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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간 개복치 Mar 24. 2017

소심 히어로 찰스 다윈

사람 만나길 몹시 꺼리던 민감한 은둔자


“사람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일이 아무리 별것 아닌 일이라 해도 아버지에겐 힘들었다. 1871년에는 당신 딸의 결혼식을 보러 작은 마을교회에 갔는데 그 짧은 예식을 보는 일조차 몹시 피곤해했다.”


찰스 다윈의 아들 프랜시스 다윈이 남긴 말이다. 찰스 다윈이 누군가. 해군측량선을 타고 남아메리카와 남태평양을 탐사했으며, 진화론으로 세상을 뒤집어 놓은 과학자 아닌가. 하지만 패기 돋는 약력과 달리 찰스 다윈은 하루하루를 힘겹게 보낸 희대의 예민 보스였다.


사람을 만나면 심하게 긴장했다. 얼마나 긴장했는지 가슴이 떨리고, 소화가 안 되며, 두드러기까지 났다고 한다. 늘 아프다는 이유로 사교활동을 피했고, 중년 이후엔 대부분 일과를 어두컴컴한 자기 방에서 보냈다. 책상, 작업실, 작은 샤워실까지 방 안에 두고 나갈 필요를 최소화했다.

인생 역정 역시 개복치 수준. 의대에 갔으나 수술 2번 참관 후 끔직한 장면에 충격 받아 의사 포기. 목사가 되고자 신학대 졸업했지만 사교활동의 번잡함에 포기. 대신 혼자 식물 관찰하는데서 흥미를 느꼈고 결국 생물학자 테크트리를 탄다.


그러던 어느 날, 비글호라는 해양측량성이 출항한다는 소식을 듣고 떨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배에 오르는데. 이후는 여러분도 알 것이다. 『종의 기원』이 탄생했다.


“비록 몸은 아플지라도, 물론 이로 인해 몇 년의 내 삶이 폐기되었지만, 그 덕분에 나는 세상과 쾌락에 정신을 빼앗기지 않을 수 있었다.” 세상과 부대끼는 걸 피하고, 그 시간에 자기만의 예민함으로 인류의 기원을 밝혀낸 찰스 다윈이 남긴 말이다.
 
이정섭 munchi@univ.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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