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삶이 정상인 건가요?
언젠가 네이버 지식백과 조현병 파트를 읽다가 무척 슬프면서도 낭만적인 부분을 발견한 적이 있습니다.
조현병 환자들은 없는 게 보이고(환시), 안 들를 게 들리는(환청) 증상을 겪곤 합니다. 다음은 환청에 시달리는 환자 예시입니다.
/지방 소도시에 사는 영수는 가끔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서울에 올라오곤 하였다. 아침 일찍 아무 말 없이 나가서 저녁 늦게 들어오는 일이 잦아지면서, 부모님은 영수가 어디를 다녀오는지 궁금해하였지만 영수는 대답이 없었다. 이해할 수 없는 외출이 계속되면서 결근도 잦아지고 결국에는 직장까지 그만두게 되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영수가 수시로 서울로 올라갔던 이유는 고등학교 때 짝사랑했던 여학생이 데이트하자고 하는 환청이 들렸기 때문이었다. 영수는 그녀의 목소리를 다른 사람들이 들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것은 그녀가 사랑하는 영수만을 위해 하는 말이기 때문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만나는 장소에 대해 구체적인 언급이 없어서 영수는 서울역 앞이나 시청 앞 같은 유명한 장소에서 하루 종일 서서 기다리다가 밤이 늦어서야 집으로 돌아오곤 하였던 것이다./
슬픕니다. 불러놓고 장소가 어딘지 구체적 언급이 없었다니...
"정말 널 보고 싶어 지금 바로 와줄 수 있어?"
"그래, 갈게. 어디로 가면 돼?"
(4시간 후)
"나 왔어. 지금 어디야?"
"...."
"어디야 대체."
사랑하는 그녀를 위해 그 어떤 불합리도 받아들이는 헌신적 사랑. 닿을 듯 닿지 못하는 인연. 생활을 모두 위험으로 몰아넣을 때까지 멈추지 않는 사랑. 슬프면서도 낭만적이지 않나요?
정신과 의사이자 대중 저술가인 올리버 색스가 쓴 치료 일지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엔 정신 문제로 곤란을 겪는 많은 환자들이 나옵니다.
영화 메멘토처럼 기억을 10분 정도밖에 유지 못 하는 환자가 나오기도 하고요. 틱 장애로 괴로워하지만 치료약을 먹으면 멍해져 음악을 못하는 재즈 아티스트가 등장하기도 합니다.
언뜻 불행한 상황이지만, 색스는 책 속 환자들을 불쌍하게만 그리지 않습니다. 10분만 기억하는 사람은 10분으로 이어진 삶을 유지하기 위해 본능적으로 친절해집니다. 낯선 그 누구도 사실 낯설지 않을 수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죠.
틱 장애 재즈 아티스트는, 평일엔 약을 먹고 차분한 삶을, 공연을 서는 주말엔 약 없이 연주자의 광적인 삶을 삽니다. 올리버 색스는 이 아티스트가 2가지 삶을 살기에 오히려 풍요롭다고 설명합니다. 우리가 ‘질환’으로 칭하는 이 증상들이 오히려 인간의 근원적인 조건을 다시금 일깨우고 있다고도 말하죠.
정신과 전문의가 하신 말씀인데, 실제 조현병 환자에게 심각한 환청이 들리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마치 공포영화처럼 누굴 죽여라는 메시지가 들리지만, 영화와 달리 마지막 순간 죽는 건 환자 본인인 경우가 대다수라고 합니다. 남을 해칠 바야 자기가 없어지겠다는 판단하는 게 더 일반적이라고 하더군요. 통계적으로요.
가끔 조현병 이슈가 터질 때마다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지금 하루를 무덤덤하게 때우고 있는 우리 삶이 과연 '정상'일까? 남의 불행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마음은 ‘정상’인가?
‘비정상’의 삶을 볼 때마다, 오히려 '평범'이란 덧깨 속에 우리가 잃어가는 것들을 생각하곤 합니다. 그리고 언젠가 사랑 하나로 많은 걸 포기했던 젊은 시절의 제 모습을 떠올려보기도 하고요.
PS 의미없음을 지향하는 주간 개복치 치고는 글이 무거워졌습니다.
#주간개복치 #조현병 #올리버섹스 #오늘하루우리삶이게정상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