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애들이 아프다. 둘 다.

이 확률이면 로또가 될 것이지 왜!

by 오늘

마취에서 어느 정도 깬 다음 강한 진통제 빨로 실컷 자고 나서 남편이 찍어둔 아이들 사진을 보았다. 전신마취를 하고 수술을 했기 때문에 아이들이 나오는 과정을 전혀 못 봐서 그런가, 이 애들이 내 배에서 나왔다는 것이 확 실감이 되지는 않았다. 그래도 온몸을 뻗으며 울고 있는 첫째와, 몸에 장비가 연결되어 있지만 제법 편안해 보이는 둘째를 계속 들여다볼수록 마음이 괜히 몽글몽글하면서 그래도 정말 이 길고 긴 임신 대장정이 끝났구나 싶었다. 소변줄을 빼고 배가 타들어 것 같은 고통을 견디며 일어나 걷고 하는, 많은 엄마들이 겪어온 그 일들을 기쁘게 기꺼이 했다. 회복력이 좋은 편인지 시간이 지날수록 고통은 점점 더 견딜 만 해졌고 나는 신이 나서 몸을 일으킬 때마다 병실 밖으로 나가 병동을 열심히 걸어 다녔다. 남들이 보는 시선에서는 겨우겨우 어기적어기적 걷는 산모일 뿐이었겠지만 마음속 혼자만의 레이스에서는 인생에서 그 언제보다 빠르게 달리기를 하는 기분이었다. 이 모든 과정을 열심히 견딘 스스로가 너무나 대견했다. 애들이 몇 살 정도 되면 이 생색을 낼 수 있으려나 혼자 철없는 상상을 했다.


오랜만에 모든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마음껏 아프고 힘든 티를 내가며 남편의 수발을 받을 수 있었고. 아무리 아프다 해도 수술 후 고통이야 결국 나아질 것이었다. 시간이 지나면 다 나아질 것이란 믿음은 꽤 큰 고통도 '이까짓 거'라고 생각하게끔 했다. 게다가 운 좋게 수술하자마자 1인실 자리가 나서 이제는 코골이를 비롯한 각종 소음 없이 편히 쉴 수 있었다. 그간의 생활과 비교해 보면 정말이지 더없이 행복한 주말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폭풍 전야였지만...


아이들은 둘 다 신생아 중환자실에 있었고 신생아 중환자실 면회는 월수금 10시에만 가능했다. 그래서 월요일 10시, 면회 시간에 딱 맞춰 신생아 중환자실로 갔다. 출산하고 이틀이 지나서야 만나볼 수 있게 돼서 그런지 내내 뱃속에 있었는데도 갑자기 처음으로 자식을 만나는 기분이 들었다. 면회를 위한 목록을 작성하고, 신분증을 확인하고, 신생아 중환자실 입구에 있는 준비 공간에서 손을 씻고, 비닐 가운을 걸치고, 라텍스 장갑을 끼고, 휴대폰을 소독하는 동안 손길과 마음이 절로 정성스러워졌다. 모든 준비를 마치자 간호사 선생님들이 우선 둘째가 있는 방으로 우리를 데려가 주었다.


둘째는 결국 1.5킬로로 태어났다. 실제로 보니 주말 내내 보던 사진 속 존재와 같은 아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작고 빨갰다. 몸에는 온갖 장비로 연결되는 선을 달고 있었고, 호흡을 위한 관은 아이의 입과 목에 비해 너무나 굵어 보였다. 출산과정에서 태변을 흡인했다고 했다. 작고 힘겨워보이는 아기의 모습에 안쓰러움보다는 충격으로 눈물이 흘렀다. 첫째는 2.1킬로로 태어났는데, 얘도 물론 평균 신생아에 비해 아주 작은 것임에도 둘째를 먼저 보고 나서 보니 꽤나 크고 건강해 보였다.


