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는 궁시렁 궁시렁

출결의 황혼

by 취생몽사

새내기 시절 내가 철학 과목을 수강했던 이유야 좋게 말하면 치기였고, 정직하게 말하자면 중2병이었다. 철학이 무엇인지 전혀 몰랐지만, 내 학창시절 그것을 말하는 사람들의 표정은 "처" 하고 발음할 적에 이유 모를 자신감과 "락"하고 마칠 적에 약간의 우월감마저 깃들어 있었다. 숫자와 변수만 붙들고 학창시절을 보냈던 내게 그것은 교양을 갖춘 이들이 반드시 한 번쯤은 거쳐가야 할 무엇으로 여겨졌다. 나는 철학으로의 초대인지 뭔지 하는 교양 수업을 그래서 수강했다.

재능은 잘 모르겠고, 그 수업은 일단 재미가 없었다. 첫 애인과의 이별은 수업을 가지 않기 위한 허울 좋은 변명거리가 되어주었고, 그 이후 철학과 친해질 일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그 보다는 고종석이나 진중권을 읽는 것이 더 재미있었고, 그냥 재미를 따라 세계를 구축했다. 그들이 언급하는 수많은 철학자들의 이름을 보며, 새내기 시절을 떠올리긴 했다만 한 학기에 시험을 3번, 그 보다 더 많은 퀴즈를 보는 과목이 여럿 차있던 공과대학 시간표에 뭘 더 보태겠는가.

철학이 삶을 살아가는 어떤 방향성을 제시해 준다는 말들은 대개 북콘서트니 토크콘서트니하는 책을 파는 장소에서 되풀이되었고,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철학은 명쾌한 답이 내려지지 않는 질문의 연속이었다. 그보다는 "pf"하고 시작하여("증명하겠다!"), 끝내 주어진 문장을 이끌어내는 수학(기초적인 영역의 것이었다만)이 더 좋았다. 전역 후 복학하여 페미니즘 철학을 공부하기로 했으나, 그것은 페미니즘에 대한 궁금증이었지 철학 자체에 대한 궁금증은 아니었던 것 같다. 버틀러를 내려놓은 이후에는 오히려 새내기 시절보다 더 철학과 멀어진 기분이었다. 이해되지 않는 문장들은 두려움을 증폭시켰고, 여전히 철학을 모르며 무서워 한다. 다만, 그 놈의 시험이 뭐라고 이런 신새벽에 회의실에 앉아 니체를 정리해보고 있다.

개략적인 철학의 사유들을 접하게 되면서, 이것들을 내 멋대로 착종하여 삶을 꾸리는 재미가 있다는 것은 조금씩 깨닫고 있다. 3학점 짜리 철학과 전공수업을 듣는 것은 - 여전히 출석에 매우 성실한 편은 아니나 - 7학기 만에 찾아낸 소소한 즐거움이라고 할까. 필부에게는 딱 이 정도의 철학이 적당한 것 아닌가. 어차피 세상 만물을 설명해 낼 포부도 능력도 없기에 일생을 버텨낼 단어가 필요한 전부라면, 근본없이 배운 철학을 빌어, 그 철학자의 이름에 실린 권위를 빌어, 스스로에게 젠체하며 살아가는 것도 아주 나쁘진 않구나 싶은 것이다. 이를테면, 출석이라는 우상을 망치로 부수고 내가 하고픈 대로, 욕망의 주체로서 살 수 있다는 약간의 상상을 해볼 수 있다. 물론 나는 초인은 커녕 극히 평범하며, 더 이상 불성실했다간 막대한 금전적/시간적 손해를 입게 되어 상상을 실현할 엄두는 내지 못할 것이다.

"인식의 모든 성과와 발전은 용기에서, 자신에 대한 엄격과 순수함에서 나온다."

아아, 저는 얼마나 비겁합니까.

"아침 10시 30분, 네가 퀴퀴한 미래융합기술관 1층 강의실에 들어가야 한다는 당위같은 것은 없다. 너는 이 사실을 기꺼이 수용할 수 있을 정도로 용기있는가?"

용기없는 자는 몸을 닦아내고 씻기 위해 자취방에 간다. 그래도 걷는 시간 심심하지 않았으니, 그것으로 된 것일까. 자취방 골목 어귀에 마부에게 채찍질당하는 망아지가 있지 않고서야, 오늘도 이렇듯 궁시렁 하루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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