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철 손님들이 떠난 빈자리를 폭염이 대신했다. 펄펄 끓는 열기에 거리를 돌아다니는 사람이 사라졌다. 음악이 꺼지고 가만히 앉으면 매장 가득 공기 떠다니는 소리마저 들릴 정도로 텅 빈 가게로 오늘도 양손 한가득 수박을 들고 내려간다. 주말에는 배달이 좀 있어 수박을 한가득 준비했는데 휴가철이라 그런지 오늘은 배달도 하나 없단다. 이제는 그런 암울한 소식에도 그러려니 하고 말 경지에 이르렀다. '그렇구나' 이 한마디로 오늘의 매출 보고를 넘겨 듣고 내가 마실 아메리카노 한 잔을 뽑았다.
"그럼. 파이팅!"
한 시간 정도 머물다 야간 출근을 위해 집으로 올라왔다. 아내는 같이 놀아주기라도 했으면 바라는 눈빛을 쏘려다 만다. 요즘 폭염 밑에서 일하느라 퇴근하면 항상 녹초가 되어있는 내 모습을 알고 배려해 주는 아내였다. 30분 정도 쉬었을까 아내에게서 긴급콜이 걸려왔다. 배달이 한꺼번에 몰려 들어이거 한 번만 도와달라는 전화였다. 악당들이 우르르 몰려와 도움을 요청하는 시민을 구하러 슈퍼맨은 옷을 갈아입는다. 옷장으로 달려가 추레한 옷들을 급하게 벗어던지고 외출복으로 순식간에 갈아입고 현관문을 박차고 나간다. 한꺼번에 몰려든 배달주문을 힘을 합쳐 물리치고 나니 둘 다 진이 빠져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전력을 다해 아무 말 없이 쉬던 중 아내가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꺄악! 여보 내 다리에 다리다리다리!"
정체불명의 손톱만 한 초록색 곤충이 아내의 다리에 들러붙었다. 아내는 벌레를 정말 무서워한다. 매일 밤마다 잔혹한 범죄나 괴담을 다루는 예능 프로그램을 아무렇지 않게 즐겨 보면서 손톱의 때보다도 작은 벌레만 보면 두려움에 벌벌 떨며 슈퍼맨 남편을 찾는다. 아무리 방역을 해도 한 마리씩 문이 열릴 때마다 밖에서 들어오는 곤충을 박멸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그 초록악당도 당당하게 열린 문으로 들어온 손님 중 하나로 보였다.
아내의 비명에 남편은 아주 천천히 반응을 보인다. 남자친구라면 빛보다 빨리 움직이겠지만 그녀의 앞에 앉아있는 건 남편이었다. 엉덩이 떼는 게 참 쉽지 않은 남편이라는 녀석은 슬금슬금 기어 온다.
"어디? 아무것도 없는데?"
"허벅지가 간지러워서 뭔가 하고 봤는데 초록색 벌레 같은 게 붙어 있었어! 허헝......"
내가 봤을 때는 아무것도 없었다. 아내는 방금까지 자기가 앉아있던 자리에 내가 앉아 사라진 그 녀석을 유인하여 물리라고 했다. 꼭 물려야 하는 건가. 아내는 일단 어떤 벌레든 붙어있기만 하면 무조건 물었다고 표현을 했다. 방금도 그 초록색이 다리에 붙어 자기를 물려고 했다며 몇 번이나 소리 높여 설명했다. 출근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난 얼른 아내를 진정시키고 올라가야 했다.
"여보, 잘 봐. 손님들이랑 친해지는 게 여보의 주특기잖아?"
"웅."
"그럼 그 초록손님이 다시 나타나면 일단 얘기를 잘해서 친해져 봐 그리고."
"...... 응. 그리고?"
이미 아내는 또 헛소리구나 하는 표정을 나에게 쏘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에 더욱 과장된 동작과 어투로 말을 이어갔다.
"친해졌으면 얘기가 잘 통할 거야. 그럼 이렇게 얘기하렴. 매장은 음료 주문시키셔야 이용 가능하세요~ 아니면 매장 이용 힘듭니다~라고. 그럼 나가줄 거야."
의외로 아내는 내 말에 한바탕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녀와 결혼하기 잘했다는 생각에 눈물이. 어쨌든 약 올리기(?)는 실패였다. 아내는 한 번 웃긴 건 꼭 다시 시키곤 한다. 거듭되는 간곡한 앙코르 요청에 아까와 똑같은 몸짓을 섞어 똑같은 대사를 뱉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