정신을 차리고 애들 사진을 담고 있는데 애들의 소아과 담당의 교수님이 들어오셨다(이 때는 정말이지 이 교수님과 이렇게 긴 인연을 시작하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었다). 첫째는 별다른 문제가 없어 보여 곧 일반 신생아실로 옮길 수도 있고 둘째는 태변흡인 문제와 성장 문제로 2~3주는 더 지켜봐야 한다면서도 큰 일은 없을 거라고 말씀해 주셨다. 그 순간 어찌나 마음이 편안해지던지... 의사의 한마디가 얼마나 사람을 들었다 놨다 하는지 알게 됐다(그리고 몇 시간 뒤 나는 이걸 또 한번 아주 크게 느끼게 된다). 소아과 교수님은 오후에 초음파를 비롯한 몇 가지 검진이 있다고, 그때 혹시 이상이 있으면 연락을 주겠다고 하셨다. 연신 감사합니다를 외며 신생아 중환자실을 나왔다.


면회가 10시에 시작되어 한 시간 정도 가능하니 우리가 신생아 중환자실을 나와 다시 병실로 돌아간 게 오전 11시쯤, 그리고 교수님의 콜이 온 게 오후 5시쯤. 우리 부부가 아이를 낳은 뒤 가장 철없고 낙관적이고 해맑고 걱정 없던 6시간이었다. 우리는 고민했던 이름 목록을 훑으며 어떤 이름이 아이들의 생김새와 잘 어울리는지 이야기하고, 면회 갔을 때 찍은 사진을 주변에 보내며 환영과 축하를 받고, 아이들이 누구를 닮았는지 얘기하며 웃고(수술 부위가 아파서 화통하게 웃지는 못하고), 앞으로 어떻게 육아를 할지 무지렁이끼리만 할 수 있는 아주 이상적인 토론을 하기도 하고, 서로에게 또 아이들에게 좋은 가족이 되자고 다짐을 하며 그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5시쯤, 전화가 왔다. 소아과 교수님의 면담콜이었다. 남편은 병실에서 나갈 채비를 하느라 내 앞을 왔다 갔다 하며 어깨에 핸드폰을 끼고 네.. 네.. 짧게 대답만 하고 있었다. 들뜨고 행복했던 마음이 한순간에 곤두박질치고 불길한 기운에 휩싸였다. 막상 남편은 대수롭지 않은 듯 아이들 처치를 위한 동의서 때문일 거라며, 내가 마취에서 깬 지 얼마 안 되어 잠들어있을 때도 자주 불려 갔다고 했다. 하지만 분명 초음파 검사에서 이상이 있으면 연락하겠다고 했었다. 수술 부위 쪽에 복대를 꽉 조여 메고 남편을 따라나섰다. 아침에 갔던 신생아중환자실 앞으로 가서 벨을 누르고 상담실로 자리를 안내받았다. 분명 아침에 왔던 공간인데 그때보다 훨씬 서늘한 기운이 느껴졌고 뭔가 역한 냄새까지 나는 것 같았다. 수술 상처부위의 욱신거림이 전보다 강하게 느껴져 허리를 움츠렸다. 곧 교수님이 다소 경직된 얼굴로 들어오셨다. 교수님이 들어오는 걸음걸음이 슬로우모션으로 나에게 다가와 심장을 쿵, 쿵, 울렸다.


아니길 바랐지만, 예상대로 초음파 검사에 대한 이야기였다. 걱정했던 둘째의 초음파 소견은 괜찮다고 했다. 근데 왜?
첫째가 문제라고 했다. 좌뇌와 우뇌를 연결하는 뇌량이 보이지 않는단다. 뇌에 문제가 있어 경련과 지적장애를 동반할 확률이 높다는 무시무시한 얘기와 함께 아이의 병에 대한 설명을 들어야 했다. 주변이 멍해졌다. 이게 무슨 일이지.
곧이어.

"유전적인 문제가 원인일 확률이 높아 염색체 검사를 의뢰해 보려 하는데, 보내는 김에 둘째에게 다운증후군 특징이 보여서, 둘째 것도 함께 보내 볼게요."

내가 무슨 말을 또 들은 거지. 귀에서 갑자기 이명이 울렸다.
아침까지 우리 딸 너무 예쁘다고만 생각했었는데 뭐라고? 무슨 특징이요?

