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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나 Sep 15. 2020

위로라는 탈을 쓴 폭력

생각

위로가 필요한 날이 있어요


가끔 지독히도 위로받고 싶을 때가 있다. 막상 가장 아픈 순간 안에 있을 때는 그것을 견뎌내기에도 바쁘고 너무나 무력해서 누군가의 위로가 생각날 틈이 없다. 대신에 그 아픔, 또는 고통, 어려움, 고민 등에서 어느 정도 빠져나왔을 때, 이겨내어 나온 것이 아니고 그냥 어쩔 수 없는 받아들임일 때, 타인에게 내 이야기를 털어놓고 싶어진다. 혼자서 견뎌오다가 긴 시간이 지나 조금 지쳐있고 외롭고 약해진 그 순간에 말이다.


하지만 이 순간조차도 말을 삼킬 때가 많다. 사소하고 자잘한 힘듦을 토로하는 단계가 아닌, 절실하게 누군가의 따뜻한 눈길을 필요로 해서 힘겹게 말을 꺼내보는 것이므로. 더더욱 상대방의 반응이 두렵다. 이미 너덜너덜해진 내 안이 연약한 모습으로 움츠려 있기에, 그만큼 상처 또한 쉽게 받는 상태이기도 하니까. 그렇게 조심스럽게 꺼낸 말 뒤에 돌아오는 반응이 혹시나 내가 가장 듣고 싶지 않은 말일까봐, 너무 무섭기도 하다.


아, 나는 "다들 그래. ㅇㅇ씨만 그런 거 아냐. 다들 힘들지 뭐. 쉽게 사는 인생이 어딨겠어."와 같은 말들이 너무, 너무 싫다. 그 문장은 오만함과 무책임함으로 뒤덮여있다. 나는 지금 내 얘기를 하고 있는데, 왜 다른 사람의 상황을 끌어다가 나의 상황을 아무렇지 않은 것인양 쳐버리는 것일까. 그저 나는 이렇다고 얘기했을 뿐인데. 모두가 힘들면 내 힘듦이 아무렇지 않은 게 되는 걸까. 서로서로 힘드니까 오히려 더욱 서로에게 버팀이 될 수는 없는걸까. 다들 힘들어도 어느 누군가에게는 그 순간이 정말 견딜 수 없을 정도로 크게 다가올 수도 있는 게 아닐까. 이런 말이 하나의 위로의 언어로서 사용되고 있다는 점이 안타깝다. 그 사람은 대체 어떤 감정을 가지고 저런 무책임한 말을, 아파하는 상대에게 줘버리는 것일까, 궁금하기도 하다.


그저, "아, 힘들었구나. 요즘 많이 힘들었구나."라는 말 한마디면 모든게 스르르 풀려버릴 것 같다. 가장 간단하면서도 가장 상대방의 아픔에 온전히 집중하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저런 위로의 말을 건네는 사람은 거의 없다. 내 아픔을 얘기하는데 갑자기 남들의 고민 혹은 자기도 똑같이 힘들고 어렵다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다수다. 힘들어하는 상대방에게 나또한 힘들어, 라고 말하는 것. 위로의 탈을 쓴 기만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사회가 어떻고, 다른 사람들은 어떻고, 이런 외부의 얘기를 다 집어치우고. 그냥 지금 내 앞에서 힘들어하고 있는 사람에게만 건넬 수 있는 따뜻한 진심 하나. 그래서 누군가가 힘들어할 때면 나도 저런 말을 건네고 싶어진다. 나도 힘들어, 남들 다 힘들어가 아닌 너 많이 힘들었구나, 같은.


물론 평소에 매일 힘든 얘기만 달고 사는 경우면 상황이 다를 수도 있을 것이다. 정말 너도나도 겪는 사소하고 무수한 일상의 고민들, 그 사람이 정말 진통하며 겪어내고 있는 아픔이 아닌 스쳐지나가는 어려움들이라면, 그리고 그걸 매일 입밖으로 꺼내는 사람이라면 나조차도 전자의 반응을 해줄지도 모른다. 또는 오히려 그런 말이 필요한 상황들도 있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그 사람이 평소에 자기 얘기를 정말 안하는 사람인데, 겨우 조심스럽게 입으로 꺼낸 얘기가 그것이라면.


그래서 아플수록 더더욱 입을 다물게 된다. 더 아프지 않기 위하여. 평소에도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내 속 얘기는 잘 하지 않는 편인데, 누군가에게는 폭력적일 위로의 방식 때문에 더 다칠까봐. 혹시나 믿었던 그 사람에게 실망해버릴까봐. 그러니, 상대방을 봐 가면서.


그래서 더더욱 요가를 한다. 요가를 하면 이 모든 고민이 아무것도 아닌 게 되어버린다. 혹은 어느 순간 공기 중으로 증발해버려서 사라져있다. 깔끔하다. 마음도, 몸도, 정신도. 


그리고 수련을 하고 집에 오는 길에는 늘,


인생, 아무것도 아니야. 그래그래 아무것도 아니야.


내게 최고의 위로는 요가가 아닐까 싶다.




힘들어하던 이와 자전거를 탄 날, 보다 가벼운 마음으로 나눈 이야기와 샐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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