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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간 개복치 Aug 04. 2017

위대한 개복치의 삶

생존 확률 0.000004%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개복치는 사유를 시작한다

과학자가 꿈인 초등학생이 아인슈타인을 꿈꾸듯, 인기를 오래도록 누리고픈 아이돌 초년생이 이효리를 바라듯 난 항상 인생의 롤모델로 개복치를 생각해왔다. 나 자신이 미약하게 느껴질 때면 개복치 같은 삶을 그리며 힘을 차려왔다. 이 책을 펼친 독자 중엔 아무래도 나처럼 미약한 존재들이 많을 터. 그래서 준비했다. ‘알아두면 도움 될지 몰라! 개복치 상식!’


개복치 실물 (출처 U.S. National Oceanic and Atmospheric Administration)

1. 거북이와의 충돌을 예감하고 겁이 나서 죽음

2. 일광욕하다 새한테 쪼여 상처 곪아 죽음 

3. 바닷속 공기 방울이 눈에 들어가 스트레스로 죽음

- 인터넷에 알려진 개복치 사망 이유 중 


〈살아남아라! 개복치!〉라는 게임이 유행한 적이 있다. 오만 가지 이유로 사망해대는 개복치를 살려내는 스마트폰 게임인데, 게임 속 개복치의 예민한 모습이 소심이들에게 공감을 사며 크게 유행했다. 작은 자극에 개복치가 사망하듯, 소심이들은 마음의 스크래치를 쉽게 입는다는 이야기겠다. 난 게임이 나오기 직전 우연히 개복치에 대한 에세이를 잡지에 실었다가, 친구들에게서 “개복치 게임 나온 거 알고 있어? 완전 너야!”란 메시지를 수도 없이 받았다. “응. 알고 있어.” “알고 있다고” “그만 좀 안다고” 밀려드는 똑같은 카톡 메시지에 스트레스 받아 죽음.


개복치에 대해 전혀 모르는 분들을 위해 설명하면, 개복치는 복어목의 물고기다. 바다에서 살며 덩치는 최대 3m까지 커진다. 몸은 둥그렇고 넓적하며, 눈은 크며 입은 조그맣다. 지느러미는 몸에 비해 무척 작은데, 베개 쿠션 가장자리에 달린 레이스를 연상시킨다. 개복치는 가끔 옆으로 벌렁 누워 물 표면에 떠다니기도 하며 그 모습은 마치,


“커다란 얼굴 같네요.” 그렇다. 하얀 몸에 눈만 까맣게 찍혀 있어 큰 얼굴을 연상시킨다. 서양 사람들이 붙인 별명이 ‘얼굴 물고기(head fish)'다. 특이한 외모 탓에 과거 일본에선 붙잡은 개복치를 임산부에게 보여주면, 개복치를 닮은(!) 아이를 낳는다는 전승이 있었다고 한다. 


이것이 개복치 새끼 (출처 the website of the Australian Museum / CC BY-SA)


어릴 때의 개복치는 동네 밥이다. 얼마나 밥이냐 하면 한 번에 2억 5,000만 마리씩 태어나는데도 멸종 위기(세계자연보전연맹이 정한 취약종)일 만큼 동네 밥이다. 상상해보자. 대한민국 국민의 다섯 배 정도의 형제자매가 한 번에 태어난다. 그중엔 유독 친한 자매도 있고, 추억을 공유한 형제도 있다. “그때 기억나? 우리 포항 앞바다 바위틈에서 작은 새우를 먹곤 했잖아?” 남쪽 바다를 오색빛깔로 장식한 산호초의 풍경, 보기만 해도 아찔한 정어리 군단의 위용.


하지만, 이런 추억도 부질없이 3~4년만 지나면 2억 4,999만 9,990마리가 목숨을 잃는다. 생존 확률 0.000004%. 일종의 제노사이드다. 태어난 순간 죽었다 봐도 무방하다. 개복치의 치어(稚魚), 쉽게 말해 어린 시절의 개복치가 너무나도 미약한 탓이다. 사진으로 보면 새카만 별사탕 같은 게 꼬물꼬물댄다. 크기부터 생긴 꼴까지 어찌나 안쓰러운지.