우선 여러 검색해보지 말고 기다리라고 한다. 지나치게 비관적이 되거나 지나치게 낙관적이 될 수 있다고. 가능할까.
염색체 검사는 늦으면 한 달이나 걸린다고 한다. 사람을 피 말려 죽일 셈인가.
더 물어보고 싶은 게 있냔다. 아무 생각이 나지 않는다고 하고 겨우 감사합니다 한 마디를 짜내어 뱉고 나왔던 것 같다.

사실 물어보고 싶은 말이 있었지만, 의사가, 설령 답을 안다고 해도 대답해 줄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럼 저는 이제 어떻게 되는 건가요. 저는 살아갈 수 있을까요. 혹시 가장 편하게 죽음에 이르는 방법이 뭘까요.





병실로 돌아왔을 때, 이 공간은 이제, 아까와는 완전히 다른 의미로 나에게 평생 기억되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기쁨과 축제의 공간에서 한순간에 지옥이 따로 없는 곳으로. 둘만 있는 곳으로 들어오자 간신히 참았던 눈물이 터져 나왔고 남편은 그런 나를 안아주며 우리 애들이 그럴 리 없다고 부정하고 있었다.

이 순간이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듯 자꾸만 흐릿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지. 둘을 낳았는데 둘 다 이상이 있다니. 다운증후군? 그건 임신 중에 가장 쉽게 판별할 수 있는 염색체이상이 아닌가? 왜 나는 양수검사를 하지 않았지? 딸이 하나라도 있어서 우리 딸 우리 딸 하며 좋아했는데, 아침까지도 예뻐 보이기만 했는데 무슨 특징이 보인다는 거지? 뇌량은 또 뭐야. 뇌에 이상이 있다니 그게 도대체 무슨 소리야. 경련을 할 거라고? 지적 장애를 가질 거라고? 우리 집에 정상적으로 크는 애가 없는 거야 그럼?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이야? 알고 보니 내가 무슨 이상이 있었던 게 분명하다. 나는 왜 우연히 건강하게 태어나서 잘 자라서 결혼을 하고 애를 낳았지? 아기가 안 생겼을 때 그냥 포기하고 둘이 살았어야 했던 거야. 병원 다녀가며 돈 들여가며 배에 주사를 꽂아가며 얻은 결과가 뭐? 뭐가 어떻다고?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것을 넘어서, 하나의 생각이 끝나기도 전에 다른 생각이 말을 끊듯이 끼어들어왔다. 머리가 뱅뱅 돌고 자꾸 이명이 들렸다. 눈을 감으면 검은 배경에 온갖 색상의 실타래가 엉키고 또 엉키는 모습이 아른거려 더 어지러웠다. 말도 안 되는 악몽에서 깨어나고 다시 행복한 현실을 마주한 뒤 남편에게 '오빠 나 세상에 이런 꿈을 꿨다? 은근히 걱정이 많았나 봐' 하고 말하는 상상을 긴 시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잠에서 깨지 않았다. 아무래도 이 악몽이 현실이었다. 남편은 아직 염색체 검사 결과가 나오지 않았으니 그때까지는 기다려보자고 했지만, 내 생각엔 의사가 이런 얘기를 하는 데에는 너무나 확정적인 근거가 있는 거였다.


잠시 동안은 핸드폰을 치워두고 시간을 보냈다. 애들 담당 교수님의 말에 따라 검색을 해보지 않으려 했다. 아이들과 내 소식을 궁금해하는 지인들의 연락을 더 이상 보고 싶지 않기도 했다. 하지만 오래 지나지 않아 당장 무엇이라도 하고픈 맘을 참을 수가 없었고, 결국 휴대폰을 들었고, 그 순간부터 본격적으로 지옥에 빠져든 것 같다.


뇌량무형성증에 대해 끝없이 검색하고, 지치면 또 다운증후군에 대해 끝없이 검색하고, 그것도 지치면 사진 앨범을 켜서 애들 사진을 보며 울다가 딸의 얼굴을 확대하여 그 작은 얼굴 안에서 다운증후군 특징을 찾고 또 찾고 또 찾고... 그렇게 한숨도 자지 못한 채 절망 속에 빠져 있는 동안 야속하고도 고맙게 시간은 계속해서 흘렀다. 퇴원날이 밝아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