통도 모르고 신선놀음이라니.




"여보, 오늘도 밤일은 해야지?"


내가 해야 할 밤일은 하나다. 하루의 고된 일과를 따뜻한 물로 흘려보내고 뽀송뽀송해진 몸으로 침대 위에 나란히 눕는다. 무드등을 손으로 터치해 빛으로 분위기를 잡는다. 그러면 어김없이 불쑥 다가오는 아내의 등. 아내는 자기 전에 반드시 내게 등을 쓰다듬어달라고 한다. 그렇게 내 일과는 침대 위에서도 이어진다. 좀 소홀히 등을 쓰다듬으면 정성을 다하라고 핀잔한다. 등을 자기 전에 꼭 한 번씩 쓰다듬어줘야 잠이 온다고 한다. 등을 쓰다듬다 보면 간지러운 부분도 일일이 말해주면 그에 따라 열심히 긁어줘야 한다.


"시원해?"

"응, 내 손톱이 시원하네."


아내는 자기 등을 긁는 사람한테 꼭 시원하냐고 묻는다. 내가 어떻게 알아, 내 등이 아닌데? 하고 물으면 부부는 일심동체 아니냐고 그러니 같이 시원한 게 당연하다고 버럭 했다. 등이 가려운 부분을 이리저리 설명하다 내가 못 찾으면 도대체 왜 못 찾냐고 뭐라 한다. 다시 말하지만 아내의 등을 긁어주면 난 시원하지 않고 아내의 등이 가려운 부분이 어딘지는 나는 모른다. 그래도 매일 하다 보니 아내의 가려운 등이 어딘지 알아서 찾아내는 능력이 길러지고 있어 뿌듯(?)하다.



아직은 온전히 안도하긴 이르다. 잠깐 숨 쉴 틈이 생겼다고 생각한다. 조금씩 글이라도 쓰고 책 읽을 여유가 생긴 것만 봐도 불과 얼마 전에 비해 많이 안정된 것 같다. 아직 쓰고 싶은 이야기들이 넘쳐난다. 이렇게 짧고 간단하게 스쳐 지나가듯 쓰는 글이 아니라 제대로 된 서사를 담은 글 혹은 잘 정돈된 글을 공들여 쓰고 싶다.  치열했던 가게 운영에 미세한 여유가 생긴 것처럼 희망과 절망의 이야기에도 쉼표를 찍고 재정비 후에 글을 이어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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