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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무 Jun 01. 2023

결국 후드는 안 씁니다


검은 물이 나오던 세탁기의 악몽에서 조금 벗어날 무렵, 계절은 여름을 향해 가고 있었고 어디선가 악취가 나기 시작했다.

생선 비린내와 고기 누린내와 기름 쩐내와 하수구 냄새가 결합된 듯한 어떤 오묘한 냄새가.

냄새의 근원을 찾기 위해 마치 개처럼 킁킁거리면 집안을 돌았는데, 워낙 좁은 방이라 여기서 나는 냄새가 저기서도 나는 것 같고, 저기서 나는 냄새도 맡다 보니 여기서도 나고. 한참을 그렇게 어슬렁거리다가 주방의 후드를 발견하기에 이른다. 후드 끝 부분에 고동색의 기름 같은 것이 맺혀 있었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 요리를 할 때, 후드를 당겼는데 어째 요리를 하면 할수록 냄새가 더 나는 것 같아서 그냥 닫았던 기억이 있었다. 입주 청소할 때 후드는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에 필터는 내가 꺼내서 씻었었는데 어디서 생겨난 기름일까. 일단 그 기름을 닦아서 냄새를 맡아보니 이게 오묘한 냄새의 근원이었다. 근데 사실 난 그때까지도 후드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몰랐기 때문에 다시 필터를 빼서 깨끗하게 세척했다. 나름대로 베이킹파우더도 뿌려보고, 세제를 푼 물에 담가도 놔 보고. 그리고 며칠이 지났는데 기름이 또 생겼네?


그리고 주말만 기다렸다. 도대체 이 기름은 어디서부터 나오는 것일까.

필터를 다 빼고 안쪽을 들여다보니 가관이었다.



‘전 세입자님.. 세탁기엔 대체 무엇을 빨았으며 여기선 대체 뭘 해드신 건가요?’



안쪽의 돌아가는 환기구에 새카만 기름때가 잔뜩 껴있었다. 그곳에 모여있던 기름때가 날이 더워지면서 녹아 밖으로 흘러나온 듯했다. 물티슈로는 절대 안 닦였고, 세제를 묻힌 수세미로 닦아봐도 잘 닦이지 않았다. 엄마가 기름때를 전용으로 닦을 수 있는 제품이 따로 있다고 해서 다이소를 다녀왔다.




근데 이 환기구는 나사를 돌리고 뜯어내야 안 쪽의 프로펠러까지 닦을 수가 있는데, 네 개의 나사 중 하나가 도저히 빠지지 않았다. 나사도 기름때에 절어서 잘 돌아가지 않았다. 나사 돌리다가 목이 빠지는 줄 알았다. 그래서 결국 한쪽은 덜렁거리게 놔두고 기름때 청소를 시작했다.


먼저 세제 묻힌 수세미로 기름때를 불렸더니 밑으로 시커먼 기름때가 뚝뚝 떨어졌다. 다음엔 돈을 좀 더 주더라도 꼭 후드 청소까지 전문가에게 맡겨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기름때 전용 티슈로 프로펠러며 환기구를 닦기 시작했다. 묻어 나오는 때를 보며 구역질이 났다. 비위가 약한 편은 아닌데 형용하기 힘든 냄새가 코를 찔렀다. 그래서 마스크를 끼고 목을 90도로 꺾어가며 계속해서 닦았다. 환기구가 제대로 열리지 않아서 프로펠러 안쪽까지 손을 넣어 닦기도 힘들었고, 닦아도 닦아도 때는 계속 묻어 나왔다.




청소에 장장 5시간을 썼다. 나중에는 거의 해탈해서 헛웃음을 뱉으며 닦아냈다. 이런 부분에는 또 대충이 안 되는지라 보이지 않는 구석까지 손가락이 저리도록 닦아냈다. 마음 같아서는 솔직히 더 하고 싶었으나 그랬다가는 목 디스크가 도질 것 같았다. 아주 뿌듯한 마음으로 청소를 마치고 후드를 켜봤다.


이제는 악취가 안 나고, 냄새를 잘 빨아들이겠지? 어? 근데 냄새가 계속 나네? 아직 좀 뭐가 남아서 그런가? 계속 켜고 있으면 없어지려나? 했는데, 계속 켜놔도 어쩐지 냄새가 계속 난다? 뭘까? 뭐지? 그리고 곧 있으니까 또 고동색 기름이 또르르 맺힌다.

x 바... 뭐냐고.



그러니까 이건 환기구만의 문제가 아니었던 거다. 그건 그냥 입구일 뿐이고 후드가 통하는 은색 배기관 전체가 그 모양이었던 건데, 그건 내가 청소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다. 그러자고 배기관을 새것으로 교체하자니 내가 혼자 할 수 없는 일이었고. 장장 5시간의 걸친 청소가 결국 아무것도 아닌 게 되어버렸다. 그날은 아까운 내 주말을 헛되이 날린 씁쓸함과 뒷목과 어깨의 뻐근함을 달래기 위해 혼술상을 차려 맥주를 들이켰다.


깨끗해졌지만 냄새는 여전히


그리고 어떻게 교체할 수 있을지 좀 찾아보다가 귀찮아져서 결국 후드를 안 켜게 되었다. 요리할 때는 창문을 모두 열어두고(영하의 겨울에도 예외 없다), 냄새가 빠질 때까지 계속 열어둔다. 기름이 많이 튀는 요리는 그냥 하지 않거나 에어프라이어를 이용한다. 후드를 켜지 않으니까 더 이상 기름때는 맺히지 않고, 냄새도 안 나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그렇게 살아졌다. 후드를 켜지 않고 살아가는 것도, 요리하기 전에 무조건 창문부터 여는 것도. 혼자 살면서 알게 된 건 이런 거였다. 완벽하게 살 수 없다는 것. TV속 연예인이나 감성 브이로그에 나오는 것처럼 깨끗하고 넓은 주방에서 여유롭게 요리할 수 없다는 것. 실상은 냄비 2개도 안 올라가는 좁은 주방에서 후드도 못 켜고 영하의 날씨에도 창문을 활짝 열어두고 매 끼니를 대충 차려 먹는다는 것.

그럼에도 배달보다는 해 먹는 요리를 선호한다. 그렇게 나를 대접하는 시간이 점점 소중해지기 때문이다. 완벽하고 여유롭게 살 수 없어도 나를 위한 최선을 한 끼에 담아내는 게 고단한 일상에서 나를 지키는 방식이었다.



그건 그렇고 내 청소의 역사는 아직도 끝이 안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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