그렇지만 말이다. 0.000004%의 확률, 기적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가능성을 부여잡는 개복치에겐 새로운 세상이 펼쳐진다. 복어목 물고기들이 대부분 그렇듯 개복치는 껍질이 두껍고 거칠다. 두꺼운 껍질에 커다란 덩치까지 더해져 천적이 거의 없어진다. 개복치는 해파리나 씹으면서 햇볕을 쬐고, 복잡한 세상사와는 무관하게 평생 망망대해를 자유로이 부유한다. 가다랑어 무리와 고등어 무리 사이에 벌어진 다툼도 신경 쓰지 않는다. 뭣도 모르는 새파란 참치 청년이 허리춤을 꽉 깨물면 개복치는 슬픈 눈으로 슬쩍 쳐다본 후 옆으로 몸을 옮길 뿐이다.


직접 (플래시를 켜지 않고) 찍은 개복치 사진


생존의 문제가 해결된 다음 개복치는 무슨 생각을 할까? 제노사이드의 목격자로서의 슬픔? 세상에 대한 냉소? 그렇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험한 세상을 견뎌왔음에도 개복치들은 세상 생명체들과 천진난만하게 어울린다. 한때 자신을 노리던 빨판 상어가 “저…기 나, 예전엔 미안했어. 배가 많이 고팠나봐. 다신 안 그럴게. 그런데 혹시 너의 몸 아래쪽에 잠시 붙어 다녀도 될까?”라며 뻔뻔하게 ‘공생’을 부탁해도, 개복치는 그저 고개를 끄덕인다. 처음 만난 인간들과 장난치는 모습도 흔히 목격된다. 선천적 비폭력으로 인해 벌어지는 수많은 위험, 기적에 가까운 생존 과정, 결론에 이르러 그동안의 고통에도 불구하고 어린아이의 마음을 잃지 않는 모습. 한 편의 드라마가 아닌가.


마흔. 가능성의 시절을 지나 내 인생의 디테일이 하나씩 결정되는 시기를 맞아 자신을 돌아볼 때. 난 개복치마냥 멸종 위기종이었다. 글 좀 끼적이는 재주 빼곤 사회생활에 유리한 능력은 하나도 없었고, 때론 먹고 살기가 위태위태했다. 믿었던 이들이 나에게 상처를 줬으며, 내 능력 부족으로 누군가를 아프게 했다. 수많은 상처에 맞서 내가 한 일은 그저 버텨낸 일 뿐이었다. 아주 가끔 그 괴로움에 ‘유머’를 한 숟갈 끼얹어 글로 남기기도 하는 정도.


모든 상처에도 불구하고 기적적으로 살아남길 바라며, 살아남은 다음엔 개복치처럼 천진난만하게 세상과 어울릴 수 있기를 바란다.


P.S. 이쑤시개 충격! 개복치는 그렇게 잘 죽지 않아!

일본의 개복치 전문가 사와이 에쓰로 박사님에 따르면 개복치가 소문처럼 잘 죽지 않는다고 한다. 사와이 에쓰로 박사란 분은 전 세계 곳곳 개복치 있다면 어디든 찾아가 연구하는 열정 과학자이자, 개복치 굿즈(개복치 마우스패드 등)와 개복치 동인지(당신이 생각하는 그 동인지 맞다)까지 만드는 개복치 마니아다. 


이런 사와이 에쓰로 박사님도 쉽게 죽는 성체 개복치를 보지 못했으며, 자신이 취합한 1,300개의 개복치 기록물에도 그런 사실은 없다고. 도리어 민간설화에선 생김새 탓에 무서운 존재로 알려져 있다고. 어릴 때 사망률이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 어른이 되면 바다세상에서 나름 중간은 가는 물고기가 된다고 박사님은 말했다. 

세상의 개복치 여러분. 중간은 갈 수 있다고 합니다!

#주간개복치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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